[이대현의 영화세상] 돈되는 영화?

영화 '친구'의 열풍이다. 3월31일 개봉한 '친구'(감독 곽경택)는 장안뿐 아니라 항구도시 부산까지 떠들석하게 만들며 첫 주말에 흥행신기록(서울 22만3,246명)에 이어 5일만에 전국 1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한국 영화계를 놀라게 했던 '공동경비구역 JSA'의 기록을 6개월만에 모두 갈아치웠다.

제작비 18억원이 개봉 단 이틀만에 전국에 걸쳐 58만 2,902명의 관람객이 몰려듦으로써 간단히 들어왔다. 사실 영화가 완성되기전까지는 '친구'가 이렇게 흥행폭발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몰랐다.

'친구'는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현실상황과 밀접하지도 않다. 시나리오만 보면 흔한 깡패 이야기고, TV가 한차례 훑고 지나간 복고 드라마다.

그래서 '친구'는 자칫 만들어지지 못할 뻔했던 영화였다. 제작비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맘때쯤 제작사인 시네라인II 석명호 대표는 '친구'의 시나리오를 들고 투자자를 찾아나섰다. 하나같이 돌아오는 대답은 "노(No)"였다. 이런 작품으로 흥행이 되겠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큰 배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유오성과 정준호가 하겠다고 나섰지만 그들로 흥행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CJ엔터테인먼트는 "남성영화는 안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박신양을 내세운 '킬리만자로'로 참담한 실패를 맛본 뒤였다. 시네마서비스를 찾아갔다. 그때 강우석 대표 역시 "좀 되는 걸로 합시다"라고 말하며 거절했다는 것이다.

배우도 그렇고, 부산을 무대로 한 영화라는 것도 한계가 있을 터이고, 감독이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억수탕', '닥터K'의 곽경택이란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보다는 '불후의 명작', '선물'같은 멜로물이 돈이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한맥영화사는 '친구'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투자비 마련이 문제였다. 김형준 대표는 한스글로벌과 인츠닷컴에서 5억원씩 투자받기로 했으나 제작비 18억원 중 비디오 판권료 3억원을 제외한 5억원을 구하지 못해 미적거렸다.

그 사이 원래 동수 역을 하기로 했던 정준호도 기다리다 못해 다른 영화로 가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대신 장동건이 그 역을 하겠다고 나서게 되자 ㈜코리아 픽쳐스(대표 김동주)가 창립작품으로 전액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친구'는 이렇게 설움을 겪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었다. 일주일 먼저 개봉한 시네마서비스의 '선물'은 '친구'에 치여 관객이 푹 줄어들었다. 개봉하던 날 물밀듯이 들어오는 관객을 보고 석명호 대표는 "무엇보다 '친구'를 퇴짜시킨 투자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게 통쾌하다"고 말했다.

아마 CJ엔터테인먼트와 시네마서비스는 두고두고 '친구'를 생각하면 가슴이 쓰릴 것이다. 땅을 칠 또다른 사람은 정준호다.

물론 그가 출연을 했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스타로 부상할 기회를 스스로 버렸다.

할리우드처럼 충무로에는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이정재가 "되는 영화 하겠다"며 진짜 되는 영화를 마다하고 '순애보'를 선택해 실패한 것이나, 이름 있다 하는 여배우들이 거절한 '공동경비구역 JSA'를 이영애가, '번지점프를 하다'를 이은주가 선택해 성공한 것도 다 '되는 영화 타령'이 가져온 결과다.

"남성영화는 안된다", "되는 영화를 하자"고 운운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계산하는 투자자나 제작자에게 '친구'는 따끔한 충고를 한 셈이다.

"중요한 것은 수재나 장르가 아니다. 애정을 갖고 얼마나 잘 만드느냐에 있다. 오로지 돈만 벌려는 영화를 하면 돈은 도망간다"고. 돈에도 눈과 귀가 있다는 옛 어른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입력시간 2001/04/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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