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김정남 미스터리'

'김정남 미스터리'

북한 김정일 위원장 장남 추정
숱한 의문 남기고 다시 베일 속으로

'짧은 데뷔에 긴 미스터리'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일본 밀행 드라마는 나리타 공항에서 체포되는 바람에 3박4일의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숱한 의문을 남겼다.

그는 중국 베이징으로 추방되던 5월4일 나리타 공항에서 세상에 잠깐 실체를 드러냈을 뿐 또다시 북한이란 장막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들만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김정남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는 그가 김정남이냐 아니냐로부터 시작된다. 나리타 공항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얼굴을 내보인 그는 여러 가지 정황으로 김정남이 분명하다.

TV와 신문에 나온 그는 짧게 깎은 머리에 검은 바지와 티셔츠, 갈색 조끼 차림. 얼굴이 둥글고 배도 약간 나왔으나 키가 커 전체적으로는 건장한 부잣집 맏아들풍이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아버지 김정일을 꼭 닮았다. 목에 걸린 금목걸이, 당당한 걸음걸이,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 추방되면서도 아무렇지 않는 듯 비행기 트랩을 향하는 모습 등은 북한의 '황태자'가 아니면 취할 수 없는 자세다.

한국과 일본, 중국 당국이 그의 신분을 절대로 공식 확인하지 않겠지만, 그럴수록 그가 김정남이라는 심증을 굳혀주는 일이다.


왜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왔을까?

또 준이치로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비롯한 일본 당국의 부산한 움직임과 철통같은 경비, 중국 당국의 연막작전 등 그가 김정남이 아니라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나름대로 북한 정보에 밝은 러시아 언론조차 김정남의 국제무대 공식 데뷔를 톱기사로 다뤘다.

그는 월북작가 이기영의 맏며느리였다가 이혼한 영화배우 성혜림과 김정일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대부분의 북한 최고지도자 2~3세들처럼 베일에 가려 있었다.

제네바와 모스크바에 유학하고, 신세대(?)답게 컴퓨터 등 정보통신(IT)쪽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정보외에 어린 시절 사진 1~2장이 고작이다. 그가 거주했거나 나다녔던 제네바 모스크바 베이징 등지엔 확인되지 않는 소문만 무성했을 뿐이다.

그런 그가 남미의 작은 나라 도미니카 공화국의 위조 여권을 갖고 도쿄에 불쑥 모습을 나타낼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스위스 유학을 통해 서방 문물을 꿰고 있고 90년대 중후반 모스크바에선 자본주의의 꽃이라던 카지노에서 수만달러를 잃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는 일화(?)를 남기면서도 흔적조차 없었던 그가 도쿄 밀행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어머니 성혜림의 서방 탈출 해프닝(1996년 초)이후 김정남의 행적에 대해서는 해외여행 금지설, 모스크바 억류설 등등 소문들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가 여전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은 물론 멀리 남미까지 해외여행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건 그와 성혜림의 북한내 위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실상 북한의 황태자격인 그가 위조여권을 사용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북한 사람들은 대부분 여전히 가명을 쓰고, 또 그것을 당연시한다. 과거 소련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고위인사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사용해온 다양한 수법 가운데 하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연방보안국(FSB) 간부로 재직중일 때 위조 여권으로 스페인 등 여러 나라를 방문한 사건은 유명하다. 따라서 1년에 중국과 러시아를 서너차례 드나드는 김정남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위조여권을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왜 북한여권이 아닌 제 3국 여권을 썼을까? 일본은 북한과 수교국이 아니어서 입국 절차가 번거로웠을 게 틀림없다. 전문가들은 또 그가 여행중 일본 당국의 감시를 따돌리기 위해 제3국 위조여권을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분이 노출되면 공안당국의 감시가 따라붙고 언론의 주목도 피할 수 없다. 자유롭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가명과 위조여권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그래서 4세짜리 아이를 데려오는 등 치밀한 작전을 짠 게 아닐까.


CIA 정보 제공설, 망명시도설 등 추측 난무

하지만 일본의 공안이 허술하지 않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신분을 감추려 하다가 도리어 그 신분이 들통나 망신을 당하고 국가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일은 예상하지 못했을까.

이미 지난해 10월이후 두차례나 같은 여권으로 일본에 잠입했다니까 이번 도쿄행에서 신분이 들통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일본 당국이 입국심사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면 사전에 누군가가 귀띔하지 않았다면 그는 유유히 도쿄시내를 활보하고 다녔을 지도 모른다.

가장 큰 의문은 역시 김정남이 1995년에 일본에 들어와 특급호텔에 묵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는 일본 당국이 왜 갑자기 그를 체포했을까라는 점이다.

체포한 뒤 신속하게 중국으로 추방하면서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한 북한 소식통은 김정남 체포소식에 "선수들끼리 다 알면서 왜 그를 붙잡아 일을 키우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일본의 지지통신은 "일본에 정보를 제공해준 것은 미국 CIA(중앙정보국)"라고 보도했다. 이를 종합해 보면 CIA가 의도적으로 일본에게 정보를 제공했고, 일본으로선 그를 체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문제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이 서둘러 그를 중국으로 빼돌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는 이번 도쿄 잠행에서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일부의 추측대로 일가족 망명이었을까? 일행의 트렁크엔 관광비용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100달러짜리 지폐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정도는 모스크바 카지노에서 잃었던 정도의 돈밖에 안된다. 김정남의 뒤를 따라 나온 4세짜리 아이의 얼굴이 그의 어릴 적 얼굴 사진과 꼭 닮았다. 그렇다면 화창한 5월의 날씨를 즐기며 아들과 함께 디즈니랜드와 최근 오사카에 문을 연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구경한다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밤에는 그가 카지노에서 패를 돌리는 동안 부인인 신정희는 동행한 안내인 겸 경호원과 함께 도쿄의 백화점을 돌며 명품쇼핑을 꿈꾸고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물론 일행의 정확한 신분도 드러나지 않은 상태로 단지 추측일 뿐이다.

아버지 김정일은 그의 밀행을 사전에 알았을까? 사건이 터지자 중국이 신속하게 사후수습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북한쪽에서 중국을 향해 무슨 주문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북한 권력층에서도 최고지도자의 가족에 관한, 그것도 황태자의 일이라면 아랫사람이 함부로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평양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의 허락을 받지는 않았을지 모르나 떠난 후에 누군가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사후보고는 했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와 서울을 한바탕 떠들썩하게 만들어놓고 떠난 김정남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중국 텐진에서 곧바로 기차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갔다고도 하고,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베이징에 머물 것이라고도 한다.

앞으로 그의 행적에 관해 온갖 추측이 난무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주요 기사, 특히 고위인사의 행적에 관한 소문이 항상 그래왔듯이 확인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찬가지로 김정남 미스터리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 도쿄 밀행과 같이 생각지도 않는 곳에서 엉뚱한 사건이 하나 툭 터지면 이번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까지 '김일성 왕조의 북한'을 그렇게 알아왔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2001/05/08 19:04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05월 제2829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05월 제2829호
    • 2020년 05월 제2828호
    • 2020년 05월 제2827호
    • 2020년 05월 제2826호
    • 2020년 04월 제2825호
    • 2020년 04월 제2824호
    • 2020년 04월 제2823호
    • 2020년 04월 제2822호
    • 2020년 03월 제2821호
    • 2020년 03월 제2820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이탈리아 피렌체 이탈리아 피렌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