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가족풍속도-독신] 서복선 할머니 "내 인생은 나의 것"

올해 74세인 서복선 할머니는 서울 용산구 남영동 자택에서 혼자 산다. 충북 홍성 출신으로 열 아홉 살에 서산으로 시집간 서 할머니는 6ㆍ25가 나던 해인 스물 네 살에 경찰인 남편과 사별하고 이제까지 독신이다.

3년 상을 치른 다음 단돈 5,000원을 손에 쥐고 무작정 상경, 남대문 시장 좌판부터 시작해 갖은 고생을 하며 키운 외동딸을 시집 보내고 시작한 독거 생활 만도 벌써 30년이 넘는다.

하지만 서 할머니는 외모로 보나, 사는 방식으로 보나 일반적으로 독거 노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30,40대 싱글의 그것에 더 가깝다.

서 할머니는 무척 젊어 보인다. 주름도 별로 없고 피부결도 좋아 도무지 제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다. 집에서도 늘 화장을 하고 매니큐어도 바른다.

즐겨 입는 옷차림은 정장 투피스 아니면 빨강 등 원색의 니트에 70대 노인에게는 약간 타이트하고 짤막하다 싶은 스커트다. "30년째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한시간씩 단전호흡을 하는 것이 젊어 보이는 비결"이라고 한다.


나이는 70대, 몸은 50대, 생활은 30대처럼

단전호흡과 함께 시작되는 오전은 온통 운동으로 채워진다. 단전호흡이 끝나면 매일 40분간 4km 정도 걷기를 하고 인근 골프 연습장에서 골프를 친다.

가끔 여러 연령 대의 골프 친구들과 함께 필드에 나가기도 한다. 골프 실력은 잘 맞을 때는 82타, 안 맞을 때는 88타 정도로 노인으로는 최고 수준이다.

또 이따금 요가도 하고 인근 남산 공원에서 국선도를 한다. 1974년부터 국선도를 익힌 그는 국선도의 유일한 여성 법사다. 오후 역시 분주하게 지나간다.

용산 경찰서 방범연합회, 청소년 육성회, 용산 로터리 클럽, 경찰 미망인 모임, 남영동 노인정 등 서 할머니가 참가하는 모임은 십수 개에 이른다. 그 중에는 자신이 직접 만든 것도 있고 남영동 노인정처럼 사재를 털어 운영 중인 것도 있다.

이런 저런 모임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오후가 후딱 지나간다. 집에서 쉬는 날은 거의 없다.

서 할머니는 "나는 늙은 사람보다 젊은 사람을 더 많이 만나.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나도 젊어지는 기분이 들거든"이라고 한다. 모임에 나갈 때는 직접 운전을 하고 다닌다. 운전 경력은 만 30년. 3년에 한번 보는 면허 갱신 시험을 재작년에도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한 면허시험장 직원이 나이처럼 안 보이자 "본인을 데려오라"고 하다 주민등록증과 대조해 보고 대경실색했다는 얘기는 서 할머니의 은근한 자랑거리다.

밤에는 일기를 쓰거나 장부를 정리하는 등 이런 저런 일을 하다 늘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든다. 일기나 장부 모두 컴퓨터로 처리한다. 컴퓨터는 지난해 배웠다. "젊은 사람들한테 뒤떨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학원까지 등록, 손주 뻘인 젊은이들과 똑같이 컴퓨터와 씨름해 가며 열심히 했다. 지금은 타자치는 속도만 조금 느릴 뿐, 인터넷과 이메일까지 한다.

오전에는 운동, 오후에는 사람 만나기, 저녁에는 컴퓨터라는 하루 일과만 보면 서 할머니는 70대 독거 노인인지 30대 독신자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다.

서 할머니가 혼자 사는 집도 마찬가지. 국선도 도장 이층에 자리 잡은 방 두개 짜리 집은 컴퓨터와 허리 근육 등을 풀어주는 벨트 마사지기, 더블 베드 등으로 채워져 있다. 마루 한 켠 장식장에는 취미 삼아 모은 미니어쳐 술병들이 빼곡하다. 안방의 고풍스런 자개장만 없으면 젊은 독신녀의 집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사는 방식과 사는 공간이 그러하듯 생각하는 것도 요즘 젊은 독신자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서 할머니는 이제까지 결혼하자는 사람이 여럿 있었지만 "내 일과 돈 버는 일, 그리고 남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 더 중하다"는 생각에서 독신을 고집했다고 한다.

"만일 좀더 나중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마 다시 결혼 했을지 몰라.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 때는 여자가 시집 가면 그 집 귀신이나 되는 것이지 자기 일이나 자기 인생을 개척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거든." 남편과 결혼에 의지해 살지 않겠다는 생각은 하나 뿐인 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늙었다고 자식 신세 지는 일은 "처음부터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예 딸이 대학생이 되고 결혼 상대를 만나자 책이며 옷가지며 다 싸버렸다. "아무리 자식이라고 해도 내 인생은 내 인생이고 딸의 인생은 딸의 인생이기 때문"이 그 이유라고 했다.


독거노인의 가장 큰 짐은 경제력

서 할머니 같은 독거 노인, 혹은 독거를 생각하는 노인은 많다. 현재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령 인구는 337만여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998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65세 이상 노인이 1명이라도 있는 '노인가구'는 전체 가구의 20.9%, 이중 노인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21.1%에 달한다.

또 1999년 여성단체협의회가 60세 이상 여성 노인 5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성노인의 생활 실태 조사'에서는 16.7%가 독거, 19.2%가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자식과 따로 살고 싶다고 대답한 노인은 33%로 그 이유로는 '편하고 자유롭기 때문에'와 '자녀에게 부담 주기 싫어서' 등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혼자 사는 노인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또 하나의 1인 가정 형태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하지만 젊은 독신자에 비해 독거 노인은 살기가 버거운 경우가 많다. 혼자 사는 데서 오는 외로움은 둘째 치고라도 경제력, 건강 등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경제력이 있고 건강에도 이상이 없는 서 할머니는 독거 노인 중에서는 극히 드문 경우에 속한다.

보건사회연구원 집계에 의하면 독거 노인 중 8만4,000명은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환자다.

특히 이중 3,360여명은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최중증 장애로 고통 받고 있다. 연금 제도가 발달하지 않았고 노인 복지 수준이 형편없는 우리 나라 상황에서는 대개의 경우 혼자 살다 병이 든다면 비참한 노년을 보낼 수 밖에 없다.

거기에 자식과의 왕래마저 없다면 그야말로 버려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노인기관은 열악한 시설에 숫자도 태부족이며 사설 실버 타운의 경우는 수영장, 사우나, 노래방 및 각종 여가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입주에만 3억원 이상의 돈이 들기 때문이다. 역시 그나마도 노인 인구에 비해 태부족이다.

여러모로 아직은 노인 혼자 산다는 게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적극적인 삶이 건강비결

하지만 평생 모은 돈 이외에 서 할머니의 독거를 즐겁게 만드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서 할머니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 철저하게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고,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자기 자신에게서 삶의 동력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늙었다고 방안에만 누워 있으면 안돼. 몸이 닿는 데까지 움직여야지. 하다 못해 남을 위해 작은 봉사활동이라도 하면 뭐라도 얻어 가지는 게 있거든"이라고 말하는 서 할머니는 그래서 "이제까지 외롭다고 생각해 본 적 없고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한다.

벌써 마지막까지 자식 신세 지지 않으려고 산소 자리 등 준비를 다 해두었다.

경제력이야 사람마다 다르고 노인 복지는 국가에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적지 않으므로 논외로 하더라도, 늙고 혼자라고 위축되기 보다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해보려는 서 할머니의 태도는 노년 인구의 증가, 독신자의 증가라는 세태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하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5/09 16:18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