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 한달] "한눈 팔면 비행기 놓쳐요"

볼거리 많아 공항청사, 너무 멀어 '나홀로 여행객' 많아져

개항 한 달을 맞은 인천공항은 김포공항 시절과 비교하면 새로운 공항 풍속도를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

지리적으로 서울과 멀리 떨어진 데다 축구장 60개 크기의 매머드급 여객청사 때문에 생긴 현상이 대부분이다. 해외로 떠나기 위해 공항을 찾는 여행객들은 말할 것도 없고 김포에서 인천으로 일터를 옮긴 상주 직원들의 생활 패턴에서도 크고 작은 변화를 찾아볼 수 있다.

장거리 이동에 따른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가 속출하는가 하면 개항 초기의 어수선한 틈을 비집고 엉뚱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너무 멀어서 '울고' '웃고'

공항 신풍속도를 만들어낸 핵심은 역시 '너무 멀다'는데 있다.

서울 도심에서 편도 50km가 넘는 거리와 승용차 기준으로 편도 6,100원을 내야 하는 비싼 통행료 탓에 과거 주말이면 공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환송ㆍ환영행사가 크게 줄었다.

특히 결혼 시즌을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는 신혼 여행객들도 대부분 환송객 없이 단출하게 출국하는 모습들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박모(31ㆍ회사원)씨는 "결혼식을 올린 뒤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신부와 둘이서만 리무진 버스로 공항에 왔다"며 "예전 같으면 친구들이 공항까지 몰려왔겠지만 너무 멀고 번거로울 것 같아 말렸다"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측은 "김포공항 시절엔 하루 4만~5만명인 여행객들보다 환송ㆍ환영객이 7만명가량으로 오히려 더 많았는데 이곳에선 역전됐다"며 "주위의 배웅이나 환영을 거절하고 혼자 공항에 나오는 '나 홀로 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주말에도 환송ㆍ환영객이 3만명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사들도 '먼 길' 때문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대한항공은 승무원들의 편의를 위해 스튜디어스들이 근무복을 입고 출퇴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근무복을 입고 유흥업소를 출입하거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동(?)을 자제하도록 당부중이다.

대한항공 스튜디어스인 송모(30)씨는 "아직까지는 승무원들이 출퇴근 때 코트 등 사복을 겉옷으로 걸치고 있기 때문에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앞으로 날씨가 더워지면 거리에서 근무복을 입고 다니는 스튜어디스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김포 본사에서 인천공항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버스 안에서 비행 브리핑을 하는 묘안을 짜냈다. 이를 위해 버스 좌석을 개조, 서로 마주보면서 '버스 미팅'을 가능하도록 했다.

공항 상주직원들도 시간과 돈을 절약하기 위한 아이디어 발굴에 골몰하고 있다. '서울 양천구에서 통근, 편도 2,000원, XXX승용차, 연락 바람'이란 벽보를 붙이는 등 카풀을 위한 정보 교류도 활발하다.


너무 커서 '헤메고' '놓치고'

연면적 15만평 규모에 길이 1,066m, 폭 149m에 이르는 매머드급 여객청사 때문에 갖가지 웃지 못할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공항공사 관계자는 "워낙 건물이 커서 개항 후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며 "업무 협조를 위해 관련 기관 몇 군데를 돌다 보면 다리와 허리가 다 아플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이 때문에 인천공항에 상주하는 젊은 직원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이 퀵보드. 공사측은 "개항 준비 때부터 일부 직원이 퀵보드를 이용하기 시작해 이젠 낯선 풍경도 아니다"면서 "개항 후 금지 시킬까도 생각했지만 별다른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 퀵보드 사용을 막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여객용 카트 분실도 공항이 크기 때문에 생긴 일. 제동력이 뛰어난 브레이크와 완충장치 등이 부착된 고급 운반도구로 공항에 입주한 기관과 업체가 물품 운반용으로 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할인점의 쇼핑 카트와 비교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등 기능이 편리하고 튼튼하기 때문에 일부 여행객들이 몰래 가져간 경우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사관계자는 "개항 후 보름만에 총 4,000여개의 카트 중 10%가 분실됐다"며 "대당 50만원에 제작된 카트가 자꾸 없어져 고민"이라고 말했다.

일찌감치 공항에 나왔다고 느긋하게 공항을 둘러보던 여행객들도 의외의 낭패를 보기일쑤다.

장기주차장에서 여객터미널까지 1km 가량 떨어져 있는데다 자신이 이용할 항공사 카운터 위치를 모르는 경우, 허둥대며 찾아 다니다가 비행기를 놓치기도 쉽다.

특히 출국절차를 끝내고 보세구역에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평균 600평이 넘는 4개의 면세점과 커피숍, 카페 등 편의시설에 눈을 돌리다 보면 비행기 출발 시간을 맞추기에 바쁘다.

일부 중앙에 위치한 탑승구를 제외하고는 청사 중심에서 평균 500m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기주차장에 도착해서 터미널로 이동, 출국장을 한번 둘러보고 출국 수속과 면세점 쇼핑에 이어 자신이 이용할 비행기 탑승구까지 이르는데 평균 3km의 이동거리가 필요하다. 법무부 출국심사 관계자는 "공항 이용에 익숙하지 않은 여행객들이 비행기 시간에 늦는 사고가 종종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휴대품 검색 폐지, 밀반입 늘어

김포공항과 달리 입국자들의 휴대(Hand-Carry) 물품에 대한 X레이 검색을 폐지하면서 수속이 빨라져 입국장 혼잡이 사라지는 등 여행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지만 휴대용 가방을 이용한 밀반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휴대품 통관 관계자는 "김포공항에서는 밀반입 적발 건수가 하루 한두건에 불과했지만 인천공항서는 4~5건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배낭객으로 위장해 입국하려던 중국인 여자 여행객의 배낭에서 병당 110만원이 넘는 양주 3병과 고급 외제시계 8개, 향수 24병 등이 쏟아져 나왔고, 재미동포 휴대품의 커피 봉지 속에는 비아그라 44병 등 시가 2,500만원 상당의 의약품이 숨겨져 있었다.

심지어 양쪽 손목과 팔목에 고급 외제시계를 차고 입국하려다 들통난 주부도 있다. 세관은 밀반입이 크게 증가하자 여행자 정보 분석과 우범 여행자 특별관리 등을 통해 밀수사범 단속활동을 강화키로 했다.

또 공항 경찰대 관계자는 "여객터미널내 휴지통 등에서 빈 지갑 등이 다수 발견돼 인천공항에도 이미 소매치기범들이 진출한 것 같다"며 "사복경찰을 곳곳에 배치, 검거작전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장래준 사회부 기자

입력시간 2001/04/25 17:40


장래준 사회부 ra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