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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57)] 겐포(憲法)

[재미있는 일본(57)] 겐포(憲法)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 정권 출범 이후 일본의 '겐포'(憲法) 논의가 부쩍 활기를 띠고 있다.

고이즈미총리 자신이 취임 회견에서 총리 직선제 도입에 한정한 헌법 개정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선 데다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자민당 간사장이 5월3일 간행한 저서에서 독자적인 개헌안을 들고 나왔다.

지난해 1월 중력活퓻貶 각각 헌법조사회가 설치되면서 빗장이 풀린 헌법 논의가 이미 구체적인 개헌 내용을 논하는 단계로 접어 들었음을 보여 준다.

일본의 헌법 논의는 현행 헌법이 전쟁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군대를 갖지 않고 무력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다짐, '평화 헌법'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제9조의 개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중국 등의 경계심을 일깨우고 있다.

일본의 역사 인식 후퇴나 우경화 흐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는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반성할 줄 모르는 이웃나라에 대한 불쾌감 차원을 넘어 대개 미래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다.

그런 흐름이 궁극적으로 헌법 제9조의 개정으로 이어져 일본의 군사력 증강과 역할 증대, 나아가 주변국에 대한 위협으로 등장하리라는 것이 우려의 내용이다.

1946년 11월에 선포돼 47년 5월에 시행된 이래 일본의 헌법은 일자일구도 고쳐지지 않았다. 헌법을 손질하려는 의도 자체가 과거 회귀의 불순한 의도로 비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금기 의식은 전쟁의 기억이 세월과 함께 퇴화하면서 끊임없이 희석돼 왔다.

95년 요미우리(讀賣)신문이 자체 개헌안을 내놓은 이래 독자적 개헌 구상은 현행 헌법의 고수를 주장하는 공산렌濚灌怜甕 제외하고는 모든 정치인의 필수 소양처럼 됐다.

국민 여론도 제9조의 개정에는 여전히 거부감을 보이면서 신중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지만 환경권의 신설이나 총리 직선제 도입 등 다른 조항의 개정 필요성에는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그것이 개헌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을 누그러뜨리고 장기적으로 제9조 개정의 길을 열게 되리라는 우려와는 별도로 개헌론은 거스르기 힘든 물결로 번지고 있다. 2004년말 국회 헌법조사회의 활동 종료와 함께 2005년부터는 본격적인 개헌 공방전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로 일본에 새로운 헌법이 탄생할 경우 그것은 실질적 의미에서는 국민적 논의를 거친 일본 최초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최초의 근대적 헌법으로 1890년에 시행된 '대일본제국 헌법'은 말이 헌법이지 형식과 내용면에서 당시 구미 선진국의 헌법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었다. 전문이 들어갈 자리에는 천황의 역대 조상신에게 헌법 선포를 알리는 '고쿠분'(告文)과 헌법 선포에 즈음한 천황 연설, 즉 '초쿠고'(勅語)가 들어 갔다.

'나는 선조가 이 나라를 만들어 다스린 것을 이어 이 나라를 지배하기 위해 이 헌법을 만들었다' '나와 나의 자손은 이 헌법에 따라 일본을 통치해 갈 것이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본문도 '대일본 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1조), '천황은 신성하게 여기며 침범해서는 안된다'(3조), '천황은 제국의회의 협찬으로 입법권을 행사한다'(5조), '사법권은 천황의 이름으로 법률에 따라 재판부가 행사한다'(57조)는 식이었다.

당시 선진국에서 보편화한 주권 재민의 의식 등은 찾아볼 길이 없다. 일부 지식인들이 이 헌법을 읽다가 말없이 집어 던졌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20여년의 논쟁 끝에 제국헌법을 제정할 당시 일본 지배층의 관심이 새로운 근대 국가의 건설보다는 수백년만에 회복한 천황의 세속적 지배권을 어떻게 뒷 받침할 것이냐에 쏠려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런 헌법을 만든 정신적 편향이 그대로 한반도 식민지 지배와 대륙 침략으로 이어졌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45년 패전 직후 미군정에 의해 기초된 현행 헌법은 이런 '제국헌법'을 철저히 부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전문에 '또다시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을 결의한다'고 밝히고 이를 제9조로 뒷받침하는 등 세계 헌법사에 남을 만큼 평화주의의 이상을 담았다.

또한 주권 재민의 이념을 처음으로 밝힌 헌법이어서 일본의 민주주의는 패전후에 비로소 시작됐다는 해석의 근거이기도 하다.

다만 패전 직후의 특수 상황에서 국민적 논의와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고 그 때문에 국민들이 주체적으로 이 헌법에 무게를 실을 기회가 없었다. 주권자로서의 인식에 비로소 눈뜨고 있는 일본 국민의 존재는 일본의 개헌 논의에서 간과하기 어려운 변수이다.

황영식 됴쿄 특파원 yshwang@hk.co.kr

입력시간 2001/05/0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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