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향계] 대안 없는 실타래 정국

5월의 산야는 하루가 다르게 푸르름을 더해 가며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여의도 정가는 여전히 희망을 노래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 간의 관계도 원만치 못하고 각 당의 내부사정도 복잡하다.

우선 민주당은 4ㆍ26 재ㆍ보선 패배의 충격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여권 안팎의 책임 공방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당 지도부 인책론과 당정 쇄신론이 제기되고 있다. 구 여권 이미지가 강한 김중권 대표를 간판으로 내세운 것이 당의 지지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4ㆍ26 재ㆍ보선 직전에 성사됐던 '3당 정책연합'에 5ㆍ6공 인사들이 주요 얼굴로 등장함으로써 민주당의 정체성을 흐리게 했고 이것이 재ㆍ보선 패배의 한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권 "민심 이 정도인줄 몰랐다"

여권 인사들은 "민심이 그 정도일지 몰랐다"며 크게 낭패스런 표정들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이번 선거 참패에 대해 크게 상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여권 내부에서는 이번 재ㆍ보선 민심에 대해 다른 해석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텃밭인 전북 군산과 임실의 패배는 새만금 사업 결정 지연에 따른 지역정서 이반, 국민의 정부 들어 호남에 대한 역차별 의식 심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이를 정부 여당의 책임으로 몰아버리기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예산과 인사를 놓고 한 쪽에서는 호남편중이라는 비난이 거세고 다른 한 쪽에서는 역차별한다고 불만이 높다"면서 "이런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민심타령만 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 은평 구청장선거 패배는 수도권 지역 민심의 지표임은 분명하지만 은평 2개 선거구 국회의원이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고 민주당의 조직이 사실상 붕괴상태였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런 배경을 감안하지 않고 특정인이나 여권 지도부의 책임을 거론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김중권 대표체제가 이번 선거결과로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김 대표는 "새만금 사업문제, 건강보험 재정위기, 대우자동차 노조원 폭력진압사태 등 정부 정책이 국민에 다가서지 못했다"며 정부 측의 책임을 은연중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 체제로는 현재 여권이 당면하고 있는 민심기류를 돌파하기는 어렵다는 인식이 이번 선거를 계기로 확산될 조짐이다.

물론 김 대표 체제에 당장 어떤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렇다 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권 대권 주자관리 문제 등 복잡한 문제들이 있어 당분간은 김 대표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 대통령도 "김 대표를 중심으로 의연하게 대처하면 민심을 되돌릴 수 있다"며 김 대표 체제 유지에 무게를 실었다.

한나라당은 4ㆍ26 재ㆍ보선 승리로 정국 주도권 장악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그러나 개혁법안 처리에 대한 여야 합의가 또 다시 의원총회에서 뒤집힘으로써 이회창 총재의 당 장악력이 상처를 입었다.

방탄 국회라는 비난을 사고 있는 5월 임시국회의 진행 여하에 따라서는 한나라당이 4ㆍ26 재ㆍ보선으로 잡았던 정국주도권의 추가 다시 흔들릴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4ㆍ26 재ㆍ보선 패배와 관련해 민주당 내부에서는 대권 행보자제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이재정 의원 등 일부 인사들은 "대권 주자들이 당분간 대권 경쟁 중단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재ㆍ보선에서 나타난 민심 기류를 감안해 당 최고위원들이 대권경쟁에만 몰두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민심수습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당의 대권주자들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란 말이냐"며 불만스런 표정이다.

특히 노무현 상임고문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강연이 거의 유일한데 강연을 포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른 최고위원들도 "주자들이 하는 일이 강연과 모임을 통해 현장 민심을 듣고 정부여당의 개혁 정책을 설명하는 것인데 활동의 가이드 라인을 정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일축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경선론 파장

이런 가운데 일부 주자들이 제기한 대선후보 예비경선론 파장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내에서 예비경선론을 들고 나온 사람은 박상천 최고위원과 김근태 최고위원.

당 정치개혁특위위원장이기도 한 박 최고위원은 최근 "특위 차원에서 예비경선제 도입을 논의해 볼 생각"이라며 "정당법에 예비경선을 할 수 있다고만 규정해도 여야 모두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국민들이 대선 후보 선출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예비경선제를 도입해야 정치 불신이 사라진다"며 "당내 논의를 거쳐 이 방안을 선거법ㆍ정당법 등에 규정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선 경쟁 과열의 우려가 있다"며 예비경선제 도입에 난색을 표시하는 견해도 적지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입력시간 2001/05/0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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