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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가족풍속도] 200만 여성가장, 생활전선에…

IMF로 급증, 직장생활과 가정 '2중고'

K(46)씨는 몇 년 전만해도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살림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그저 하는 소리려니 여겼다.

하지만 IMF 환란 와중에 남편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그녀는 전업주부의 행복이 어떤 것인지 절감하게 됐다. 남편은 이것저것 일을 하고 있지만 가계를 꾸릴 정도로 돈을 갖고 오지는 못한다. K씨는 과거와는 비교 자체가 안되는 생활을 하지만 그래도 돈이 부족해 일을 찾았다.


자존심 접고 생활 도맡아

현재 그녀의 직장은 서울 중구 장충동1가에 있는 한정식집 '어머니의 뜰'. 여성단체연합 여성창업위원회가 실직 여성가장들의 창업교육을 위해 운영하는 곳이다. 식당 창업을 위한 일종의 '실전 연습장'이다.

남편은 그녀가 이곳에서 일하는 것에 처음엔 다소 자존심이 상했지만 곧 상황을 받아들였다.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옛날을 생각하면 자존심이 상하지만 가족을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결심으로 마음을 추스리고 있다. 그녀는 몇 년 저축한 뒤 남편과 조그만 가게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K씨는 최소한 그때까지는 자녀들에게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숨길 작정이다.

어머니의 뜰에서 일하는 또다른 K(43)씨는 남편이 IMF 직전 직장을 그만두면서 졸지에 여성가장이 됐다. 남편은 현재 강원도에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수입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서울에 남아있는 고3 아들과 고1 딸의 교육비, 생활비는 모두 K씨가 벌어야 한다. 남편은 자신이 일하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 자녀들도 엄마가 식당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친정부모는 오히려 대견스러워 한다.

K씨는 식당 창업 꿈에 부풀어있다. 비록 이곳에서 월수입은 100만원이 채 안되지만 언젠가는 사장이 된다는 것을 위안삼고 있다. 그녀는 창업을 하더라도 남편과 함께 운영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부부도 서로의 일을 갖는 것이 좋다는 판단에서다.

IMF와 이후의 구조조정 바람에 남성 실업률이 급증하면서 여성가장이 크게 늘어났다. 여성가장은 '본인의 수입을 통해 가계운영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여성'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1년 3월 현재 여성가장은 모두 200만명이 넘는다. 물론 여성가장이 반드시 기혼자인 것은 아니다. 결혼 여부에 관계없이 가계를 책임지고 있으면 여성가장의 범주에 들어간다.

여성가장도 고실업률을 피해갈 수는 없다. 3월 현재 여성가장 실업자는 6만7,000명에 달했다.

여성가장이 책임지는 식구를 3명으로 잡았을 때 20만명 이상이 실업의 피해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결혼관계로 본 실업 여성가장은 미혼 1만6,000명, 유배우 1만8,000명, 사별 2만명, 이혼 1만3,000명이다. 3월 현재 여성가장의 실업률은 3.2%에 이른다.

여성가장의 실업률은 1997년 1.9%에서 98년 5%로 급증했다. 99년 4.3%, 2000년 2.6%으로 낮아지다 올들어 다시 3%대로 높아졌다.


집안살림까지 '2중고'에 시달려

회사생활 8년째인 P(33)씨는 2년전 맞벌이 부부에서 여성가장으로 상황이 악화됐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둔 탓이다. 남편은 1년간 놀다 몇가지 일을 전전한 후 지금은 친구와 동업으로 스키숍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용돈 정도를 버는데 불과해 가계에 거의 보탬이 되지 않는다. 가계운영은 전적으로 P씨의 수입에 의존한다. 청소와 빨래, 설거지 등 집안일도 그녀의 몫이다. 그녀는 맞벌이 하느라 아이를 갖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P씨는 남편이 직장을 그만둔 후 회사생활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출퇴근 시간 엄수는 물론이고 업무처리도 철저해졌다. 자신마저 해고를 당하면 낭패를 볼 판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직장을 다닐 때는 주변에 '회사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지만 이제 그런 말은 쏙 들어갔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사업하는 것은 생각지도 않는다.

"여자라도 고정된 수입이 있어야 장래의 불확실한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P씨 남편은 큰소리를 잘 치는 편이다. "언젠가는 떼돈을 벌 것"이라는 식이다. P씨는 남편이 기죽지 않는 것을 위안으로 삼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더 크다. 저런 식으로 하다 또 언제 사업을 거덜내고 방구석으로 들어 앉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P씨는 남편의 장래가 걱정될수록 직장에 대한 애착을 더 크게 갖는다. 맞벌이 부부로 지내다 남편이 실직한 여성의 직장생활 태도는 일반적으로 P씨와 같은 경향성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가 직장을 갖고 있으면 남편의 책임감이 약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L(35)씨는 충남지역 초등학교 교사다. 6년전 딸이 태어나면서 L씨의 가정은 확 변해버렸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던 남편(39)이 느닷없이 공인회계사 시험을 공부한다며 직장을 뛰쳐 나온 것. 남편이 내리 5번 낙방하면서 L씨와 친정어머니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달았다. L씨는 이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지만 딸 때문에 참고 있다.

요즘은 친정어머니가 이혼시키겠다고 야단이다. 멀쩡한 사람이 시험공부한답시고 빈둥거리며 딸 고생시키는 꼴이 미운 것이다. 사위의 체중이 부는 것도 곱게 보이지 않는다.

"마누라가 번 돈으로 시험공부한다는 사람이 어떻게 살이 찔 수 있느냐"며 화풀이를 한다. 사위의 생활태도도 장모를 화나게 했다. 설거지를 돕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출근하는 사람이 커피에 인삼물까지 끓여 주는데 약이 오른 것이다. 외손녀를 돌봐주던 장모는 최근 사위에게 "밥하고 애도 좀 돌보라"고 종용하고 있다.

가정내 남녀역할이 바뀐 사례도 있다. O(42)씨는 공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퇴출당하자 지난해 말 다른 주부 2명과 함께 결혼전문음식점을 차렸다. O씨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집안의 반대였다.

남편과 시어머니, 자녀들까지 체면과 자존심을 내세우며 말렸다. 하지만 요즘은 반대가 격려로 변했다. 남편은 자녀 뒷바라지는 물론이고 청소와 빨래, 음식장만까지 나서서 도와주고 있다.


바늘구멍 취업, 저임금 등 차별 많아

여성가장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취업은 여전히 바늘구멍에 가깝다. 특히 취업에서 여성이 받고 있는 상대적인 차별은 여성가장에 매우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IMF 이후 '여성의 빈곤화'현상이 고착되고 있는 것은 여성가장의 실업과 취업난에 기인한다.

특히 여성가장의 주력인 중장년층은 저학력과 육아, 가족간병, 건강 등의 압박으로 노동시장 진입이 어렵다. 취업한다 하더라도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으로 인해 빈곤에서 탈출하기가 쉽지 않다.

이 같은 여성의 위치는 1999년 정부 직업훈련의 고용효과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남성실업자의 고용효과가 24.4%인데 비해 여성실업자는 6.7%에 불과했다. 이것은 여성의 고용환경에 맞는 특성화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성계는 여성의 빈곤화를 막기 위해서는 여성친화적인 자활복지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입력시간 2001/05/1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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