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뉴스포탈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서울경제
KoreaTimes
대한항공 대우통신
주간한국  
www.hankooki.com  


 
주간한국 홈
구독신청
독자 한마디
편집실에서


   벤처 스타열전
   인터넷 세상
   신동의보감
   땅이름과 역사

[인간탐구] 비디오 저널리스트 김진혁

인간미를 담는 카메라 게릴라

김진혁(38)은 VJ다. 혼자 기획하고 혼자 취재하는 비디오 저널리스트다. 6mm카메라 하나로 세계를 누빈다. 최근엔 일본에 다녀왔다. 50년간 원숭이를 관찰했다는 한 할머니가 이번엔 그에게 관찰을 당했다.

촬영분량만 1시간짜리 테입 31개. 아무래도 김씨가 할머니에게 반한 것 같다. 어쩌면 취재 때마다 앓는 직업병일지 모른다.

"원숭이가 사람과 꼭같다고 하쟎아요. 이 할머니는 스물여섯살 때 자식 셋만 남기고 남편이 죽은 뒤 실의에 빠져있다가 친정 동네에서 이 원숭이들을 만난 뒤 다시 살아야겠다는 힘을 찾았다고 합니다. 현재 여든일곱살이신데, 참 예쁘세요. 좋은 일을 하는 사람 얼굴이 돼서 정말 예쁘세요."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일당 백' 해외파

누가 부탁한 일도 아니다. 가보란 사람도, 와달라는 사람도 없었다. 자신이 원해 무작정 나섰다. 이 일본 할머니의 경우 3년에 걸쳐 촬영했다. 단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현재도 편집중이다.

아직 이 작품을 사겠다는 방송사도 찾아보지 않았다.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VJ 경력 4년째, 햇수는 짧아도 이미 작품력을 보증받은 베테랑이다. 같은 VJ중에서도 그는 국내파가 아닌 해외파다.

1998년부터 미국과 영국 등은 물론 아마존 오지까지 돌아다니며 일당백을 해냈다. 기획, 섭외, 구성, 촬영, 편집은 기본, 대본 집필에다 직접 방송에 출연해 리포터 노릇까지 해치운다.

과거 MBC 드라마 조연출과 SBS 교양국 PD생활도 한 바 있다. 현재 활동중인 VJ중에서도 대본 집필과 출연까지 손수 해결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유독 사람에 관심이 많은 그는 그 자신도 흥미로운 관찰대상이다. 나이 서른여덟, 그를 해부해본다면 어떨까? 1988년 연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 토목공학과 교수인 아버지의 권유때문. 선택이 잘못됐다는 건 입학하고서야 알았다.

원래부터 책 읽기만 좋아하고, 수학엔 질색을 하는 인문계 체질의 자연계 학생이었다. 공부 대신 연극에 빠졌다. 연출, 미술, 조명 등을 맡아 대학연극반에서 살다시피했다.

3학년때 가까스로 마음을 잡고 공부해 토목기사 시험을 봤지만 떨어졌다. 차라리 진로를 결정하기엔 유익한 판정이었다. 평소 관심있던 사회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 거의 전 과목 A학점을 기록할 만큼 화색이 돌았다.

졸업후 MBC 방송문화원 1기생으로 들어갔다. 연수과정중 현역 PD의 눈에 띄어 MBC 프로덕션 드라마 조연출이 됐다. '창밖에는 태양이 빛났다' '제3공화국' 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사실상 잡역부였다. 그가 한 일이라곤 돈 계산과 길 안내 따위의 자질구레한 뒷바라지 일색. 황인뢰 PD 아래서 일할 땐 권총이 필요하다길래 헐레벌떡 근처 경찰서로 달려가 권총을 빌려온 적도 있다.

잦은 밤샘에다 강행군이었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제작의 기회가 오리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입사 1년만에 어처구니없이 무너졌다. 어느 회식 술자리에서 한 선배의 주사를 말리다 이상하게 휘말려 '하극상'이란 이유로 퇴직당했다.

방송문화원 시절 그의 재능을 기억하던 한 분의 도움으로 곧 MBC 미술센터에 입사했다. 영화 '영원한 제국' 등의 영화미술프로듀서로 일했다.

하지만 1년 뒤 이번엔 제 발로 나오고 말았다.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얻은 것이라곤 퇴근 시간이 일정한 덕분에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어설픈 방송생활 접고 16mm 영화에 도전

퇴사후 곧바로 16mm영화에 도전했다. 8개월이나 걸려 시나리오를 썼다. 제목은 '눈물'. 일상속에서 살아가던 한 샐러리맨이 회사와 책, 여자 등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시골에 들어가 땀흘리며 농사를 짓고 살아보지만 결국엔 원래의 일상속으로 되돌아오고야 만다는 내용이었다.

그 남자는 김씨 자신의 고민을 옮겨놓은 분신이었다. 제작비 1,000만원은 과외와 사진 아르바이트로 벌었다. 한때 퍼포먼스에 심취한 적도 있다.

홍익대 앞 한 카페에서 '이드(Id)를 위하여'라는 제목 아래 웃통 벗은 청바지 차림으로 열연했을 땐, 워낙 반응이 좋아 연장공연을 제안받기도 했다.

1995년엔 한 프로덕션에 다시 입사했다. MBC '출발 비디오여행'을 제작,공급하는 업체였다. 자신부터가 워낙 영화광이라 그가 만든 프로그램은 금새 티가 났다.

타방송사까지 뒤따라 유사 포맷으로 좇아올 만큼 높은 인기를 누렸다. 2년만에 공중파로선 최초인 경력PD공채를 통해 SBS 교양국 PD로 자리를 옮겼다.

'송지나의 취재파일 세상속으로' 등을 제작했다. 일 자체는 좋았지만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방송사나 제작부서마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기 마련. 갓 들어간 외부출신 PD로는 언제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맡을 수 있을지 까마득하기만 했다.

사람들의 개인주의에도 좀처럼 적응이 안됐다. 고민 끝에 예능국으로 옮겼지만, 결과적으론 악수가 되고 말았다. 이내 IMF가 닥치면서 감원바람이 불자 정리해고 1순위로 잘리고 말았다. 본사 출신도 아닌 외부출신에다 예능국 토박이도 아닌 교양국에서 건너온 타부서 출신 식구였던 것. 두번째 해고 경험이었다.

"그 후 VJ가 됐습니다. 제가 알기론 공중파 방송사중 SBS에서 가장 먼저 VJ 시스템을 도입했을 겁니다. 아침방송에 계시던 한 차장님이 처음엔 한 작가 출신의 VJ를 가동했는데, 그때도 촬영과 편집은 다른 분이 맡았던 것으로 압니다.

그 얘기를 나중에 듣고선 직접 그 차장님을 찾아가서 제가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해외물을 맡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외국만 돌아다녔습니다."

그가 파악하는 VJ는 세 부류다. 상업성이 아닌 예술성을 추구하는 정통파와 자신처럼 방송용 프로그램을 주로 제작하는 상업적인 PD들, 그리고 방송사와 연계하긴 하지만 주로 촬영, 편집 단계까지만 주문제작해주는 VJ들이다.

세가지를 견주어 보면 김씨의 경우는 가장 상업적이면서 가장 다기능을 발휘하는, 최정예화된 첨병이라 할 수 있다. 그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SBS 출발 모닝와이드'의 단골이었다. 그간 방송한 내용만 10여가지 주제, 각 주제당 적게는 7편에서 많게는 30편까지 연속 시리즈를 냈다. 리포터로도 직접 출연했다. 오히려 VJ가 된 뒤 얻은 '덤'도 많다.

타이틀부터가 자신의 이름을 머리에 달고 있다. '김진혁 PD의...'로 시작되는, 말하자면 그의 독자브랜드다. 다른 스태프의 동의를 구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초창기의 두어 프로그램을 빼고는 아이템부터 직접 고른다. 혼자라서 오히려 일사천리다. 책임은 본인이 진다. 체력적인 문제만 빼고는 혼자라서 오히려 즐겁다.

샌프란시스코 리포트로 뗀 첫 발은 프랑스와 북극기행, 필리핀, 일본, 남미, 아시아 7개국 미항 등을 거쳐 최근 베네룩스 3국까지 분주히 이어졌다.

1년중 5개월은 해외출장이다 보니 여권은 출입국 도장들로 여백이 빠듯하고, 이력이 나다 못해 이젠 머나먼 아마존이 그에겐 대전만큼 지척이다.


잦은 해외출장, 죽을고비 무수히 넘긴 간 큰 남자

그가 담는 주제는 궁극적으로 사람의 문제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자신의 관심사이자 취재의 출발이다. 동거족들의 천국 파리에선 심지어 어린 딸을 가진 부모조차도 '내 딸이 커서 동거하기를 바란다'는 그들의 마음속을 뒤지고 다녔다.

필리핀에선 가난이 꼭 불행이 아님을 증명하는데 소진했다. '가난한 부자'들만 열심히 찍고 다녔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전통여관의 아들과 결혼하면서 가업을 물려받는 수업을 하고 있던 며느리, 결혼전의 스튜어디스 꿈을 포기한 그녀에게 만족하느냐고 묻자 "이 일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해야 할 일이므로 마땅히 할 뿐이다"란 대답을 들었다. 책임감은 있지만, 행복하지는 않다는 얘기였다.

일본 원숭이섬 할머니의 얘기도 어쩌면 인간의 행복을 말하려는 그의 우회전법이 아닐까? 어쨌든 사회학도 출신다운 물음이 바탕 깊숙이 깔려 있다.

"서구사회는 합리성이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제 취재원중엔 평생 개와 함께 살아가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왜 사람이 아닌 개와 사냐고 물어보니 혹시 자기가 상대에게 방해가 되진 않을까, 사람과의 관계가 두렵다는 겁니다. 독신주의나 개인주의의 마지막은 더 쓸쓸합니다, 젊고 매력이 있을 땐 괜찮지만 늙고, 볼 품이 없어지고, 자식까지 없으면 결국 혼자라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벼룩시장 같은 곳에다 '파트너 구함'이라는 광고를 싣는 게 그들의 말로죠."

취재중 고생도 국제급이다. 열기구 횡단과정을 담은 북극탐험 취재때는 도착직전 카메라가 고장 나 부랴부랴 사방을 수소문해 응급처치를 받는 소동을 치렀다. 영하 40도의 추위는 특히 치를 떨게 만들었다.

200만원짜리 방한복을 입고 테러리스트처럼 겹겹이 완전무장했다가 숨쉬기가 갑갑해 잠시 얼굴을 내놓은 것이 화근, 코가 동상에 걸려 취재 내내 발진에다 가려움으로 코를 긁고 다녔다. 촬영기간 내내 주사와 약 신세를 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두달 동안 계속된 남미취재 때엔 한번 이동했다하면 20시간동안 버스를 타기가 예사, 잠은 값싼 여인숙에서 대충 때웠다. 브라질 어느 밤거리에선 떼강도를 만나기도 했다. 한밤중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다가 칼을 든 남자들로부터 돈을 털린 것.

그러나 으시시한 무용담은 그에게 기대하지 말기 바란다. 배가 고파 돈을 요구하는 모양이 측은하게만 보여 서슴없이 주머니를 털어준 뒤 그냥 숙소로 돌아가 잤다는 게 전부다.

정말 죽음의 위협을 받은 건 아르헨티나의 비행기안에서였다. 심한 바람 때문에 착륙에 거듭 실패, 도착예정시간을 넘어선 2시간동안 기내에 갇힌 채 상공에 떠있었다.

어쩌다 착륙을 시도하더라도 강풍의 영향을 받은 비행기 날개가 땅과 세게 충돌하면서 당장이라도 기체가 뒤집힐 듯 심한 요동을 쳤다. 사색이 된 채 벌벌 떠는 탑승객들 속에 앉아 그도 생사의 공포를 겪었다. 자칫하면 객사하는 줄 알았다.

어느 아침방송땐 방송시작 5분전에 간신히 편집을 끝내 주위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적이 있다.

그날은 아예 세수도 못한 얼굴로 방송에 출연했다. 워낙 불규칙한 생활 때문에 건강도 상했다. 그래서 마라톤을 한다. 매주 한번씩 자신의 집 주위 10Km씩 뛰는 것은 물론, 해마다 하프마라톤대회에도 빠짐없이 참가하는 아마추어 마라토너다.


'김진혁 공작소' 차려놓고 두번째 영화준비

1년전쯤 '김진혁 공작소'라는 별도의 작업공간도 마련한 그는 먹고 살기 바쁜 와중에도 얼마전 두번째 16mm자작 영화를 준비했다. 제목은 '한강을 건너다'이다.

이번엔 극중 여자가 그의 분신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버스터미널 매표원으로 일하는 한 여자가 수원으로 이사를 가면서 한강을 건너다가 문득 옛 애인을 생각하고는 전화를 건다. 그녀와 재회한 옛 남자는 연애시절에 꿨던 돈 10만원을 들고나와 갚지만 그것이 그녀를 화나게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침한다. 여관에서 먼저 나온 여자는 혼자 버스를 타다가 버스비를 안냈다고 화를 내는 버스기사로부터 혼이 난 뒤 혼자 걸어서 한강을 건넌다. 그때 건너편에선 한 남자가 걸어오고 그 남자가 옆으로 지나치는 순간 여자는 '흑'하고 울고 만다는 내용이다. 아무래도 그 역시 그의 안에서도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방송 VJ의 수명은 길어야 50세까지일 것으로 그는 본다. 분초를 다투는 방송생리에 체력상 한계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평생 세계 한바퀴는 돌고 올 생각을 하고 있다.

어디에 가든 그는 여전히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묻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오래 전부터 스스로에게 묻고 싶던 질문을 애꿎은 바깥 사람들에게 던져보는 것도 같다. 그런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내가 묻고 싶은 건 그것이었다.

정영주 자유기고자 mar10@chollian.net

김명원 사진부 기자 kmx@hk.co.kr

입력시간 2001/04/18 16:06



 

◀ 이전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