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55)] 도라이진(渡來人)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 내년부터 일본의 중학교에서 사용될 8종의 역사교과서 가운데 하나인 오사카(大阪)서적의 교과서는 야마토 (大和)정권의 초기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중국과 조선의 기록에는 4세기께부터 왜(倭)가 조선의 각국과 교섭 한 것이나 5세기 왜왕이 5대에 걸쳐 중국에 사신을 보낸 것이 보인다. (중략) 조선인들이 일족을 모두 데리고 일본에 이주하는 경우도 증가했다. 이들을 '도라이진'(渡來人)이라고 한다."

이어 도래인에 대한 각주를 덧붙였다. "야마토정권의 서기관으로 일하면서 외교문서나 기록 작성을 맡은 일족도 있었다. 이들에 의해 한자, 유교 등이 전래되고 백제로부터는 불상과 경전도 들어 와 일본의 기술과 문화가 눈에 띄게 발전했다."

또 사진설명도 곁들였다. "도래인과 그 자손은 일본 각지에 살고 있었다. 고대 일본 인구의 거의 3분의 1이 도래인이었다는 설도 있다. 도래인은 생산기술의 중요한 담당자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ㆍ경제ㆍ 문화의 중심적 역할을 맡았다.

오사카ㆍ 나라(奈良)ㆍ 시가(滋賀)ㆍ 사이타마(埼玉) 등 각지에 도래인의 업적을 말해주는 유적이 지금도 많이 있다."

선진 문물을 들고 대규모로 이동해 온 한반도계가 모든 분야에서 핵심을 이루어 일본 열도의 모습을 바꾸어 나갔다는 내용이다. 다른 6종의 교과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비슷한 내용을 담았다.

유독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편찬한 일본의 중학교용 역사교과서만은 이를 '밖에서 들어 온 사람들'이라고 해 한반도계임을 가렸다.

한반도의 고대국가 발전기인 4세기부터 3국을 통일한 신라의 정권이 안정되는 7세기말까지 도래인은 한반도의 정치적 압력에 떠밀려 끊임없이 바다를 건넜다.

가야의 쇠퇴와 멸망, 나당 연합군에 의한 백제ㆍ고구려의 멸망 등 크고 작은 정치적 변혁이 있을 때마다 정든 땅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다. 바다를 건너 일본에 정착한 이들은 오랫동안 일본 사회의 지배층을 이루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 기층 사회에 녹아 들어갔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이들은 2차 도래인에 지나지 않는다. 앞서 기원전 3세기께 한반도로부터 대규모 인구 이동이 있었다. 흔히 '야요이진'(彌生人)으로 불리는 이들이 일본 열도에 미친 영향은 2차 도래인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이들에 앞서 일본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조몬진'(繩文人)이다. 당시의 대표적인 토기가 표면에 새끼줄을 이용해 무늬를 찍은 '조몬'(繩文) 토기 였기 때문이다.

1884년 도쿄(東京) 분쿄구(文京區)의 야요이(彌生) 마을에서 조몬토기와 형태가 전혀 다르고 1,000도 가까운 고온에서 구운 토기가 대량 출토됐다. 이것이 '야요이 토기'로 명명되면서 조몬 시대 다음을 '야요이시대'라고 부르게 됐다.

조몬시대에서 야요이시대로의 이행은 신석기 문화에서 청동기 문화로, 수렵련ㅓ?경제에서 농작 경제로의 이행이었다. 4세기 이후보다도 더욱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일본에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일본의 전통문화가 대부분 농경 의례의 흔적을 강하게 드러내듯이 야요이 문화는 일본 문화의 출발점이라고 할 만하다. 일본 국가의 원형인 환호읍락이나 그후의 야마타이(邪馬台) 등 소국이 모두 이때에 시작됐다. 4세기 이후 도래인에 의한 문화 이식을 포함하면 일본 문화에는 한반도 문화가 두겹으로 칠해져 있다.

야요이인들의 이동은 2차 도래와 마찬가지로 당시 중국 대륙과 한반도의 정치ㆍ군사 정세의 결과였다. 중국에 한(漢) 제국이 출현해 고조선을 압박하던 때였다.

한반도의 철기 보급이 기원전 4세기경 북부에서 시작돼 기원전 1세기에 남부 지역으로까지 퍼졌다는 점에서도 대륙에서 시작된 압력이 도미노식으로 한반도와 일본에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역사는 일본에 미친 한반도의 강한 영향을 드러냄과 동시에 야요이인과 현재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사이의 거리감을 뜻하기도 한다. 1ㆍ2차 도래를 통틀어 '일본에서 한민족을 빼면 남는 것이 없다' 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한민족'을 포함한 오늘날의 모든 민족 개념은 근대에 들어 정착했다는 보편적 인식을 결여한 채 이를 '한반도계'와 동일시해 민족적 자부심의 근거로 삼으려는 사고 방식은 도래인이 '한반도계'임을 애써 가리려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편협한 역사관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편협한 국가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애국심은 바보들의 마지막 도피처'라는 새뮤얼 존슨의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입력시간 2001/04/2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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