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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등 주변국과의 관계의 그늘

한·중 등 주변국과의 관계의 그늘

대외 관계는 고이즈미 정권의 또 하나의 짐이다. 그는 국내 정치ㆍ경제에서 대단히 개혁적인 이미지를 과시했지만 거꾸로 역사ㆍ안보 문제에서는 강경 우파로 굴절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총재선거 과정에서 그는 야스쿠니(靖國)신사 공식 참배론에 불을 댕겼다.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인정하기 위한 개헌이나 헌법의 유권해석 변경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런 강경 발언은 우선 표를 겨냥한 것이지만 어정쩡한 모습을 참지 못하는 개인적 성향이나 파벌의 전통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일과성 발언에 그치지는 않을 전망이다. 현재 모리(森)파로 이어진 후쿠다파는 대대로 역사ㆍ안보 분야에서는 강경 색채를 띠어 왔다.

그가 자민당내 강경 보수파의 태두인 나카소네 전총리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사실도 우려를 더하게 한다.

에토ㆍ가메이파 최고 고문인 나카소네 전총리는 가메이 전정조회장의 후보 사퇴와 파벌 전체의 고이즈미 지지를 이끌어 낸 장본인이다. 반대 급부는 자리가 아니었다. 에토ㆍ가메이파가 당직ㆍ각료 인선에서 하시모토파 못지 않은 냉대를 받았다.

고이즈미 총리는 나카소네 전총리와의 회담에서 총리직선제를 위한 개헌, '국가전략회의'의 설치를 약속했다. 나카소네 전총리는 "제2의 전후 정치 총결산을 해달라"고도 주문했다.

나카소네 전총리의 '전후 정치 총결산'은 수많은 보수ㆍ우경화 주장의 하나이다.

2차 대전후 일본의 모습을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규정하는 자세는 과거의 식민지 지배ㆍ침략을 반성하는 역사 인식이 도쿄(東京)전범재판을 통해 날조됐다는 자유주의사관연구회나 그 전위조직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태도와 같은 궤도에 있다.

이는 그가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1985년 각료를 이끌고 야스쿠니 신사에 공식참배했던 것에서도 드러난다. 대미 자주권을 외치며 외국인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지사,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군대 보유를 주장한 '보통국가론'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자유당 당수의 노선ㆍ주장과도 통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정치적 빚을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개정 등 나카소네 전총리의 숙원을 풀어 주는 것으로 갚아야 한다.

일본의 보수ㆍ우경화 우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패전 직후 한때 일었던 진보ㆍ개혁 물결이 미소 냉전의 와중에서 잦아든 후 보수세력의 결집은 꾸준했고, 그 정치적 표현이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었다.

다만 1972년 이후 일본 정치를 지배해온 하시모토파의 중도 보수 노선이 우경화 흐름을 일정하게 제약했다. 하시모토파의 쇠퇴와 함께 사전 조정을 특징으로 한 파벌 정치가 쇠퇴하는 조짐은 자민당의 급속한 우경화의 요인이기도 하다.

집권 정당의 우경화는 장기 경제 침체로 무력감에 젖은 국민의 막연한 변화 욕구를 오른쪽으로 끌어 당길 것이란 점에서 커다란 우려를 낳고 있다.

안 그래도 역사교과서 문제로 틈이 벌이지고 있는 한국은 물론 통상문제와 대만문제까지 겹친 중국과의 관계가 평탄하기 어렵다. 물론 고이즈미 총리가 총재경선 당시의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렵다.

국민 전체를 상대해야 하는 총리의 입장에서 우파만 고려할 수도 없고, 외교 마찰은 결정적인 약점이 된다. 스스로 외교문외한임을 감안, 과거 대한ㆍ중 관계 발전에 기여한 다나카 전총리의 딸을 외무장관에 기용한 것은 양국 반발을 누그러뜨리겠다는 자세로 해석된다.

4월 27일의 취임 회견에서 집단적 자위권 문제에 대해서도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유사시 목숨을 버릴 사람들을 경의를 갖고 대할 수 있도록 법을 정비하고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정치가의 임무"라는 말까지는 똑같았다.

그러나 "헌법 9조의 개정 문제는 현재의 정치과제로 삼기는 어렵다"고 장기 과제로 돌리는 한편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하고는 있으나 행사할 수는 없다는 헌법해석을 바꾸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다른 조항을 건드리지 않는 총리 직선제 개헌이라면 국민의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관심을 총리 직선제 개헌으로 돌렸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역사 교과서 문제에 대해 "양국 관계가 손상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보자"고 밝힌 것도 앞서 한ㆍ중 양국의 반발ㆍ재수정 요구를 거의 헛소리로 치부했던 태도와는 달라졌다. 따라서 그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가 기우에 그칠 가능성도 있으며 정확한 판단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입력시간 2001/05/0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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