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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도망자' 박노항] 등잔 밑에서 '복지부동'

['마지막 도망자' 박노항] 등잔 밑에서 '복지부동'

박노항 원사가 수갑을 찬 곳은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현대아파트 33동 1113호. 국방부 청사에서 승용차로 불과 10분 거리였다. 등잔 밑이 어두웠을까.

1998년 5월12일에서 2001년 4월25일까지 2년11개월여 동안 수사당국을 조롱했던 그는 바로 호랑이 굴 앞에서 복지부동하고 있었다. 그가 웅크리고 있었던 아파트는 군장성 관사가 2개나 있어 군인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던 곳.

지난 3년간 박 원사를 잡기 위해 전국에 뿌려진 수배전단만 50만장. 하지만 그는 이웃 뿐 아니라 아파트 경비원조차 사람이 살지 않는 것으로 생각할만큼 철저한 은둔으로 일관했다.

그가 살던 아파트를 누가 얻어주었는지는 박 원사와 그의 누나(57), 범인은닉 등 혐의로 4월28일 긴급체포된 탤런트 출신 김모(54)여인의 진술이 엇갈린다. 박 원사는 두번째 은신처인 11층에서 검거된 직후 이 아파트를 얻은 2000년 2월 이전에는 노숙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누나가 두 아파트 모두 "시어머니 명의로 전세 계약했다"고 군 검찰에서 진술하자 이를 시인했다. 그러나 사흘만에 첫번째 아파트를 얻어준 사람은 탤런트 출신 김 여인이라고 진술을 바꿨다.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은 대질신문으로 집중추궁할 경우 예상외의 성과가 나울 수도 있다.


범인추적경험 역으로 이용

박 원사는 1970년 하사로 임관해 헌병수사관으로 잔뼈가 굵었다. 27년간 육본 범죄수사단 등 핵심을 거친 그는 도피생활에서 동물적인 은신 본능을 발휘했다.

범인추적 방법과 경험을 역으로 이용하면서 수사당국의 압박을 따돌렸다. 대도시의 익명성과 이웃간 무관심도 그의 도피를 도운 요인 중 하나였다. 도피생활은 오히려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각종 건강관련 신문기사를 꼼꼼히 스크랩하고, 영어회화를 공부한 것이 심경의 일단을 말해준다.

그는 안전을 위해 가족도 극히 일부와만 연락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형과 형수, 동생은 수배 뒤 연락이 전혀 없었으며 은신처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합동수사팀은 현재 도피 지원과 관련, 군 내부 인사와 누나를 비롯한 주변 여인 등 양갈래로 조사하고 있다. 군 내부의 비호 가능성은 박 원사가 '베푸는 스타일'로 인심을 얻었던 사실과 병역비리의 잠재적 폭발성에서 나온다.

주변 여인들의 일부는 병역비리 청탁과 직접적 관계가 있는 인물로 전해졌다. 충남 논산 출신인 그는 사건 훨씬 전인 1982년 이혼했으며, 외동딸은 다른 가정에 입양시켰다.

긴급체포된 김 여인은 내연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박 원사가 체포된 아파트에 여자구두 2켤레와 여성용 화장품이 있었던 점으로 비춰 평범한 관계 이상의 여성이 있었던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한달에 1~2차례 생필품을 조달한 여성도 누나 한 사람이었는지 아직 분명치 않다.

국방부 검찰단의 특별검거반이 박 원사의 국내 은신을 확신한 것은 지난해 12월.

감시대상이었던 주변의 여인과 박 원사의 통화 사실이 포착되면서다. 검거반은 올 2월부터 감청 등의 방법을 동원해 박 원사 누나를 밀착감시해 왔다.


정치권선 시나리오설 제기

군검찰의 발표에 대해 한나라당은 검거 택일설과 정치적 시나리오설을 제기하고 있다.

여당의 패배 가능성이 컸던 4ㆍ26 보궐선거를 하루 앞두고 빅뉴스를 내놓은 시점상의 문제에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야당 인사의 연루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항간의 추측도 시나리오설을 그럴듯하게 만들고 있다.

한나라당은 4월26일자 보도자료에서 체포정황까지 문제삼았다. 박 원사가 현관문을 따는 등 소란한 과정에서도 아무 소리를 못듣고 누워있다가 검거반이 들어가 이름을 부르자 "예"라며 벌떡 일어났다는 것은 어설픈 설명이란 주장이다.

민ㆍ군 검찰로 구성된 합동수사팀은 4월28일 박 원사에 대한 조사장소를 당초 국방부 검찰단 조사실에서 서울지검 서부지청으로 옮겼다. 조사의 공정성을 확보해 외부의 의혹을 최소화하겠다는 이야기다. 수감 장소를 민간교도소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입력시간 2001/05/02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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