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망대] 불안 속 조심스런 회복조짐

뉴욕 월가의 검투사들이 '금융황제' 앨런 그린스펀의 엄지손가락만 쳐다보고 있다. 엄지의 방향이 곧추서느냐(연방기금 금리 0.5%인하), 비스듬하게 위로 향하느냐(0.25% 인하), 아니면 옆을 향할 것인지(현행 유지)에 따라 자신들은 물론 시장 전체의 운명이 천국과 지옥의 양 극단을 을 오가게 되기 때문이다.

금리인하설을 완강히 부인하던 유럽중앙은행이 2년만에 전격적으로 금리를 0.25% 내린 까닭에 "미국 연준(FRB)도 16일(한국시간) 열리는 공개시장위원회에서 연방기금 금리를 0.5% 낮추고 6월에도 또 한차례 내릴 것"이라는 낙관론이 더욱 힘을 얻다가 돌연 썰렁해진 요인은 혼조에 빠진 미국의 경제지표다.


미국경제 호조, 5월 랠리 꿈 사라진 국내시장

생산과 고용, 투자 동향을 보면 미국인들이 직장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소비를 줄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4월 소매매출과 5월 소비자신뢰지수가 월가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상승세를 이어갔고 생산자물가지수도 덩달아 올랐다. FRB가 호전적인 금리정책을 펴야할 최대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금리인하폭 축소 우려감이 교차하던 시장은 결국 후자쪽에 섰다.

단기적으로 국제적 유동성 확대에 따른 반사이익을 노렸던 국내 시장의 상승 모멘텀도 한풀 꺾였다. '5월 랠리'의 꿈은 사라지고,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의 무상함을 달래는 인내심이 다시금 요구된다.

"민(民)에 의한 자본 지배와 국정파탄, 자본주의의 근간을 침심하는 좌익의 국정농단으로부터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우익이 총궐기해야 한다"는 민병균 자유기업원 원장의 독설로 촉발된 정부와 재계의 반목을 해소하기 위해 16일 경제부처 장관과 30대재벌 구조조정본부장 등이 참석하는 정ㆍ재계 간담회가 열린다.

"규제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재계의 아우성에 대해 정부는 "너나 잘해"라며 일축했지만 내심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때 도입했던 재벌 가이드라인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인식은 갖고 있다.

정권 후반기의 권력공백을 노린 재계의 '꼼수'는 경계해야 하겠지만 철밥통을 존재의 이유로 삼으며 전근대적 지도ㆍ감독권에만 연연하는 관료사회의 '왕자병'도 이번 기회에 확실히 날려버려야 한다. 분별없고 시대착오적인 우익의 궐기를 뿌리부터 제압하려면..

우리 경제의 애물단지중 하나인 대우자동차 매각문제도 금주 고비를 맞는다. GM이 내주중 우리 정부와 채권단에 인수제안서를 제출할 것이라는 얘기가 무성한 가운데 이번 주말에 고위 실무자를 파견, 인수조건과 방식 등에 관한 사전협의를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헐값매각ㆍ국부유출 등의 시비에 휘말려 우왕좌왕했던 정부도 이젠 입장을 정리해야한다.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비위를 다 맞추려고 하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않겠다는 뜻이다. 대우차를 동아건설처럼 염(殮)하지 않으려면 욕먹을 각오가 돼있어야 한다.

18일엔 '현대가(家) 몰락'의 상징이 될 현대건설 주주총회가 열려 심현영 사장을 공식 선임한다. 소액주주들이 채권단이 결정한 감자비율(5.99대 1)에 강력 반발하고 있어 한바탕 소동이 예상되지만 한국의 '건설 명가(名家)'를 되살려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새로 둥지를 트는 현대건설이 내놓을 조직 및 경영 혁신조치가 궁금하다. 출자전환에 반기를 든 투신권 처리문제도 관심이다.


하반기 경제회복에 강한 자신감

주중 발표될 몇가지 경제지표도 유심히 살펴야 한다. 4월 소비자 전망조사(16일), 4월 고용동향(17일), 4월 어음부도율(16일), 가공단계별 물가동향(18일) 등이 그것.

최근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은 ▦계절적 요인 해소로 실업자 70만명대로 감소(실업률 3%대) ▦환율 및 농수산물 가격 안정에 따라 물가상승률 3%대로 안착 ▦ 경기실사지수 5개월째 호전 ▦신설법인 급증 등을 들어 향후 하반기부터 경제가 완만하게 회복될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견인차인 수출이 석달째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고 반도체가격이 바닥모른듯 떨어지고 있어 섣부른 기대를 불러일으킬 때가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들은 "최근 소비가 살아나고 있지만 수출이 절대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경기회복을 점치는 것은 성급하다"며 "미국 경기 등 해외변수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일단 주요 지표의 흐름을 지켜봐야할 것 같다.

박지원 청와대 정책수석이 최근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을 만나 정부가 금강산 관광사업의 정상화를 위해 조만간 지원방안을 내놓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주목된다.

현대상선이 주중 금강산 사업 철수를 공식선언할 예정이어서 정부가 바빠질 수 밖에 없다. 외자유치를 위해 로드쇼에 나서는 하이닉스반도체와 살로먼스미스바니가 어떤 보따리를 들고올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남미발 공황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아르헨티나에 대해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S&P가 국가신용등급을 B+에서 B로 하향조정했다.중남미가 우리의 새로운 수출시장으로 부상되고 있는 만큼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이유식 경제부차장

입력시간 2001/05/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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