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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얌체족] 건드렸다 하면 무조건 눕는다

접촉사고에도 병원행, 보험금 노린
'나이롱 환자' 증가

서울에서 헬스 클럽을 운영하는 김현탁(36ㆍ가명)씨는 지난주 당한 황당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가라 앉지 않는다. 김씨는 지난 주말 밤 11시30분께 자가용을 몰고 가다 3중 추돌 사고를 일으켰다. 앞서 가던 자가용을 받았는데 그 차가 충격으로 앞으로 밀리면서 맨 앞에 있던 택시를 2차 추돌한 것이다.

하지만 속력을 내지 않은 상황이어서 자가용은 뒷 범퍼 하단의 번호판만 약간 손상 됐고, 맨 앞의 택시는 뒷 범퍼에 약간의 흠집만 난 경미한 사고였다. 그래서 자가용 운전자는 "범퍼나 수리해 달라"며 그냥 돌아갔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더 세게 받힌 바로 앞 자가용 운전자는 그냥 갔는데 2차로 가볍게 받힌 택시의 운전사와 승객 두 명이 '허리가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피해자들은 병원으로부터 경추와 요추부 염좌로 2주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가 안돼 사고 다음날 밤 그 병원을 찾아갔다.

아프다는 사람들은 멀쩡히 TV를 보며 노닥거리고 있었고, 손님 중 한명은 아예 외박을 나가고 없었다.

결국 택시에 타고 있던 승객 두 명은 2~3일간 입원한 대가로 김씨가 가입한 보험회사로부터 각각 73만원 정도의 합의금을 챙겼다. 승객 중 한 사람은 개인보험에도 가입해 따로 추가로 보험금도 타 낸 사실도 알게 됐다.

현재 택시 운전사는 더 많은 합의금을 요구하며 여전히 병원에서 버티고 있다. 김씨는 담당 보험사 직원이 "이런 경우는 그래도 양호한 편에 속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최근 각종 보장성 보험 시장이 커지면서 보험금을 타내려는 얌체족들이 급증하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자동차 손해 보험 분야. 보험금 지급에 대한 관리ㆍ감독이 강화되고 보상 액수가 높아지면서 일단 사고를 당하면 부상 여부와 관계없이 보험사나 가해자로부터 거액의 합의금 뜯어 내려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택시나 화물차 등 운수업계와 폭력배들 사이에서는 '보험회사 돈은 눈먼 돈'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최근에는 일반인 중에서도 이런 방법으로 목돈을 챙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


'보험금은 먼저 타 먹는게 임자' 인식

8년여의 택시 운전 경력을 지니고 있는 유모(30)씨는 26일째 서울 H병원에서 입원중이다.

유씨는 지난달초 정차 중에 한 자가용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후미를 받혔다. 이 사고로 뒷 범퍼가 부숴져 30만원 가량의 차량 수리비가 들었다. 사고 직후 유씨는 이 병원에 입원, 경추부와 요추부 염좌 증세로 3주 진단서를 발급 받았다.

유씨는 목 부분에 통증이 심하다며 CT촬영을 했으나 현재까지 진단서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도 유씨는 벌써 한달 가까이 퇴원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합의금이 너무 적다는 것. 유씨는 입원한 다음날 가해자측 보험사 직원으로부터 위자료와 휴업 손해액을 합쳐 120만원에 합의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유씨는 "3주 진단이 나왔으니 주당 80만원씩 240만원을 주지 않으면 합의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보험사측은 담당 의사의 소견서를 근거로 유씨측에 '더 이상 입원 치료비를 대줄 수 없으니 내일부터 통원 치료비만 지급하겠다'라고 통보했다. 그럼에도 유씨도 "요구한 합의금을 주지 않으면 퇴원 할 수 없다"며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이런 보험금 타내기 수법을 가장 잘 이용하는 부류는 영업용 차량 운전사들. 이들은 직업상 사고가 잦아 보험업계의 실태를 샅샅이 파악하고 있는 덕(?)에 작은 사고가 나더라도 일이백만원을 챙기는 것이 보편화 돼 있다.

이들은 회사에 소속된 '보상 상무'를 통해 보험금을 타내는 요령을 전수 받거나 아예 보상 상무를 내세워 합의를 보기도 한다. 이들은 일주일 진단에 70~80만원 정도의 합의금을 받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1주 진단에 합의금 80만원이 기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고 보상은 중대한 인명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경우엔 피해 차량을 수리해 주고 치료비 명목의 위로금 정도를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사고 합의금이 주당 100만원선에 육박하게 된 것은 1990년대 초에 있었던 한 피해자의 손해배상 소송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피해자는 흔한 증상인 경추와 요추 염좌(허리와 목 통증) 진단서를 발급 받아 보험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는데 무려 2,000만원에 달하는 배상 판결을 받은 것이다.

당시 판사는 경추나 요추가 의료법상 장애 항목에 들어 있으므로 장애에 따른 상실 수입액을 피해자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 이후 보험사들은 보상액이 다소 늘더라도 가급적 빨리 합의를 하려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S보험사의 한 보상팀 직원은 "보통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병원에 찾아가면 2~3주 정도의 진단서는 쉽게 발급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진단으로도 손해 배상 소송에 들어가면 최소한 300만원 정도의 배상 판결을 받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빨리 합의를 보려는 게 보험사들의 속성이다"고 말했다.

이런 약점을 알게 된 운전자중 일부는 일단 자동차 사고만 나면 부상 여부와 관계없이 우선 병원에 누워 버린다. 입원할 경우 통원 치료할 때보다 병원비가 훨씬 늘어나기 때문에 보험사측이 더 조급해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보험사도 '어차피 보상금을 노리고 입원한 바에야 병원비라도 줄여 보자'며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응한다.

이런 이유로 일부 운전자들 중에는 일부러 사고를 조장하거나 아예 위장 사고까지 일으키기도 한다. 보험사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상습범들은 신호대기 앞에서 급정차 하거나, 비보호 좌회전 차량을 고의로 받아 사고를 일으킨다.

또 2~4명이 한조를 짜고 고의로 추돌 사고를 일으켜 보험금을 타내기도 한다.

서울 도봉구에 사는 택시운전사 고모(50)씨는 지난 몇 년간 사고 합의금으로만 천만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

고씨는 지난해 6월 경추와 요추 염좌 사고로 524만원의 합의금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6차례의 사고로 병원비를 포함해 2,000만원이 넘는 보험금을 타냈다. 여기에 개별적으로 든 개인 보험 보상금까지 합치면 타낸 보험금은 3,000만원이 넘는다.


상습범들 고의사고, 병원 상술도 한 몫

이런 엉터리 보험 환자의 증가에는 보험사 자체의 책임도 크다. 보험사들은 최근 자동차 보험 외에 보장성 개인보험을 마구잡이로 신설해 판매한 것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상해나 자동차 사고로 입원할 경우 하루 5만~10만원 정도의 별도 위로비를 보상해 주는 보장성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늘면서 이를 노린 위장 환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IMF 이후 잠재적 실업자가 증가한 것도 입원 환자를 늘리는 한 이유가 됐다. 현재 사고 입원 환자 중에는 장기 입원자로는 택시 운전사가 가장 많고, 다음이 자영업자, 일용 노동자, 주부, 실업자 등 주로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는 환자의 도덕적 해이 뿐 아니라 병원의 상술도 한 몫을 한다.

대한손해보험협회의 한 관계자는 "병원중에는 통원 치료로도 충분한 환자의 입원을 부추겨 입원시키는 경우가 있다"며 "협회가 1997년부터 3년간 전국 1,309여개 병ㆍ의원을 야간 점검한 결과 교통사고 환자 중 14.5%가 병원에 없는 부재 환자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병원 관계자들은 발끈하고 나선다.

한 병원의 사무장은 "엉터리 환자들은 진짜 위급한 중환자들의 치료 기회를 막을 뿐 아니라 그런 환자들은 입원비 외에는 별다른 치료가 필요 없어 병원측으로 볼 때도 오히려 손해"라며 "이처럼 위장 교통 사고 환자들의 경우 보험사에서 병원비의 일부를 할인해 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환자를 부추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보험회사들이 껄끄럽게 생각하는 또 다른 부류는 조직 폭력배들이다. 조폭들은 갈취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속성 때문에 일단 사고를 당하면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하는 엄청난 액수를 요구한다.

한 보험사 조폭 담당은 "조폭 피해자들은 어깨들을 데려와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내 동생은 얼마 받았으니까, 나도 이만큼 받아야 체면이 선다', '충분한 보상을 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으로 보험사 직원을 위협한다"며 "조폭의 경우 2~3주 진단이 나오면 행동대원은 약 400만~500만원, 중간 보스는 500만~1,000만원까지 터무니 없는 거액을 요구한다"고 전했다.


보험사 손배율 급증,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이런 이유로 보험사들은 조폭 점담팀, 위장사고 전담팀, 과학수사 전담팀 같은 각종 특수 보상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르바이트생을 동원해 엉터리 환자로 보이는 요주의 입원환자를 암행 감시하기도 한다. 암행 감사에서 부재 환자로 찍히면 곧바로 퇴원조치 된다.

이처럼 보상 환자들이 늘면서 보험사의 손해율(지급보험금/수입보험료)이 급증하고 있다. 1997년 64.1%였던 국내 자동차 보험사들의 손해율이 IMF가 한창이던 1998년에는 61.7%로 잠시 감소하더니 1999년 72.9%, 지난해에는 74.8%로 치솟았다.

보험사측은 "보통 인건비 등 회사 운영 경비가 25~30% 소요된다는 봤을 때 현재 국내 보험사들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호소했다.

금융감독원 조사에 따르면 1997년 1,951건에 피해액 253억원(손해ㆍ생명보험 포함)이던 보험 사기가 1998년에는 2,684건(296억원), 1999년에는 3,876건(443억원), 지난해에는 4,726건(314억원) 등으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금감원은 정확한 통계치는 없으나 외국 사례를 적용할 때 연간 보험사기는 총 5,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런 보험사기를 '고요한 대재해(The Quiet Catastrophe)'라고 흔히 말한다.

이 같은 피보험자의 도덕적 해이는 신용사회를 갉아 먹는 암적인 존재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과적으로 보험금 인상 등 애꿎은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믿고 사는 신용 사회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1/05/1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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