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家 4세 '빌의 실험'

미 포드자동차 창업자의 4대손인 윌리엄 클래이 포드 주니어(44ㆍ 애칭 빌)는 인생을 쉽게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포드차에 들어가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포드차의 전문경영진은 1920년대 이후 창업자 가족의 경영 참여를 막아왔다.

빌도 전임 알렉스 트로트만 회장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1999년 가까스로 회장에 취임한 그는 "내가 비즈니스 현장에 너무 가깝게 다가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고 고백한다.

빌은 포드차의 경영 핸들을 잡아 회사를 험한 길로 몰아가고 있다. 환경론자들의 뜻을 받아들여 매출 1,700억 달러의 거대 기업을 소비자들과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으로 바꾸려 하는 것이다.


포드차 개편은 21세기 산업혁명의 신호탄

그의 구상은 포드차의 2번째 혁명이다. 포드차의 개편을 21세기 산업혁명의 신호탄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의 아이디어는 대량 생산을 위한 조립 라인과 서비스 센터, 효율적인 작업 형태를 창조한 할아버지 헨리 포드와 닮았다. 헨리는 대량 생산에 투자했고 결국 세계를 바꿨다. 빌은 인간과 지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생산성을 높이는 친노동자ㆍ친환경적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궁극적으로 헨리의 가치를 한 단계 더 높여줄지 모른다.

빌의 구상은 수십년간에 걸쳐 포드차 경영진이 걸어온 길을 뒤엎는 것이다. 포드차는 다른 자동차 제작사들과 함께 환경규제론자들과 싸워왔다. 3년전만 해도 포드차는 "지구온난화방지를 위한 교토기후협약은 넌센스"라며 반대해온 지구환경연맹의 회원사.

그래서 빌은 환경론자들로부터 '위선자'라고 불렸다. 그러나 포드차는 99년 BP아모코에 이어 지구환경연맹에서 탈퇴했다.

환경을 생각하는 비즈니스가 돈이 될 것인가. 이 물음에 포드는 "우리는 해야만 한다. 한번도 해본 적이 없지 않느냐.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았다"고 답한다.

빌이 이 일을 수행하는데 두 가지 이점이 있다. 하나는 의결권이 있는 B급 주식의 40%를 갖고 있는 그의 가족이 빌을 지지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회장이 직접 기업을 경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전문경영인으로 하여금 이 일을 추진하도록 도울 뿐이다.

포드차는 현재 빌과 자퀴스 나세르(애칭 잭)의 투톱 체제다. 빌은 이사회를 주재해 회사의 장기발전 방향을 정하고, 잭은 매일 매일의 결정을 내리는 최고우두머리다.

두 사람의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다. 빌은 미시간주 그로스 포인트 출신의 부잣집 아들이고, 잭은 노동자 계급의 레바논계 호주 이민자 출신이다.

빌은 또 지금까지 녹차를 마시며 여유 있게 살아온, 그리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반해 잭은 오랫동안 포드차에서 일한 샐러리맨이다. 두 사람의 세대도 다르다. 그런 잭이 빌의 아이디어를 지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의 아이디어가 사업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 직원은 말한다.


잭과 투톱체제, 대조적 스타일

처음엔 두 사람간의 불화 소문이 포드차에 돌았다. 부잣집 아들과 기업 전문가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두 사람은 그러나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극구 부인한다.

빌은 "최고위층을 둘러싸고 편을 가르는 걸 좋아한다. 우리는 그것을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사무실은 녹색유리로 지어진 월드본부 빌딩의 꼭대기층에 서로 가까이 있다. 그러나 사무실 스타일은 너무 다르다. 빌은 따뜻한 분위기. 가족사진을 붙여놓고 그의 할아버지가 물려준 책상을 제외하면 재활용한 가구 일색이고, 한쪽 벽에는 열대어 어항도 있다.

잭의 공간은 차갑다. 일을 하기 쉽도록 컴퓨터와 평면 TV, 노키아 월드 폰, 소니 바이오 랩탑을 배치했다. 빌이 신중하다면 잭은 스피드를 중시한다. 포드차에서 30년간 일한 잭은 시간대를 넘나들면서 거래하는 오늘날의 지구촌 산업 전사이다.

그는 취임 18개월만에 볼보와 랜드로버를 인수했고, 그리고 이혼까지 했다. 빌은 아내 리사와 '넘버원 재산'이라는 4명의 아이에게 헌신적이다. 지난해 그는 가족들에게 보다 안락한 삶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미시간주 안 아버의 최첨단 아파트로 이사를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취임후 보다 인간적인 작업환경을 위해 직원의 집에 컴퓨터를 제공하는 '모델 E' 계획에 2억달러를 투자하고 지난해엔 미국 각지에 무료 진료와 성인 교육 등을 제공하는 '패밀리 센터' 마련을 발표했다.

빌은 현재의 지위에 오르기 위해 계속 싸웠다. 빌과 그의 사촌 엣셀이 1988년 이사로 선출됐을 때, 최고경영자(CEO)인 돈 피터슨은 포드가의 누구도 이사회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가 회장에 취임했을 때 퇴임하는 트로트만은 그를 '귀공자 윌리엄'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빌은 "나는 이런 더러운 판에 들어가서 싸워야 할지, 아니면 나와 버려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고 회고한다 그는 싸우는 것을 선택했다. "나는 매우 경쟁심이 강한 사람이고, 그것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빌은 아버지 윌리엄 클레이 포드 시니어가 미식축구(NFL)구단인 디트로이트 라이언스를 샀을 때부터 경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팀이 추락하자 지방 언론들이 '아버지 때리기'에 나서는 것을 보고 "어린아이였는데도 울고 싶었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96년 그에게 팀의 운영을 맡기자 대대적인 팀 운영개편에 들어가 연례 추수감사절 기념 대회를 라이온 홈구장에서 개최하는데 성공했다. 라이언스팀은 여전히 하위권이지만 그는 새 구장을 건설하는데 2억달러를 투자했고, 이를 통해 2006년 슈퍼볼을 디트로이트로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빌은 지난해 포드차를 위기로 몬 파이어스톤 사건을 계기로 많은 걸 깨달았다. "엑스플로러에 잘못이 있는가? 그것이 나의 첫 질문이었다. 엑스플로러가 다른 스포츠 유틸리티(SUV)차보다 안전하다는 증거도 있다.

그러나 변호사와 의회, 기자들이 매일 피해상황을 뻥튀기는 바람에 충분히 조사를 할 시간이 없었다"고 그는 안타까워한다.

지난해 9월에는 빌이 파이어스톤 사건의 전면에 나서려 했다. 그러나 이사회는 반대했고, 잭이 그 역할을 맡았다. 잭이 TV광고에 나갔고 인터뷰를 하고 워싱턴으로 가 의회를 상대했다. 빌은 뒷전에 머물렀다. 포드차에 결정적인 잘못이 나온다면 믿을 수 있는 빌이 나서 마무리를 지을 것이다.


친환경 자동차회사 방침 재확인

두 사람은 이제 경기침체와 새 자동차의 리콜 등 경영문제에 대해 주로의견을 나눈다.

그들이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는 것은 워싱턴이다. 오랫동안 워싱턴에서 환경과 안전기준 로비에 수백만 달러를 들였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사라졌다.

최근 발표한 포드차 보고서는 친환경 자동차회사의 방침을 재확인했다. 지난달 포드차는 도요타와 혼다 등이 가입한 자동차환경그룹에 가입했다.

이 그룹은 소비자 세금의 일부를 가솔린ㆍ전기 하이브리드 엔진 차량의 판매보조금으로 쓰도록 청원을 하고 있다. 가솔린ㆍ전기 하이브리드 엔진차량은 워낙 비싸기 때문에 정책적인 보조가 필요하다.

포드차는 또 2003년부터 가솔린ㆍ전기 하이브리드 엔진차량을 판매할 예정이다.

포드차는 제2산업혁명을 향해 나아간다. 만약 그것이 성공하면 '포드'란 이름은 산업을 다시 한번 바꿀 것이다. 산업혁명이 안 일어난다고 해도 최소한 친환경적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고, 그것이 그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다.

"너는 돈이 많다. 원하는 것을 모두 할 수 있다고 나에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빌은 "(돈이 많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5/15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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