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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소녀의 '미아리 일기'

'마약중독·미성년 노예매춘·인신매매 충격 고백'

"그녀를 키운 건 7할이 어른들의 무관심이었다."

서울 모 정신병원 마약중독치료센터. 육중한 철문 너머에 A(18)양의 보금자리가 있다.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유난히 작은 151㎝의 키. 수줍은 미소를 지을 때마다 드러나는 덧니.

금단(禁斷) 현상 때문인지 반쯤 졸린 눈으로 힘겹게 말을 이어가다 가끔 "눈앞에 벌레가 어른거린다"며 손사래를 치는 거 외에는 평범하고 귀여운 소녀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내민 '지옥의 묵시록'을 펼치기 전까지, 엉킨 실 타래처럼 헝클어진 그녀의 고단한 삶을 더듬거리며 뱉어내기 전까지 말이다.

그의 충격적인 고백에는 마약과 미성년 노예매춘, 인신매매 등 우리 사회의 끔찍스런 단면이 모두 다 담겨 있었다.


교묘한 마약중독 족쇄

4년전 아버지와 함께 서울로 전학 온 A양의 삶이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 데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된 게 계기가 됐다. 죽은 줄 알았던 엄마가 어린 나이에 자신을 낳고 종적을 감췄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가출한 A양은 직업소개소의 '숙식 해결' 약속만 믿고 덜컥 단란주점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윤락은 14살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수치스럽고 힘겨웠다. "주인이 낙태 수술비를 빚으로 옭아매려 피임조차 못하게 했어요. 덜컥 아이가 들어서면 주인이 알려주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아이가 너무 불쌍했지만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어요."

더구나 수시로 이루어지는 구타와 감금은 소녀의 마음을 짓밟고 삶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나는 없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쯤 주점에 찾아온 한 아저씨가 피로회복제라며 준 히로뽕을 맞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하얀 가루약인줄 알았어요. 마음이 편해지고 근심이 사라졌어요. 그 뒤로 가끔 찾아오는 아저씨를 기다리는 일이 유일한 삶의 낙이었어요."

무료로 제공되던 약은 A양이 중독될쯤 끊겼다. 이 때부터 A양은 아저씨의 강요에 따라 닥치는 대로 마약판매에 나섰다. 같이 일하는 언니들, 친구들 가릴 것 없이 약을 팔고 간신히 1회 투약분을 얻었다. 그러길 1년. 하루에 7차례나 투약해야 할 정도로 중독이 심각했던 A양의 빚은 5,000만원까지 늘어났다.

결국 A양은 빚으로 인해 2년 전 속칭 '미아리 텍사스'의 D업소로 팔려갔다. 여전히 마약조직의 족쇄에서 풀려나지 못한 채 낮에는 마약을, 밤에는 10여 차례 몸을 파는 생활이 이어졌다. 쉬는 날도 없이 오후6시부터 시작되는 밤 영업은 다음날 오전7시가 되서야 끝이 났다.

심지어 마약조직은 A양을 옭아매기 위해 개조한 승합차 안에서 히로뽕을 투약하고 성관계 하는 장면을 비디오와 사진으로 촬영해 협박까지 했다.

"이곳을 평생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았어요.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틈틈이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작성된 날짜는 감시와 단속을 피하느라 지워지고 여기저기 찢어졌지만 깨알 같은 글씨로 써 내려간 '미아리 일기' 곳곳엔 18세 소녀의 가슴 아픈 고뇌가 곳곳에 묻어 있다.

'지금 (오전) 7시 모두들 잠들 시간에 나는 우연히 전에 학교에서 찍었던 사진 한 장을 내 지갑 속에서 발견했다.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순진했던 얼굴, 마약중독자라는 것을 찾기 어려운 내가 왜 마약중독자가 되었으며, 왜 미아리에 있는 걸까?. 이곳이 싫다. 약도 끊고 싶다. 하지만 끊을 수 없다.'

'오늘이 처음은 아니지만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낙태 수술을 했다. 아이가 불쌍해진다.

4개월. 왜 나는 매일 이렇게 죄책감 속에서 시달리면서 살아야 하는가?. 여기서 일하는 언니, 친구, 동생들 모두 나 때문에 마약중독자가 되고 있다. 친구가 울면서 약 달라고 나를 붙잡고 때리면서 한 말이 '약 없이 못살아. 빨리 약 줘. 약 안주면 죽일거야'다. 난 속으로 '미안해'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손님 한명이 나에게 변태적으로 성관계를 원했다. 나는 거부하고 싶었지만 돈을 두배로 준다고 해 그만 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제는 나에게 있어서 정말로 지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 친구가 손님으로 왔다. 아저씨는 '너 왜 여기 있냐'며 나무랐지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돈 받고 간 단속경찰,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오늘 단속 뜨러 종암경찰서에서 나왔다. 주인 언니가 뇌물을 건네주자 아저씨들은 돈을 받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이곳엔 미성년자가 7명이 넘는데. 순간 화가 났다.

이제는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

'꿈을 꿨다. 오랜만에 맛볼 수 있는 행복함을 누릴 수 있었다. 넓은 잔디밭에 앉아서 친구들이랑 노는 꿈. 눈물이 자꾸 나온다. 미아리에 들어오면서부터 눈물이 많아졌다. 왜 날 구해주려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는 것일까? 날 찾지 않는 부모, 미성년자를 이용해 돈 벌려는 사람들, 우리에게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 그리고 이 사회가 원망스럽다.'

'문득 하늘을 보았다. 새들이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을. 너무나 자유로워보였다. 언제쯤 나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까? 아마 나는 여기 평생 있어야 할지도.'

자신이 쓰는 일기를 유일한 안식처로 삼으며 희망 없던 삶을 살던 A양은 마침내 미성년윤락 단속이 강화된 지난 여름, 감금돼 있던 업주 집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재활이 아니라 또 다른 좌절이었다. "막상 탈출했지만 갈 곳이 없었어요. 청소년 쉼터를 찾았지만 마약 중독자라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어요. 병원을 찾아가라거나 경찰에 자수하라는 말이 전부였죠.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아버지마저 신장암 수술로 누워 있어 집에 갈 수도 없었지요."

A양은 "살아야겠다"는 절박한 생각에 이를 악물고 마약의 유혹에 맞섰지만, 견디다 못해 환각성분 감기약을 과다복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6개월이라는 긴 악몽과 무관심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겨우 현재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A양이 신변위협마저 무릅쓰고 자신의 일을 세상에 알리려 한 이유는 자신처럼 마약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친구'들을 구하고 싶었기 때문. "업주들이 윤락녀들을 숨겨두거나 지방으로 팔아 넘겼을 뿐, 미성년 윤락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어요.

또 같이 일했던 친구들 대부분이 저 때문에 마약 중독자가 됐지만 도움 받을 곳이 없어요. 마약을 구하는 것보다 치료 받을 곳을 찾는 게 더 어렵거든요.

마약에 중독된 청소년에 대한 따뜻한 배려는 TV 광고에만 존재할 뿐이죠. 현재 운영되고 있는 쉼터에선 마약 중독자를 받아들이면 다른 아이들에게 해가 될까 봐 아예 문을 닫아두고 있습니다."


"다시는 지옥으로 돌아가지 않을래요"

요즘 치료 받는 틈틈이 요리학원을 알아보고 있는 A양의 꿈은 '마약 청소년 쉼터'의 요리사가 되는 것. "마약을 하게 되면 식욕이 떨어져 위까지 상하게 되거든요. 그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무엇보다 마약을 끊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이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아직 A양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마약의 유혹, 이 사회의 편견과 무관심 등 그가 헤쳐가야 할 장애물은 아직 많고 높기만 하다.

몸 속에 남은 마약의 앙금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켜 원치 않는 짜증을 만들 때면 치료하는 간호사와 다툴 때도 많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어요. 다시는 지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세상이 무관심할수록 이를 악물고 이겨낼겁니다."

병실로 돌아가는 18세 소녀의 어깨는 무거워 보였지만 한걸음씩 내딛는 그녀의 발걸음만은 듬직해보였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입력시간 2001/04/1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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