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후지사와 9단과 운명의 대결

-오청원(吳淸原)의 치수 고치기(21)

오청원의 전후 첫 10번기의 상대로 나선 하시모토(橋本宇太郞)는 시원시원한 사람이었다. 원래 오청원의 다음 상대는 '천하제일의 명검' 후지사와(藤澤庫一朋齊)였으나 그가 시합에 나서지 않자 대타로 지명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하시모토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1946년 1차 10번기를 치를 때 하시모토는 승단시합에서 전승을 기록하고 있었고 제2기 본인방을 획득, 최고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었다. 하시모토는 오청원과 인연이 깊은 기사인데, 46년 오청원이 세광존에 빠져 있다가 기계(棋界)에 복귀하며 처음 바둑돌을 잡았던 상대이기도 하다.

당시엔 그가 3승 6패 1빅으로 오청원에게 패퇴했는데, 이번에 또 본인방 5기 타이틀을 따내며 다시 한번 기회를 맞은 것이다. 하시모토는 5기에 이어 6기에도 본인방을 지켜내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하시모토와의 10번기 준비는 잘 되고 있었다. 제한시간도 '10시간에 2일'제로 결정돼 속기파인 오청원의 요구대로 끝났다.

제1국이 막을 올린다. 오청원이 1,2국을 연승하고 제3국째는 쌍방이 수를 잘못 보아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였다. 최후에 실수를 했던 오청원의 패배.

초반전은 꽤 빡빡하게 흘러갔다. 제4국은 빅이었다. 2승 1패 1무승부. 그러나 제5국은 오청원의 승리. 3승 1패 1빅이었으나 6국은 또 빅. 7국에서는 하시모토가 백을 들고 불계승을 거두었다. 3승 2패 2빅.

하시모토는 일본기원에 반기를 들고 관서기원을 막 독립시켰던 인물이다. 당시엔 소속도 불분명했고 일본기원 소속기사보다도 관서기원의 기사들이 꿀리지도 않았다. 그런 탓인지 하시모토는 오청원과의 10번기에서 그런대로 잘 버티어 나가고 있었다. 사실 관서기원의 총수로서 10번기에서 참패한다면 막 출범한 관서기원의 체면은 말이 아닌 것이다.

하시모토는 열심히 싸웠다. 10번 승부로서 치수가 바뀌는 일은 없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이 좀 빠진 오청원은 8, 9국을 이겨 마지막 대국에서 이기면 치수를 바꾸게 되어 있으나, 하시모토도 끝끝내 잘 버텨내 백차례에서 4집을 이겨 치수를 지켜냈다. 선상선.

본래가 선상선인 치수에서 5승 3패 2무승부라면 오청원이 잘 싸운 전적이었다. 더욱이 2무승부가 있다는 사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짜릿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애당초 후지사와와의 대국이 예정되었으나 대타로 나선 하시모토로서도 잘 싸운 시리즈였다.

이제 운명의 오청원-후지사와 10번기가 본격적으로 재논의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차피 맞붙어야 할 운명이었다. 후지사와가 기세싸움에서 꿀린 결과라 할까. 일본 최초의 9단으로 일본기원의 희망인 그와 오청원간의 10번기는 여론에 밀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후지사와측의 사정은 복잡하였다. 슈사이(秀哉) 명인의 은퇴 이후 공석이 되어 있는 명인의 자리가 탐이 났을 수도 있다. 본인방의 세습은 중단되었으나 상징적인 의미로 기계의 1인자가 되는 '어른'의 위치인 명인에 오르려는 데에 오청원과의 10번기가 흠집이 될 수 있던 것이다.

오청원과의 10번기는 후지사와의 입장에서 원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론, 요미우

리에서 하시모토와의 2차전의 사고(社告)를 내면서 후지사와를 자극시킨 것이 그와의 치수고치기가 성립한 가장 큰 이유였다.

'바둑팬'의 희망이었던 오청원과 후지사와와의 맞대면은 오청원이 언제든지 받아들일 태세인데도 불구하고 후지사와가 원하지 않기 때문에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승단 후 후지사와 9단은 슬럼프 기미를 보이며 1949년 추계정기대회에서 3승3패, 50년 춘계대회에서 2승4패, 혼인보전에서는 3승3패로 부진해 섣불리 10번기를 가질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뉴스화제]



● 15일 LG배 결승전.이창호 이세돌 격돌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전 제3국이 5월15일 서울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속개

된다. 제1,2국에서 연승을 거둔 이세돌이 마지막 한판에 신경을 집중시킨 가운데, 이창호의 반격도 기대되는 올해 최고의 빅카드이다. 제4,5국이 진행될 경우에는 17일과 19일에 이뤄진다.

'이창호가 내리 3연승을 거둘 확률은 적지 않느냐'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지만 또 '이창호가 내리 3연패를 당한다고 볼 수도 없지 않느냐'는 것도 무시 못할 시각이다. 제3국은 이창호가 흑을 들게 되므로 아무래도 유리한 바둑이라 제4국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막판에 몰린 초조감에 제3국도 안심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세돌이 1,2국 때처럼 평상심을 잃지 않고 대국에 임하느냐가 초점이 될 터이다. 대다수의 전문기사는 이세돌의 우세를 점치고 있으나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선 이창호가 3연승을 올린다는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할 상황이다.

관심이 쏠린 이 판은 실시간으로 생중계된다. 인터넷 주소는 www.baduk.co.kr이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1/05/16 15:1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