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평양의 색깔은

평양에서 서울이나 워싱턴, 유럽에 던지는 색깔은 무엇일까. 서울에서보는 색깔은 6월이면 북ㆍ미 회담이 열리고 그 후에는 2차 남북정상회담도 가능한 보라빛이다. 워싱턴 색깔은 아직도 뚜렷하지 않다.

다만 미사일 방어망 구축 대상인 '불량, 깡패국가'속에 북한이 이란, 이라크, 파키스탄 등과 함께 들어 있다는 미국측의 노란 경고색은 여전하다.

유럽은 5월 2, 3일 유럽연합(EU)집행부가 평양에서 5시간 이상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과 대화를 가졌으나 보라빛 보다는 잿빛을 더 본 듯하다.

이처럼 답답한 색깔속에 전국 14개 대학교 대학생 50여명이 미국의 대북강경노선 철회를 내걸고 4월18일부터 들어간 '반미구국 단식농성'이 20여일을 넘어섰다.

또 대구주둔 미군 캠프 헨리 앞에서는 1인 반미데모가 수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위싱턴포스트의 데이비드 조 기자의 보도(5월11일자)에 따르면 캠프 헨리의 한국인 회계 담당자의 남편인 남호학(42)씨는 지난해 8월 이후 부대 앞에서 '아내의 사인을 밝혀라'고 주장하며 1인 반미 데모중"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의하면 남씨의 부인 박천희씨는 지난해 8월 5일 델러스 공항인근 수도권 순환도로를 70마일 속도로 달리던 택시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그녀는 미 국방부에서 연수를 마치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던중 "잘못되었어! 내려야겠어"라며 달리는 차에서 뛰어 내렸다는 게 택시 운전사의 증언이다.

버지니아주 경찰의 조사로는 택시의 잠금쇠는 이상이 없었고 타살 혐의가 없어 4월 말 박씨의 자살로 사건을 종결했다. 가족들은 그러나 박씨가 미 기지내의 비리를 너무 많이 알고 있어 음모에 의한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캐서린 문 웨슬리 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한국의 반미 분위기와 관련, "한때 극렬한 좌파적 시각으로 비판받던 반미주의가 지금 한국운동의 주류가 아닌가 우려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학 아시아연구센터 김형국 소장의 생각은 좀 다르다. "박씨의 사건은 한강에 미 8군이 독극물을 버린 사건,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문제의 충돌속에 발생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대부분 한국민은 미군의 주둔에 긍정적이다. 작년에 일어난 미군 관련 사건은 주한미군 주둔이란 주제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본다"고 그는 해석했다.

그래서일까. 5월10일 외교통상부ㆍ국방부 인사들과의 간담회를 갖기위해 투숙한 호텔을 나서던중 계란세례를 받은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은 간담회장에서 팔짱을 끼고 껄껄 웃는 모습으로 신문에 나왔다. 토요일 밤 미국 TV에 나오는 프로 레슬링 대회에서 우승한 챔피언의 웃음과 흡사했다.

'아미티지가 프로레슬러같다'는 평가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입에서 처음 나온 것이다. 국방부 장관 보좌관 시절 봅 돌 전 상원의원의 스태프였던 아미티지를 1981년 1월 처음 본 뒤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파월은 그의 자서전 '나의 미국여정-콜린 파월'에서 아미티지와는 형과 아우사이의 나이(1937년생과 1945년생)를 넘어 진정한 친구, 동지, 정책의 동료라고 밝혔다.

흔히 그를 강경한 북한 제재론자로 보고 있으나 1999년 3월 그가 작성한 '아미티지 보고서'는 처음으로 북한을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했다.

이 '포괄적 접근'에 '상호주의'를 내세운 것은 오히려 김일성ㆍ김정일 부자인지 모른다. 이번 EU 집행위원회 대표단의 평양 방문에서 '미사일 발사 2003년까지 유예' 발언을 끌어낸 것은 스페인 외무장관을 지낸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사무총장 사비에르 솔라나 EU외교정책 및 안보최고책임자였다.

"나는 김 위원장에게 미국의 미사일 방어전략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미국인들의 통역관이 아니니까요.

그러나 김 위원장 스스로가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이 클린턴 때보다 강경해질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아인슈타인이 되어 사태를 예측말라'고 충고했지요."

"김 위원장이 '외국에 미사일을 파는 것도 무역의 한 부분이다. 살 사람이 있으면 판다'고 했을 때 나는 말했습니다. 미사일을 장착하고 발사하는 것이 어찌 오렌지를 판매하는 것과 같습니까. 우리가 미사일을 제한하고 규제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김 위원장이 미국과 '포괄적 합의'를 이룰 때까지 미사일을 판매한다라는 '상호주의'를 고수하겠다는 방침에 EU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고 그는 밝혔다.

아미티지나 부시 대통령의 대북 '포괄적 접근'에는 북한이 먼저 상호주의를 버리고 자신의 정책을 명확히 할 때 미국도 의구심은 물론, 불량이나 깡패라는 수식어를 떼겠다는 뜻이 들어있음을 북한은 알아야 한다. 서울의 반미 운동도 이 같은 미국의 흐름을 올바로 알아야 반미 구국운동이 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05/1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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