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대종상이 상답지 못할 때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수작이다. 단순히 불만이 생기는 또는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니다. 이건 완전히 '뻥뻥이 뽑기' 수준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내참. 기가 막혀." (ID peuis)

하나만 더 들어보자. "굳이 좋아하는 배우가 상을 타지 못해서 이런 말을 꺼내는 건 아닙니다. 다만 활기를 띠어가는 한국영화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말을 하고싶을 뿐입니다.

대중들의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막 옮겨갈 즈음 이런 몰상식한 영화제가 열린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문제가 된 만큼 심사위원이 매긴 점수표가 공개돼야 하지 않을까요. '하루'라, 내 참. 38년 동안 이 영화제가 어떻게 이뤄졌었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ID jeongsup)

'기가 막힌다' '몰상식한 영화제'란 느낌은 그날 시상식에 참가한 영화인이나 수상자나 그 광경을 지켜본 관객(시청자)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오죽했으면 어느 기자는 라디오 방송을 하러 갔다가 그곳 PD, 작가들이 하도 욕을 해서 다음날 그 반응을 기사화했을까.

오죽하면 '하루'로 감독상을 수상한 한지승 조차 "전혀 뜻밖이다" 라고 했으며, 그 영화가 심사위원특별상까지 받자 제작자인 구엔필름의 구본한은 부끄러워 인사말 한마디만 하고 얼른 단상을 내려 갔을까.

nkino가 네티즌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에서 무려 93%가 결과에 불만을 나타냈다. 만족은 불과 4%. 그나마 4%가 나온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가 작품상, 남우주연상(송강호)등 4개 부문을 수상한 것에 대한 찬성일 것이다.

결국 오랜만에 신ㆍ구영화인들이 마음을 합친 영화인들의 화합과 축제라고 떠벌린 '제38회 대종상' 은 마지막 마무리를 엉망으로 해 화합도 전통도 권위도 모두 잃어 버린 한심한 영화제가 됐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영화계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애초 '화합' 이니 '공정'이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겉발림에 불과한 것인가를 안다. 영화정책과 제작에 주도권을 잡은 젊은 영화인들은 무슨 일에서든 선배들을 무시하고, 선배들은 후배들의 어떤 얘기도 믿지 않는다.

대종상 축제가 한창인 때 결론을 내린 문제의 영화진흥위원회 극영화예술지원금을 놓고 영화인협회는 진흥위원들의 사퇴를 촉구하는 서명운동까지 벌이기로 결정한 마당에 대종상에서의 화합이란 무늬일 뿐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신ㆍ구를 대표하는 심사위원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절차는 투명하고 공정했는데 결국 '나눠먹기' 가 됐다는 것이다. 이유가 그것 하나만으로 상이 엉터리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 나눠먹기로 선택한 작품에 있다. 예술성이나 흥행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영화를 제쳐두고 하필이면 '하루' 인가.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있는 '친구'가 한 부문도 수상하지 못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친구'를 본 500만 관객은 모두 바보인가.

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 '친구'는 깡패영화라서" "영화는 멜로가 최고" 라서. 그렇다면 아카데미는 왜 '대부'에게 상을 주었을까. '번지점프를 하다' 나 '오! 수정' 같은 다른 멜로도 후보에 있었다.

별소리가 다 들린다. 누구는 누구의 제자라서, 누군가 로비를 해서, 그 로비스트가 자신이 투자해 곧 만들 영화 감독을 생각해서. 다음 작품에 그 배우를 잡고싶은 제작자가 있어서.

이런 소문들이 사실이라며 여전히 대종상은 깨끗하지 못하고, 사실이 아니라 수상작 선정이 심사위원들의 소신이라면 그들의 영화 보는 눈이 일반 관객의 호응이나 평가, 상식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자질 없는 사람들이 논공행상을 멋대로 결정한 셈이다.

상이 공정하지 못할 때 그 상은 받는 사람에게조차 욕이 될 수도 있다. 대종상의 권위와 전통은 영화인들이 만들어 간다. 그러나 현재 영화인들의 태도나 자질로 봐서는 그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한 네티즌의 말처럼 "대종상이 영화수준을 못따라 가고 있다. 오히려 한국영화를 욕되게 하고 있다."

입력시간 2001/05/0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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