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新교육현장]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육 문제는 역대 어느 정부, 어느 지도자도 풀지 못한 난제중의 난제다. '교실 붕괴', '학교 무용론' 등 공교육의 문제점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지만 이렇다할 속시원한 해결책은 아직 묘연하다.

지난해 사교육비가 한해 교육재정의 31%가 넘는 7조원을 돌파하고, 고액 과외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당국의 발표는 공교육의 한계를 다시한번 상기시켜주고 있다. 부실교육의 폐단은 '교육 이민', '조기유학 열풍'등의 갖가지 양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혼란한 현실속에서 독특한 교육이념을 실천해 주목받고 있는 학교가 있다. 바로 민족사관고등학교. 1996년 '민족 주체성과 영재교육의 요람'을 표방하며 설립된 이 학교는 소수정예의 특화된 인재교육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때 일반인에게 '갓 쓰고 서당식 공부하는 특수고'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실제로 이 학교는 완전히 미국식 고교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당국이 수십년간 금과옥조처럼 강조해온 '평준화'를 과감히 내다버린 이 학교는 최근 옥스포드, 코넬 등 외국 명문 사립대에 합격생을 잇달아 배출하는 개가를 올리면서 학부모와 학생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풀빵 찍어내기'식의 획일적 주입교육으로 교육의 황폐화를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교육현실에서 또다른 대안이 될 수 있는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살펴본다.


소수정예의 특화된 인재교육

이 학교에 들어서면 한복 차림에 사모까지 쓰고 있어 마치 옛날의 서당에 온 듯한 느낌이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선진국의 명문고교에 버금가는 질높은 교육을 받고 있다. 전교생은 불과 202명인데 반해 교사의 수는 무려 57명이나 된다. 한 교사당 맡는 학생수가 3.5명에 불과하다. 수업도 한반이 10명 단위의 소수로 이뤄진다.

한반에 40여명이 모여있는 일반 고교와는 비교가 안된다. 그런 까닭에 이 학교 교사들은 학생의 이름은 물론이고 개성과 성격까지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

미국의 고교와 마찬가지로 반과 담임제가 없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일반 고교처럼 과목담당 교사가 반을 찾아가 수업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학교처럼 학생이 원하는 과목의 선생님의 교실을 찾아가서 공부한다.

대신 어드바이저라는 교사가 학생의 성적 관리나 개별 상담을 맡는다. 학생 자신의 성적과 흥미에 맞는 수업을, 스스로의 판단과 책임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도 미국식이다.

교육과정도 상당 수준에 이른다. 매주 월ㆍ수ㆍ금요일 7~8교시에 전공별 탐구수업 시간이 있는데 이때는 자신의 전공을 보다 심도있게 배운다. 미국 고교에서 뛰어난 학생을 상대로 하고 있는 AP(Advanced Placement)처럼 그 내용은 대학교 전공과목에서 다루는 수준이다.

이 학교 자연계열 2학년생인 박효범(17)군은 지난달부터 서울대가 주관하는 경시대회를 보기 위해 씨앗 실험을 하고 있다.

'생명의 과학'이라는 대학 전공서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박군은 최근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최신 생물학'이라는 대학교재 한권을 추가 구입했다.

박군은 "일반 고교와 달리 이 학교에서는 이론이 아닌 실제 실험을 하고, 그것을 성적으로 인정받는다"며 "이런 수준의 공부를 해야 경시대회에서 수상해 특별전형으로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외 명문대 진학률 높아

올해 초 이 학교에는 2월 졸업예정인 김선(19)양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고교생 신분으로 영국 옥스포드대에 입학허가를 받았는 경사가 있었다.

외국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국제계열의 올해 졸업생은 총 6명. 이중 김양과 김세인(미국 코넬대)군이 이미 입학허가를 받았고, 하버드 예일 MIT 프린스턴 등에 원서를 낸 나머지 4명도 곧 입학허가를 받을 전망이다.

국내 명문대의 진학율도 높다. 올해 졸업한 1998년 입학생 34명중 해외대학에 진학하는 6명을 제외한 28명중 7명이 지난해 초 2학년을 마치고 KAIST에 조기진학했다. 나머지 학생들도 서울대(5명), 연세대(4명) 등 명문대에 대부분 합격했다.

이 학교 박하식 교감은 "일반적으로 입학생중 20~30%는 2학년 때 KAIST 등에 조기진학하고, 나머지 학생도 외국대나 국내 명문대에 간다"고 말했다.

지난해 졸업생 38명중에서도 국제계열에 있는 학생중 4명이 MIT, 코넬대, 콜롬비아대, 앰허스트대 등에 진학했다. 이밖에 KAIST(10명), 서울대(4명), 연세대(3명), 경희대와 을지의대(이상 3명) 등에 진학했다. 소위 세상이 말하는 명문대가 아닌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3명에 불과했다.

국제계열 학생들은 외국 명문대 진학을 위해 SAT나 AP 같은 시험을 준비한다. 이 학교 학생들은 1,600점 만점인 SAT1 시험에 평균 1,400~1,500점을 맞는다.

이는 미국 사립대 평균(1,200점)을 넘는 높은 점수다. SAT2도 800점 만점에 만점에 가깝게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국 대학에서 학점을 인정해주는 AP시험도 거의 5.0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는다. 이 학교 학생의 1998년 토플 평균 점수는 650.7점이었다.


까다로운 입학전형, 성적 부족하면 유급

입학이 곧 국내외 명문대 진학을 보장해주는 만큼 입학절차는 무척 까다롭다. 우선 서울지역 학교 출신은 상위 석차 5% 이내, 시 지역은 3% 이내, 군 단위 이하 지역은 1% 이내에 들어야 입학지원서를 낼 수 있다.

서울대가 주관하는 전국경시대회에서 은상 이상의 성적을 거둔 학생도 지원이 가능하다. 선발시험은 계열별로 3차에 걸쳐 엄격하게 실시된다.

자연계열은 국어 영어 수학과 과학, 인문계열은 국ㆍ영ㆍ수에 사회 과목 시험을 치른다. 2년 전에 새로 신설한 국제계열은 영어1(영어 에세이 쓰기), 영어2(외국 선생과 프리토킹)와 수학, 사회 시험을 치른다. 2차는 창의성을 테스트하는 시험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내 학생의 창의력과 지식 생산능력을 평가한다. 여기를 통과하면 마지막으로 학교 기숙사에 3박4일간 입소하는 3차 영재 캠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리더십과 희생정신을 가진 지도자로의 인성을 지녔는가, 공동체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가를 최종 판정하는 과정이다. 입학했다고 모두 통과된 것은 아니다. 성적이나 적응과정이 부족하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유급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에는 토플 550점 이하이거나 평균 80점 이하 과목이 2과목 이상인 경우, 회초리 체벌 대수가 80대 이상인 학생은 유급시켰다.


최고 학생, 최고 교사

학생 만큼이나 교사의 수준도 높다. 최고의 인재 양성을 지향하는 만큼 가르치는 교사도 그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이 학교 교사 57명중 90% 가량이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갖고 있다. 박사학위 소지자가 절반에 달한다. 자연계열 과학과 13명의 교사중 1명을 제외한 12명이 박사학위 소지자다.

물리학을 가르치는 전동섭(46) 교사는 "우수한 학생을 지도하다 보니 선생님도 무슨 질문이 나올지 몰라 밤 늦게까지 수업준비를 한다"며 "학생이 잘 가르치고 실력있는 교사를 선택하는 제도가 있어 교사도 '실력 없는 선생'으로 낙인 찍히지 않으려고 학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 교사들은 일반 공립학교 교사가 받는 연봉의 두배를 받는다.

이 학교가 자랑하는 제도중 하나가 EOP(English Only Policy)다. EOP란 영어 상용화 정잭으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수업은 물론 일상대화까지 모두 영어를 쓰자는 운동이다.

단, 수업중 국어와 국사만은 우리말 수업으로 이뤄진다. 국제화 시대에 유창한 영어 능력은 필수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다 보니 교사도 영어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다.


엄격한 속 자율성 최대보장

규율은 자율적이지만 매우 엄격하다. 규칙을 어긴 학생에 대한 체벌은 '학생 법정'이라는 자체 기구를 통해 공평하게 처리된다. 학생 법정은 학생회장을 재판장으로 한 자체조직이다.

매주 토요일 오후 5시에 열리는데 한주 동안 규칙을 어긴 학생에게 체벌의 강도를 정하는 일을 한다. 체벌은 회초리 대수로 정하는데 이의가 있을 경우 학생 변호사를 선임할 수도 있다.

재판과정도 물론 영어로 진행된다. 회초리 체벌은 교내에서 유일하게 훈육을 담당하는 체육교사가 맡고 있다. 학생 법정에 회부되는 잘못은 지각, 청소 소홀, 복장 불량 등 대부분 사소한 내용이다. 강도는 한대를 때리면 싸리나무 회초리가 부러지는 것을 기본으로 삼을 만큼 매섭다.

성헌제(39) 체육교사는 "일주일에 15~20명 내외의 학생이 회초리를 맞는데 갓 입학한 신입생이 대부분"이라며 "몇대만 맞아도 종아리가 부르틀 정도지만 학생들이 대체로 이해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예체능에 소홀한 것도 아니다. 화ㆍ목요일 7~8교시에 실시하는 주제탐구 시간에는 국궁, 야구, 농구, 테니스, 골프 등의 스포츠 외에도 플룻, 피아노, 가야금, 대금, 장구 등과 같은 동ㆍ서양 음악수업도 마음껏 받을 수 있다.


학비 1년 1,500만원, 나머지는 재단서 지원

질 높은 교육이 이뤄지는 만큼 학비도 만만치 않다. 원칙적으로 학생의 수업료는 무료다. 학교재단인 파스퇴르 유업이 학생 1인당 월 25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이 부담하는 것은 수업료를 제외한 기숙사비와 교복, 예체능 등 특별활동비다. 기숙사비는 월 65만원이고 동ㆍ하복 교복 구입비용으로 약 200만원 정도가 든다.

여기에 1, 2학년때 가는 수학여행 비용(약 200만원)과 골프나 스키, 국궁, 가야금 등의 예ㆍ체능에 드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연간 1인당 총 교육비로 1,400만~1,500만원에 달한다. 수학여행을 미국으로 가는 이유는 학생들의 견문을 넓혀주자는 목적이지만 장차 미국 명문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사전조치의 성격도 띄고 있다.

학교의 한 관계자는 "학생들이 좋은 여건에서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데는 재단의 역할이 크다"며 "창립 때부터 구조적으로 재단이 학교 운영비를 무조건 지원하게 만들어놓아 학교 운영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오히려 파스퇴르 직원들의 불만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올해 2월에만 파스퇴르측은 학교운영에 소요된 총비용 6억410만원중 부족분인 4억9,937만원을 부담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4/11 15:24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