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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정치학] 골프 잘 친다고 정치 잘하나?

정치인의 기본조건이 되어버린 골프, 지위 악용이 문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재임 8년간 800라운드를 넘는 골프를 쳤다. 루스벨트 대통령도 장애를 극복한 장타로 소문이 나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은 걸프전 와중에도 '속도전 골프'를 즐겼다. 클린턴은 하와이에서 수재로 수많은 이재민과 사상자가 났는데도 골프 클럽을 놓지 않았으며 이라크 공습 시에도 회의만 끝나면 필드로 향했다.

이외에도 미국이나 유럽의 대통령 중에는 골프광이 많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한결같이 퇴임 후 '대통령직을 잘 수행 했다'는 평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골프 정치'가 막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우리 정치계의 실정은 어떨까. 국내 골프 정치의 한가운데 서 있는 인물은 단연 JP다.

JP는 숱한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도 날카로운 수읽기와 재빠른 변신으로 오뚜기 처럼 일어선 정치 9단이다. 위기마다 나오는 특유의 선문답과 칩거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가 골프를 빗대 정치권에 던진 선문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얼마 전 "2002년 대선 때 (자신이 밀어주는 후보가)서드 샷까지 들어갈 것(당선될 것)"이라는 킹 메이커 발언이 그 것이다. 그 이후 JP의 주말 골프 동반자가 되려는 대권 주자들이 부쩍 늘었다.


JP '골프정치'선도, 실력도 수준급

국민의 정부 들어 JP는 매주 2~3번 라운드를 돌며 특유의 '골프 정치'를 선도하고 있다. JP는 75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10일 박세리와의 동반 라운드에서 78타를 쳤을 정도로 수준급 실력이다.

그와 같이 골프를 친 적이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JP는 나이가 있어 거리는 짧지만 숏게임이 워낙 좋아 어프로치 샷은 거의 1퍼트 거리에 붙인다"고 말했다.

JP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 서서울에서 기록한 70타가 베스트 스코어라고 하는데, 보통 한라운드 당 2~3번의 멀리건(잘못 친 샷을 무효로 하고 다시 치도록 하는 것)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실제 보다 약간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JP는 최근 출입 기자들에게 "내가 아니면 국내 최초의 골프장인 서울CC가 콩밭으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털어 놓은 적이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5ㆍ16 혁명 직후 혁명주체 세력이 서울CC를 갈아 엎어 콩밭으로 만들기로 했다는 정보를 듣고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자신이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설득해 막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외국인과 기업인들이 겁먹지 않게 하려고 미8군에서 골프 클럽을 구해 처음 골프를 쳤다는 것이다. 항간에는 3공화국 시절 당시 김형욱 전 중정부장과 골프를 치다 창피를 당한 이후 골프 연습에 몰두해 현재의 실력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치권에는 JP외에도 많은 골프 마니아들이 있다. 여야 지도부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골프 지존'은 민주당 박상규 총장. 박 총장은 "20년전인 1981년 4월 도고CC에서 캐디 5명을 바꾸고 김밥을 먹어가며 혼자 126홀을 돌았다"고 자랑할 정도로 골프광이다.

홀인원 한번에 이글 10번을 기록한 싱글(81타 이하로 치는 것) 핸디 캐퍼다. 최근에도 그는 맘만 먹으며 70대 중반은 쉽게 친다고 한다. 자민련 김학원 의원도 골프 입문 9개월 만에 싱글이 된 '골프 신동'이다.

김 의원은 한 라운드에서 이글과 알바트로스(5타로 치는 홀에서 2타 만에 홀아웃)를 치는 프로선수도 평생 한번 하기 힘든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선 정형근 제1정조위원장이 하루 동안 서울 부산을 오가면 라운드를 돌 정도로 골프 애호가다.

정위원장은 한번 쳤다 하면 36홀은 돌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는 게 주변의 전언. 이밖에 민주당 정균환 특보단장, 박병윤 유용태 심규섭 의원, 한나라당 박종근 이원창 박희태 강재섭 의원, 자민련 조부영 의원, 변웅전 대변인 등도 싱글 수준의 골프 실력을 갖고 있다.


부킹전쟁도 남의 일, 맘 먹으면 언제든 라운딩

대선 예비 주자들도 '보기 골퍼'수준을 갖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은 핸디 18(평균 90타)을 놓고 내기를 하곤 한다.

민주당 김중권 대표는 한 때 80대를 치기도 했으나 청와대 비서실장 이후 거의 치지 않아 실력이 떨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말 골프 중단을 선언했던 이인제 최고위원은 "골프로 국민과의 접촉 시간이 줄어든다"며 이번 기회에 아예 골프를 끊는 방안을 점토중이다.

노무현 상임고문도 지난해 해양수산부 장관에 입각하면서 골프를 시작했는데 지난달 골프장에서 나눈 대화가 구설수에 오른 이후에는 골프장 출입을 자제하고 있다.

정계에서 골프에 가장 소극적인 그룹은 DJ를 보좌하는 동교동계다. 김 대통령이 야당 시절부터 골프, 바둑, 화투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터라 동교동 가신들은 골프는 물론 술 담배도 멀리하는 사람이 많다.

현재 동교동계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은 좌장인 권노갑 전최고위원 뿐이다. 권노갑 전최고위원도 본래 골프를 치지 않았는데 1997년 당뇨병이 악화돼 운동 삼아 시작해 지금은 마니아 수준에 올라있다.

권 전최고위원은 최근 싱글도 몇번 기록할 정도로 기량이 부쩍 상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고액 내기 골프를 주최자도 권 전최고위원이었다.

한편 1998년 정권 교체기에 몇번 쳐 본 적이 있는 한화갑 최고위원은 5월 필드 진출을 목표로 지난 4월 한달 동안 맹렬히 연습했으나 이번 내기 골프 파문으로 뜻을 접었다. 김옥두 의원도 한두번 친 적은 있었으나 DJ의 심경을 헤아려 지금은 골프를 치지 않는다.

한 정치권 인사는 "최근 여권내 골프 회동이 눈에 띄게 느는 추세에 있었는데 이번 고액 내기 골프 파동 이후 다시 추춤하고 있다"며 "세계적인 골퍼를 배출하는 나라에서 골프를 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4~5년전부터 국내 골프장들은 시즌, 비시즌 가릴 것 없이 부킹 전쟁을 치른다. 한창 성수기 때는 억대의 회원권을 보유하고도 주말 부킹은 하늘의 별따기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이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상당수 골프장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부킹을 해주기 때문이다.

고위 정치인의 점잖은 부탁을 거절했다가 혹시 된서리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권의 고위 인사가 골프장에 오면 그 골프장의 대표나 간부가 나와 인사를 하거나 함께 라운드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라운드가 끝나면 고급 양주나 안주를 서비스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골프장 간부가 함께 라운드할 시에는 보통 그린피와 식사비도 면제해 주는 게 관례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준회원 대우를 적용해 그린피를 할인해 준다.


권력이용한 월권 행위 반발

지난해 12월 중순 명문인 서울ㆍ한양CC에서는 한차례 소동이 있었다. 여권의 한 실세가 와서 무조건 "부킹 시간을 배정해 달라"고 프론트 여직원에게 요구한 것이다.

이 여직원은 규정에 따라 "예약을 안해 곤란하다"고 거절하자 이에 격분, 한 동반자가 여직원의 뺨은 때린 것이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무례한 행동을 한 정치인들이 오히려 골프장측에 화를 냈다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골프장 간부로부터 사과까지 받고 라운드를 돌았다. 하지만 이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네티즌으로부터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정치인들은 수천, 수억원짜리 회원권을 가진 회원보다 더욱 당당하고 손쉽게 골프장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골프장의 한 관계자는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 수도권 일부 골프장은 주말에 회원 몫 외에 일부 시간을 아예 정치인용으로 3~4팀 정도 떼어 놓는다"며 "골프장측에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하지만 실제로 보면 그것은 회원들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월권 행위"라고 말했다.

정치인들이 골프를 여가로 즐기든, 정치의 수단으로 삼든 문제가 될 것은 없다. 하지만 그것이 선량한 국민들에게 피해가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우월적 지위가 개인의 사적 재산권에 까지 피해를 입힌다면 그것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1/05/1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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