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대상 성범죄자 신원공개]
"뜨면 죽는데…" 잠 못 이루는 170人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7월 신상공개, 피공개자 '전전긍긍'

잠 못 이루는 사람이 많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내용처럼 로맨틱한 사연이 아니다. 미성년 10대와 성관계를 가졌다 들통난 사람들이 신원공개를 앞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패가망신의 번지점프대에 서있는 피공개자는 모두 170명. 총리실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 김성이)는 4월23일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300명에 대한 2차례의 심사를 거쳐 170명의 신원을 공개키로 확정했다.

공개 시점은 7월 말. 공개 내용은 해당 범죄자의 이름, 나이, 생년월일, 직업, 주소 등 신상과 범죄사실 요지다. 이들 내용은 관보와 청소년보호위 인터넷홈페이지(www.youth.go.kr), 정부중앙청사 및 16개 시ㆍ도 게시판을 통해 공개된다.

인터넷홈페이지에는 6개월, 관공서 게시판에는 1개월간 게시된다. 사법처리 과정에서는 언론에 보도됐다 해도 익명으로 처리돼 주변의 극히 일부 사람만 알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인터넷의 위력을 아는 피공개자는 공개가 곧 매장이란 사실을 알 것이다.


2차 공개심사대상자도 2,000명

신원공개는 지난해 7월1일 발효된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

이번 공개는 시범 케이스가 아니라 첫번째에 불과하다. 청소년보호위는 앞으로 6개월 간격으로 계속 공개할 계획이다. 2차에서 공개될 성범죄자는 더 많아질 전망이다.

9월 심사에 들어가 12월이나 내년 1월께 공개될 2차 공개의 심사대상자는 2,000여명에 이른다. 이 같은 숫자는 한국사회 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심각성과 현주소를 대변한다.

이번에 공개될 170명의 모집단은 300명. 심사대상 범죄자는 범행 시점이 지난해 7월1일 법 시행 이후로서 올 1월7일까지 형이 확정된 자에 한정됐다. 청소년보호위는 당초 검찰로부터 309명에 대한 범죄자료를 제출받아 이중 심사제외 대상인 보호처분대상자 2명과 법 시행 이전의 범죄자 7명은 뺐다.

심사대상자 300명은 올 3월 공표된 신상공개 심사기준에 따라 2차례의 '엄선'과정을 거쳤다. 1차 심사는 법조계, 학계, 시민단체 인사로 구성된 신상공개심사위가, 2차 최종심사는 청소년보호위 본회의가 맡았다. 1차 심사는 경찰조서와 검찰 공소장, 판결문 등 범죄자료를 바탕으로 했고, 2차 심사는 범죄자의 의견을 담은 소명자료 등을 참고했다.

공개가 확정된 170명의 범죄유형은 강제추행이 35%(60명)로 가장 많았다. 이들 강제추행 피해자의 77%가 13세 미만 어린이였다.

이어 강간범 28%(49명), 청소년 성매수범(원조교제) 16%(28명), 강간미수범 12%(21명), 영업적 매매춘 알선ㆍ강요ㆍ권유범 9%(15명) 등 순이었다.

범죄자 연령별로는 20대 28%(47명), 30대 38%(64명), 40대 23%(39명), 50대 8%(14명), 60대 이상 3%(6명)였다. 직업별로는 무직 21%(35명), 회사원 19%(32명), 주점업 등 자영업 17%(30명), 노동 9%(16명) 등 순이었다. 나머지 57명에는 공무원 3명과 운전기사 7명, 학생 5명이 포함돼 있다.

피공개자에는 특히 근친상간 등 반인륜적 범죄자가 4명이 들어있어 충격을 더한다.

친아버지가 미성년 딸을 강간한 경우가 3명이었고 모의동거인, 즉 비혼인 동거녀의 딸을 강간한 경우도 1명 있었다.


징역, 집행유예 이상은 거의 공제대상

공개심사위는 심사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범죄의 경중 등을 토대로 한 점수제와 절대평가제를 채용했다.

심사기준에 따르면 범죄자의 확정판결 형량에 가장 무게가 주어졌다. 형량이 40점, 범죄유형 20점, 상대 청소년의 나이 20점, 범행 전력 10점, 죄질ㆍ동기 등에 10점을 각각 부여했다.

총점이 60점 이상인 범죄자는 일차적으로 공개대상에 들어간다. 징역형과 집행유예를 받은 범죄자는 거의 공개대상에 포함됐고, 벌금형을 받은 경우에는 벌금액의 다과에 따라 점수를 달리했다.

상대 청소년의 나이가 적을수록 점수를 높였다. 무엇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강간죄와 성범죄 전력자의 청소년 대상 성범죄, 영업적 청소년 매매춘 업주는 원칙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심사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컸던 점은 가해자가 19세 이하 미성년인 경우의 처리 문제.

청소년보호위는 고민 끝에 신상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엄격한 법적용보다는 미성년 범죄자의 장래를 고려하는데 무게를 실었기 때문이다.

공개가 확정된 170명은 실낱같이 희미하긴 하지만 아직 구제될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

범죄자가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통해 비공개 처분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 청소년보호위는 4월27일까지 신원공개 확정 사실을 대부분의 피공개자 본인에게 통보했다. 주소가 불명인 피공개자를 위해서는 공시송달 등 방법으로 홍보하고 있다. 청소년보호위는 최종 공개일 직전까지 최대한 피공개자에게 구제 기회를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소년보호위측은 이번에 공개가 확정된 성범죄자 중 사회지도층을 비롯한 유력인사가 한 명도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청탁과 로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청소년보호위측은 그러나 "너무 나간 추측"이라며 일축했다. 유력인사는 시범케이스로 공개한다는 것이 당초 심사위의 내부 원칙이었다고 청소년보호위측은 전했다. 유력인사가 아니더라도 청탁의 가능성은 남는다.

'한 다리 걸러 모르는 사람 없다'는 게 한국사회의 통념. 여기에 대해서도 청소년보호위는 심사위원의 복수성과 심사과정의 투명성을 들어 부인했다.


"인권침해" "더 자세하게" 양론

신상공개는 이중적 논란을 낳고 있다. 우선 공개 자체가 인권침해란 주장이 있는 반면, 공개수준이 너무 낮다는 목소리도 있다. 피공개자의 주소가 적시되지 않고 시ㆍ군ㆍ구까지만 공개돼 정확한 신원이 알려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일부에서는 파렴치한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를 사회에서 추방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주소는 물론 사진까지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소년보호위는 이에 대해 신상공개 목적이 범죄자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기보다는 경각심을 일깨워 범죄를 막는데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 네티즌의 극성으로 볼 때 신상공개는 피공개자의 정확한 주소와 사진공개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네티즌들이 피공개자의 신상을 조사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170명 성범죄자는 이제 인터넷의 위력을 절감하며 '한국의 잠 못 이루는 밤'을 겪게 됐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5/02 18:56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