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한국 부모 미국 아이

미국에서 생활한지도 이제 만 10년이 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따금 들르는 서울에서 "정말 변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스스로가 아직도 10년 전 미국에 갓 도착한 '서울 촌놈'같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데, 어차피 뒷동산과 시냇물이 흐르는 고향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는 도시에서 자랐지만 미국에서 이방인 느낌을 쉽사리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은 서울의 부모님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요사이 많은 사람들이 미국 이민을 생각하고 있는 것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나라의 교육제도에 실망하고 내 자식만은 좋은 환경에서 잘 교육시켜보겠다는 생각에서 미국 이민을 오려고 한다는 것이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열풍처럼 번져가는 교육 이민을 놓고 열띤 찬반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 온갖 시험을 보면서 군사 교육까지 포함한 고등 교육을 다 받은 필자로서는 우리 나라의 교육제도를 변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대안으로 찾는 미국을 포함한 외국 이민이 올바른 해결책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많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엔 한 한국인 이민 가정의 이야기가 1면 기사로 소개됐다. 10여년전 이민을 와 식당업으로 성공한 아주머니에 대한 이야기인데, 간단히 옮겨보면 다음과 같은 스토리다.

이민 온지 10여년이 지난 한국인 아주머니는 미국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1년 365일 쉬지 않고 일했다. 그 결과 생활은 어느 정도 안정됐고, 이제는 음식점을 두 개씩이나 갖고 있는 사장님으로 변했다.

그런데 문제는 둘뿐인 남매 중에서 아들과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식당에서 한국말을 사용하고 집에 와서도 한국 방송 뉴스나 드라마를 시청하며, 완전히 한국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반면에 막 걸음마를 시작할 즈음에 미국에 와 이제 16살이 된 아들은 모든 것이 미국화했다.

학교의 친구들은 물론이려니와 먹는 음식, 듣는 음악이나 시청하는 TV프로 등 모든 것이 전형적인 미국 것에 뿌리 박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들은 한국어를 전혀 못하고 어머니는 영어를 거의 못한다. 때문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큰딸이 중간에 나서서 통역을 해 주어야 하는데, 그나마 딸의 한국어 실력이 모자라 제대로 의사전달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는 자식에게 가슴속에 있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식은 자식대로 부모만 보면 자리를 피하게 된다.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10대 청소년기에 있어서 아주머니네 가정은 대화의 도구를 잃어버린 것이다.

아들의 입장에서도 어머니의 엉터리 영어를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말을 알아듣기는커녕 오히려 오해만 하는 어머니와의 대화가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이 아주머니가 이민을 온 뒤 어찌 아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랴. 모든 한국 부모들이 다 그러하듯이 그도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야 한다는 마음에서 열심히 돈도 벌고 이민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부모와 자식간에는 건널 수 없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만을 쌓아놓은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예일 수가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생활하는 한국 부모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일 것이다.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와 이야기할 때 필자는 한국어를 고집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 아이들과 대화가 막힐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 비해서 미국의 교육환경이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객관적으로 나은 것은 사실이다. 학급당 학생 수나 학생 당 배정된 교육예산 등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새삼스럽게 우리 나라의 교육 현실을 탓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최근 들어 우리 나라의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이 거세진 것은 교육의 질에 대한 기대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 나라 교육 현장에도 시장원리를 도입하여 수준 높은 교육을 원하는 사람들은 교육 이민을 가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교육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국 부모로서 미국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이냐를 미리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박해찬 미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1/04/24 20:41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