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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가족풍속도- 나홀로족] "가족의 빈자리가 너무 커요"

[新가족풍속도- 나홀로족] "가족의 빈자리가 너무 커요"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가장의 생활은 어떨까. 가장을 홀로 남겨둔채 이국만리에서 살아야 하는 아내와 자녀들의 하루하루는 또 어떨까.

'나홀로족'과 그 가족의 삶을 알아보기 위해 본지는 자녀 교육을 위해 아이들과 아내를 외국으로 보낸 정현규(50)씨와 그의 아내의 기고를 받았다. 금융회사 상무 이사로 재직중인 정씨는 아내(45)와 고2인 아들(17), 중2인 딸(15)을 캐나다에 보내고 서울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이국 멀리 보내며'
(서울의 남편 정현규씨)

우리 가족이 중대 결단을 내린 것은 지난해 여름 방학 때였다. 어느 날 아들 녀석이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너무 무관심해요. 무단 결석을 해도 물어보지도 않고,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해도 떠들지만 않으면 상관하지 않을 정도에요"라고 투덜거렸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는데 아내가 "과외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걱정했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딸이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과외비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방학이 되니까 종합반에서 다음 학기 준비하랴, 부진한 과목 보충하랴, 1인당 학원비만 100만원 가까이 든다고 하소연 했다. 월급으로 생활하는 입장에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같은 와중에 친구가 "아이를 캐나다에 보냈는데 연간 2,000만원이면 충분하다. 웬만하면 유학을 시켜 보라"고 권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의 교육현실을 언론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으면서 고민하던 나에게 친구의 한마디는 나를 잠을 못이루는 나날로 몰아 넣었다.

결혼이후 지방 출장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떨어져 산 적이 없는 우리 가족이 아닌가. 아내와 아이들이 옆에 없다면, 아이들이 아빠와 떨어져 올바르게 생활할 수 있을까.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밤잠을 설치며 뒤척이는 나에게 아내가 고민있느냐고 물었다. 회사일이라며 신경쓸 것없다고 얼버무렸다.


적응 잘하는 아이들 소식에 위안

아들만 보내자. 먼 이국 땅에 딸을 보내는 것은 불안했다. 유학원을 샅샅이 찾아 다녔다. 유학생 중 상당수가 적응을 못해 마약 등 옆길로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 흔들렸다. 또 며칠이 흘렀다. 속도 모르는 아내는 회사일이 잘 안풀리느냐고 걱정했다.

'기왕 고생할 바에야 확실하게 아내와 딸까지 함께 보내자. 나만 불편을 견디면 된다. 아내도 마음 아프겠지만 아이들만 보내는 것보다는 낳다고 생각하겠지.' 결심했다. 가족들을 모았다.

모두 캐나다로 가라는 말에 아내가 화들짝 놀랐다. '당신은 어떻게 하느냐'며 말도 안된다고 극력 반대했다.

아이들은 좋아했다. 그런 자식들을 보며 순간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아빠 걱정은 하지도 않는 놈들.' 하지만 마음을 고쳐 먹었다. 어차피 이놈들을 위해서가 아닌가. 아내 설득에 들어갔다. '돈은 적게 들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 아니냐.

그렇다고 아이들만 보낼 수도 없으니 우리가 감수하자.' 아내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이 놈의 교육이 뭔지. 우리는 왜 이모양인지. 새삼 화가 치밀었다. 마누라 없이는 양말 한짝도 못찾는 내가 아닌가.

자식들을 위해서라는 설득에 아내도 별 수없이 떨어져 살기로 했다. 이제 본격 준비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닥친 문제는 경비 마련이었다. 유일한 수단은 아파트 두 채였다. 우선 유학 수속 비용과 학비를 위해 살고 있던 32평 아파트를 전세 놨다. 그 돈으로 아내에게 7만달러를 주고 나머지 돈으로 개포동 전세금을 빼주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가족을 떠내 보낸 후 한 달간은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우선 13평짜리 집으로 들어 가다 보니 가구를 놓을 공간이 부족했다. 쓸만한 물건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일부는 버렸다. 가족들의 손때가 묻은 가재 도구를 버리자니 마음이 아팠다.

1년에 한두번 보기도 어려운 아내와 아이들의 체취가 사라진다는 생각에서다.


"텅빈 집에 들어가기 싫어"

가족이 떠난 빈자리는 생각 보다 컸다. 아내가 맡아서 하던 살림살이를 혼자 처리해야 하는 일은 힘들었다. 꼬박꼬박 아침 밥을 먹던 습관부터 바꿨다.

아침은 냉장고에 보관한 떡을 전자레인지로 데운 뒤 차 한잔과 함께 먹는 것으로 대신했다. 속옷 같은 빨래도 파출부를 부르지 않고 저녁 퇴근 후에 손수 세탁기로 처리한다.

예전 같으면 아내가 알아서 해줬을 다림질은 특히 서툴러 짜증이 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고생쯤은 감수한다'는 처음 결심을 되새기며 참는다.

가장 힘든 것은 퇴근 후 텅빈 집에 들어가는 일이다. 혼자 처량하게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싫어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친구와 저녁 약속을 한다. 장소는 주로 회사 근처 삽겹살집. 소주에 삼겹살, 낙지 볶음을 시켜 놓고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안주 삼아 이야기 하다 보면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조금은 가라앉는다.

하지만 술은 많이 먹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옆에서 도와주는 집사람이 없어 잘못하다간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우면 쌓였던 고독감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처음에는 캐나다의 가족들에게 거의 매일 전화를 걸었다. 아이들과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마음이 안정돼 잠에 빠진다. 요즘은 전화외에 E메일을 주고 받기도 한다.

가족의 캐나다 생활을 들으면 힘이 생긴다. 지난달 큰 아이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해 영어와 수학 과목에서 엑설런트(Excellent) 평가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고생하는 보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 뿌듯했다.

그 때부터 '더 열심히 일해 가족들을 돌봐야지'하는 다짐을 하고 헬스 클럽에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큰 아이가 현지 대학에 들어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3~4년 정도는 더 고생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요즘에는 신문이나 TV에서 가족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 가슴이 찡해져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 마음을 독하게 먹으려고 하지만, 이런 것만은 조절이 안된다. 아이들이 현지 생활에 잘 적응해 지금 생이별의 아픔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입력시간 2001/05/0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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