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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해프닝과 사건

[어제와 오늘] 해프닝과 사건

북한이 우리쪽에 던져주는 소식, 메시지, 신호에는 언제나 분명한 게 드물다. 늘 고개를 갸우뚱하고, 날카롭게 바라보아야 할 미스터리, 의혹, 의문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일본 신문들은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일본 밀입국 사건을 한국 언론들이 '해프닝'이라고 불렀다고 보도했다.

'일이 터진 지' 1주일이 지나도록 그가 베이징에서 비행기로 평양에 갔는지, 기차를 타고 갔는지, 아니면 베이징에 계속 머물고 있는지 안개속에 가려있다.

베이징주재 북한 대사관의 경비병은 그가 온다는 4일 몰려든 기자들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이곳에는 아무 일도 없소. 당신들이 몰려오니까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잖소. 저리들 가시오"라고.

우리 외교부는 물론 일본과 중국측도 문제의 인물이 김 위원장의 장남인지 여부에 대한 공식 확인이 없다. 그러나 남미 도미니카의 위조여권으로 일본으로 들어가려던 그는 김 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과 생년월일(71년 5월 10일생)이 같고 본인이 맞다고 했다.

그가 터뜨린 이번 일은 한낱 '해프닝'이 아니다. '사건'이다. 조선왕조사에서 보면 1761년 명조 때 발생한 사도세자의 평양행 '사건'과 비슷하다. 비록 김정남이 후계자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만약 그가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김 위원장의 사랑과 지도를 받고 있다면 이번 '일'은 '사건'일 것이다.

게다가 일이 터진 시점이 북ㆍ미, 북ㆍ일간 긴장관계을 풀기 위해 유럽연합(EU) 의장국인 스웨덴의 요란 페르손 총리가 평양을 방문한 뒤 서울에서 그 성과를 발표하는 때와 겹쳐 '해프닝'성 주장을 무색케 한다.

뉴욕타임스의 도쿄 특파원은 "만약 이번 사건을 일으킨 김정남이 김 위원장의 장남이라면 김 위원장이 그동안 고립에서 벗어나고 경제원조를 얻기 위해 한 노력을 무시하는 일이 된다. 북한은 극렬하고 예측할 수 없는 나라임을 다시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북한문제 전문가인 요시다 야슈히코 교수(오사카 법경대학)는 "일조(日朝) 수교 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북한당국이나 아버지가 그의 여행을 허가했다면 바보 같은 짓이다. 아버지나 당국이 그럴 리가 있겠는가"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럼 왜 김정남은 태양절(4월15일) 88년을 맞는 주체의 나라, '할아버지 수령 김일성'나라의 축제를 떠나 일본에 밀입국하려 했을까? 이조 영조때 세자인 선(후에 사도세자 추정)을 놀러오라고 한 정휘양 평양관찰사 같은 음모 그룹이 일본에도 있었을까.

아니면 1993년에 본 도쿄의 디즈니랜드를 아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천진스런 행동이었을까?

일본과 서울의 일부 북한 전문가는 '김정남의 갈등설'을 내비치고 있다. 1973년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다의 평양 특파원으로 북한에 갔다가 1년도 못돼 추방된 하기하라 료는 김정남이 권력핵심들과의 갈등으로 후계자 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1993년 제네바, 모스크바를 거쳐 평양에 온 김정남은 비록 2년 가까이 선전선동부, 정치보위부에서 일하지만 핵심이기보다는 '자유주의자', '진보주의자'로 취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인민과 군을 틀어잡을 주체 사상이 부족하다고 보는 게 군부 및 권력 핵심 그룹의 시각이라는 분석이다.

덧붙여 오늘의 북한을 공산주의가 변형된 '김일성 왕조'의 지속으로 보는 관점에서 김정남은 김 위원장의 법적 부인(김영숙)의 아들이 아니다. 이복동생인 김정철이 적자로, 앞으로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적자설'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아버지 수령의 동지였던 어머니(김정숙:1949년 병사)의 적자였다. 고려대 서진영 교수는 "왕조사적인 면에서 김정철이 김정남 대신 이미 후계자로 내정된지도 모른다. 김정철은 바로 법적 부인의 장남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령 김일성은 일덕정치니, 광폭정치니 이민위천(以民爲天,인민을 하늘같이 본다)이니 하면서 신유교주의 왕조사회를 이끌겠다는 원대한 계획하에 북한을 다스렸다.

또 그의 아들 김정일을 지도자로 삼기 위해 제왕학을 가르쳤고, 후계자 수업을 계획적으로 실시했다. 김정일을 1964년부터 선전부에 두어 1967년 갑산파를 제거하게 했고 1972년에는 당증 교환사업을 맡겨 당을 알도록 했다. 1974년에 정치위원, 1980년에는 정치상무위원으로 만들었다.

이런 제왕 코스를 거친 김 위원장이 김정남을 밀입국자로 만든 것은 결국 그가 후계자가 아님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 그보다는 통일을 위해서는 한반도에 김씨 왕조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이번 사건의 교훈일 것이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05/0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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