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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54)] 야마토(大和)

일본인에게 일본(日本)이란 한자를 읽게 해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대개는 그냥 '니혼'이라고 읽지만 더러는 '닛폰'으로 읽기도 한다.

'닛폰'으로 읽는 쪽은 대체로 보통 사람들보다 국가 의식이 강하다. 우선 어떤 말을 강조하려다 보면 저절로 발음이 세지기 마련이다. '닛폰'이 '니혼'보다 오래된 한문투의 발음이라는 점에서는 과거 회귀적 잠재 의식의 표현이다. 국제경기에서 일본 응원단이 '닛폰! 닛폰!'을 외치는 것도 스포츠 특유의 결집력 때문이다.

가두선전이나 시위에 나선 우익단체는 늘 '닛폰'이다. 이런 과거 회귀 의식이 더욱 강해지면 이른바 '야마토다마시'(大和魂)의 '야마토'에까지 이른다.

야마토는 나라(奈良)현 야마토 지방에 도읍을 두었던 일본 최초의 통일 정권이다. 국가 정체성에 대한 강한 희구가 아득한 옛날로까지 무리하게 거슬러 올라간 셈이다.

야마토 정권이 언제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는 한ㆍ중ㆍ일 3국에 관련 기록이 전혀 없다.

일본에 대해서는 30여개 소국이 야마타이(邪馬台)국의 여왕 히미코(卑彌呼)의 종교적 권위에 따르고 있다는 3세기의 기록 이후 5대의 왜왕이 송(宋)에 사신을 보내 왕위 책봉을 청했다는 5세기 중반까지 완전히 비어 있다.

신화를 적은 '니혼쇼키'(日本書紀)나 '고지키'(古事記)의 기록은 추정의 실마리로나 쓰일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 이전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한 권력이 존재했음은 이 시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거대 고분을 통해 확인된다. 이 시기의 고분은 긴키(近畿)지방을 중심으로 곳곳에 남아 있고, 특히 전방후원형 고분은 일본의 전형적 형태로서 눈길을 끌어 왔다.

가장 큰 것은 길이 486m, 높이 35m에 이르는 전방후원형 고분은 엄청난 노동력과 토목기술의 동원을 말해 준다.

야마토 정권의 지배자로 천황의 전신인 역대의 '오키미'(大王ㆍ大君)들이 정치ㆍ종교적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조성했고 연맹체내 소국의 수장을 비롯한 호족들도 이를 모방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고분을 제대로 발굴해 조사하면 야마토 정권의 수립 시기와 과정, 주체세력에 얽힌 수수께끼는 어느 정도 풀릴 수 있다.

그러나 궁내청은 황실 분묘로 추정되는 능묘는 물론 따로 정해둔 '능묘 참고지'까지 발굴 조사는 커녕 외부 측량조차 막아 왔다.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황국사관에 따라 그때까지 황폐하게 방치됐던 능묘를 챙기고 신화 시대 천황의 능까지 정해 만세일계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냈다.

그 허구성은 피장자를 일일이 정해 놓고도 스스로도 못미더워 능묘 참고지를 따로 정한 데서 자명하다. 제대로 피장자를 가리기 위해서라도 발굴조사는 꼭 필요하다. 그런데도 이를 막아 '황실의 출신이 드러날까봐 두려워서'라는 의혹만 증폭시키고 있다.

14세기 중반 천황의 측근이던 기타바타케 치카후사(北?親房)는 일본이 삼한과 같은 종족임을 밝힌 기록이 있었으나 8세기말에 불태워졌다고 적었다. 그것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세력이 야마토 정권을 수립했다거나 초기 천황가의 언어가 가야어였다는 등의 얘기를 낳았다.

프랑스 북부 노르만디 지방에 살고 있던 노르만족은 1066년 바다를 건너 소국분립 상태이던 영국을 정복했다. 이 정복을 통해 영국왕으로 등극한 윌리엄 1세는 프랑스왕의 제후인 노르만공의 지위도 그대로 유지했다. 그는 사후에 고국 프랑스로 돌아와 칸느사원에 묻혔지만 자손들은 대를 이어 영국왕에 올랐다.

이런 역사를 가야와 야마토 정권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그리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다.

야마토 정권의 수립기인 4~5세기 중반은 가야의 쇠퇴기와 겹친다. 신라와 백제의 압박에 밀리긴 했지만 가야는 고분 출토 유물에서 보듯 기마군단을 갖추고 있었다.

그 지배층이 새로운 거점을 찾아 기마군단을 이끌고 바다를 건넜다면 산재한 일본의 소국을 복속시키거나 정치적 타협을 통해 연맹체내에 편입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정치 통합의 결과가 규슈(九州)에서 긴키에 걸친 야마토 정권이었다.

'임나일본부'도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임나일본부는 야마토 정권 주체가 가야에 갖고 있던 옛땅일 뿐이다.

임나일본부의 다른 표현인 우치쓰미야케(內官家)는 조정의 직할 영지를 뜻한다. 가야가 멸망할 때까지 남았던 야마토 정권의 선산과 토지였다면 도읍지 근처가 아닌 바다 건너에 직할지를 두었던 수수께끼가 풀린다.

이런 상상을 뒷받침할 사료 발굴ㆍ재해석이 가능하다면 역동적인 한일 고대사의 모습을 밝힐 수 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가설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입력시간 2001/04/1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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