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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낙하산, 앉으면 그만인가

쏟아지는 낙하산, 앉으면 그만인가

원칙없는 공기업 인사, 개혁역행·부실초래

일본에서는 정부 투ㆍ출자기관(공기업)을 관익(官益)법인 이라고 부른다. '이코노미스트지'는 1999년 말 현재 일본의 2만6,354개 관익법인 가운데 2,428개에 감독관청의 과장급 이상 전직 공무원 6,112명이 이사 등으로 낙하산 임용돼있다고 보도했다(2001.3.6일자).

이 잡지는 대표적인 예로 우정성 관할의 우정홍제회(郵政弘濟會)를 들었다. 직원 10명 가운데 9명이 우정성과 전국체신노조 OB들로 구성돼 있으며 현직 때는 서로 대립했던 양 진영이 이곳에서는 사이 좋게 담합하는 사례도 많다고 잡지는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달 21일 발간한 CEO정보 자료집 '잃어버린 10년, 일본의 교훈'에서 일본의 장기불황의 주요 원인의 하나로 관료 보수성과 조직이기주의를 지적했다.

연구소는 특히 "낙하산 인사 관행이 정부의 감독기능을 마비시키고 로비를 성행시키는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낙하산 인사는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용어다. 지난 해 6월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취임한 조홍규 사장은 노조 인사청문회에서 "바깥에 있을 때 공사에 대한 검찰 수사를 무마한 적이 있다"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외부에 알려져 곤욕을 치루었다.

조 사장은 또 "재임 중 더 이상의 구조조정은 없다"며 노조의 환심을 샀고, 그 후 공기업에 몰아친 구조조정 광풍에도 '의연히' 약속을 지켜내는 뚝심을 과시하기도 했다.


무원칙한 인사로 곳곳서 잡음

지난 해 한국부동산신탁(한부신)의 부도를 계기로 공기업 CEO의 전문성ㆍ자질 시비와함께 낙하산 인사의 폐해가 여론의 표적이 됐다. 당시 정부는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 등을 손질해 공기업 CEO의 연임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전문성과 개혁성 등을 임용 기준으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또 검증된 CEO 인재 풀(pool)을 만들어 이들을 대상으로 투명한 절차를 거쳐 CEO를 임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 뒤 다시 찾아 온 공기업 인사 시즌이다.

이수용 전 해군참모총장이 한국석유공사 사장에 임명되기 직전인 지난 달 하순의 일이다. 복수 후보에다, 사장추천위원회 후보 면접절차도 남은 상태였지만 이 전총장이 거의 확정적이라는 풍문이 자자했다.

석유공사 노조 관계자는 "원유개발을 바다에서 하니까, 그 사람(이 전총장)이 석유공사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겠네"라며 어이 없어 했다. 얼마 뒤 소문대로 이씨가 취임하자 공사의 한 간부는 "석유공사 업무의 대부분이 해외유전 탐사ㆍ개발이고, 이 업무가 주로 해양 업무인 만큼 경험이 많은 이 전 총장이 적임"이라고 말했다.

똑 같은 '팩트(fact)'가 '비아냥'에서 '정당성의 근거'로 별 무리 없이 탈바꿈한 것이다. 정부가 원칙으로 밝힌 CEO의 '전문성'은 이처럼 고무줄이다. 지난 4월에는 건설교통부 산하 한국감정원 원장에 경찰대학장 출신의 이수일씨가 내려왔고, 한국공항공단 이사장에는 서울경찰청장을 지낸 윤웅섭씨가 취임했다.

정실도 문제다. 낙하산은 아니지만 지난 달 수출보험공사 사장으로 승진한 임태진씨는 실세 여당의원으로 주무부처 장관인 장재식 산자부장관과 광주서중 동기동창 관계. 장 장관이 동기회 회장, 임 사장이 부회장을 맡고 있다.

임 사장은 취임 직후 사석에서 장 장관과의 관계를 묻자 "동기회 회장ㆍ부회장이라고는 하지만 부회장은 9명이나 되고, 워낙 서로 바빠 자리를 같이 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무원칙한 인사는 곳곳에서 잡음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4월 말 한국가스공사는 자회사인 한국가스기공 사장을 결정하지 못해 주총 연기를 거듭하다 임시 주총을 통해 현직 공무원인 민병군(당시 광주ㆍ전남 중기청장)씨를 선임, 미처 사표를 쓰지 못한 민 청장이 취임식 직전까지 중기청에서 업무를 보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뭐니 뭐니 해도 '낙하산의 꽃'은 정치인 낙하산이다. 한나라당은 최근 국민의 정부 낙하산 사례 53건 분석 자료를 공개하고 "현 정권의 공기업 낙하산 인사가 사장이나 감사에서 부사장, 상임이사까지 무차별 확대되고 있다" 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자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일오회'. 일오회는 민주당 소속으로 16대 총선에 자의(혹은 타의)로 출마하지 않은 15대 국회의원 모임. 관광공사 조 사장 외에 최근 임명된 석탄공사 유승규 사장과 한국가스공사 김명규 사장,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채영석 이사장, 한국예술진흥원 최희준 감사 등이 모두 일오회 회원들이라는 것이다.

이 밖에 한국토지공사 김용채(전 자민련 부총재) 사장, 한국마사회 윤영호(전 민주당 청송ㆍ영덕 지구당위원장) 회장 등도 '낙선ㆍ낙천에 대한 위로' 차원의 무원칙한 인사라고 주장했다.또 건강보험공단 박태영 이사장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재희 원장에 대한 정실 임명이 의료보험 파탄을 부채질했다고 덧붙였다.


"인사관행 바뀌어야 진정한 개혁 기대"

물론 낙하산 인사라고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정부 부처 한 관계자는 "공직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과 식견을 사장시키지 않고 다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낙하산을 통해 산하 공기업 등으로 내려가 조직을 효율화하는 등 공적을 쌓은 경우도 많다. 최근 산업자원부 차관을 지내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로 자리를 옮긴 오영교 사장의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

무역 주무부처에서 잔뼈가 굵은 통상ㆍ무역 베테랑인 데다 2인자로서 정부조직을 운영한 경험도 있고, 인맥 노하우 등 모든 면에서 낙하산이라고 흠잡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외부의 유능한 인사를 영입하는 것은 보편화된 경영전략이며, 그 외부가 꼭 민간 전문CEO 영역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며 "더욱이 내부 승진만을 고집하는 것은 조직 이기주의"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칙은 필요하다는 게 국민들의 보편 정서인 것은 분명하다. 감독부처 공직자 출신이 공기업 CEO가 되더라도 공(公)과 사(私)가 엄격히 구분되는 시스템이 우선적으로 구축돼야 하고, 이에 대한 사후 감독기능도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

이는 낙하산 인사의 폐해가 단순히 '자리'의 문제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예에서도, 또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도 확인된 교훈이다.

노동연구원 한 관계자는 "외부에서 왔다고 일괄적으로 '낙하산 인사'라고 비판하거나 백안시 할 필요는 없지만 전문성과 개혁성, 경영능력 평가 등은 엄격히 따지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출신 지역과 신분, 특정 정당이나 권력자에 대한 충성도 등에 좌우되는 공기업 인사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 한 공기업 개혁은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윤철(田允喆) 기획예산처 장관이 최근 민주당사에서 가진 4대부문 개혁 점검회의에서 공기업 낙하산 인사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정부 여당에 "이제 그만 좀 하자"고 하소연했다. 오죽했으면 이제 좀 그만하자고 했을까.

5월과 6월 중에 550여개 정부 산하기관 가운데 60여곳의 기관장 임기가 만료돼 신임 인사가 이뤄진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자민련 민국당의 연합으로 앞으로 '물좋은 자리를 눈독 들이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 낙하산 열풍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기업 자리를 선거의 전리품이나 공동여당의 지분 분배 수단쯤으로 여기거나, 고위 관료의 퇴임 후 품위유지 방책으로 치부하는 풍토 개선이 시급하다. 잘못된 풍토 개선없이는 공기업 개혁도 불가능하다. 후속 공기업 인사에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돼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들어 임명된 정부 투자ㆍ출자기관 사장

기 관 직 책 성 명 주요경력

한국공항공단 이사장 윤웅섭 서울지방경찰청장

한국가스기공 사장 민병군 광주전남중기청장

KOTRA 사장 오영교 산업자원부 차관

한국산업은행 총재 정건용 금감위 부위원장

한국감정원 원장 이수일 경찰대학장

한국증권전산 사장 허노중 자민련 제2정책연구실장

대한지적공사 사장 김재영 행정자치부 차관

증권예탁원 사장 노훈건 금감원 상임감사

기술신보 이사장 이근경 재경부 차관보

한국수출입은행 행장 이영회 재경부 기획관리실장

시설안전기술공단 이사장 최길대 철도청 차장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한준호 중소기업청장 한국석유공사 사장 이수용 해군참모총장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정장섭 산자부 무역투자실장

전기안전공사 사장 김영대 국방부 원가국장, 가스안전공 사장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김재영 노동부 고용정책실장

산업안전공단 이사장 문형남 노동부 기획관리실장



최윤필 경제부기자 walden@hk.co.kr

입력시간 2001/05/0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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