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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58)] 지에이타이(自衛隊)(1)

[재미있는 일본(58)] 지에이타이(自衛隊)(1)

일본의 헌법 논의는 늘 헌법 제9조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헌법 제2장 '전쟁 방기'에 담긴 유일한 조항인 제9조 '전쟁의 방기, 군비 및 교전권의 부인'은 '①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방기한다' '②전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육해공군 기타 전력은 보지(保持)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4월말 자민당 총재 경선 당시 이 9조의 개정, 또는 유권해석 변경에 강한 의욕을 표시했지만 총리 취임 이후에는 현실적 어려움을 인정, 이를 장기과제로 돌리고 총리 직선제 개헌만을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사민당과 공산당, 진보적 지식인들은 총리 직선제도 결국 '헌법은 손댈 수 없다'는 50여년간 지속된 금기를 깨뜨리는 돌파구로 삼기 위한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우지 않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를 포함한 개헌론자들이 가장 흔히 들고 있는 근거는 헌법 해석만으로는 한계에 이른 '지에이타이'(自衛隊)의 존재이다.

2차 대전 패전과 함께 이뤄진 무장해제로 일본에서 군대는 사라졌다. 그러나 1950년 발발한 한국 전쟁에 주일 미군이 참가하면서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해 8월에 '경찰경비대'와 '해상경비대'가 각각 창설됐다.

치안 강화를 위한 경찰력 보완이 명목이었고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당시 총리는 '군대 부활' 의혹을 피하기 위해 주요 간부를 경찰 출신으로 충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경찰의 범위를 넘어서는 군사 조직이어서 위헌 논란을 불렀다.

1952년 보안청 설치와 함께 경찰경비대가 '보안대'로, 해상경비대가 '경비대'로 전환, 경찰 범위를 넘는 '평화와 질서 유지'를 기본 임무로 하고 구 일본군 출신들이 대거 등용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당시 요시다 총리는 보안대를 '신국군의 토대'라고 밝혀 실질적으로 군대 성격임을 숨기지 않았다.

다만 위헌 논란에 대해서는 '전력 없는 군대론', 즉 헌법 9조 2항의 '전력'은 근대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군사조직을 의미하지만 보안대는 약체여서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으로 버텼다.

군대색을 어떻게든 희석하기 위해 구 일본군의 군대 용어 사용을 피하고 장교를 '간부', 보병을 '보통과', 공병을 '시설과'라고 부르는 등 독자적인 명칭을 만들어 냈다.

1954년 7월 자위대법 제정과 함께 출범한 육상 해상 항공자위대는 누가 보아도 명백한 군대였지만 일본 정부는 이른바 '자위대 합헌론'을 내세워 위헌 논란에 대응했다.

헌법 9조 2항이 금지한 '전력'은 침략 전쟁을 행하는 전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위 목적에 한정한 '실력' 보유와 행사는 독립국의 당연한 권리이자 헌법도 이를 부정하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다. 자위대의 임무는 오로지 방위 목적에 한할 뿐 타국에 대한 무력 행사가 아니라는 '전수(專守) 방위론'도 같은 내용이다.

헌법 해석만으로 자위대의 위헌 논란에 저항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총리 내각(1954년12월~56년 12월) 이래 역대 일본 정부는 자위대의 현실적 존재를 인정하기 위한 개헌을 수시로 들고 나왔으나 여론의 반대와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국회내 3분의 2 이상의 의석 확보 실패로 불발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헌법 해석에 더욱 집착했고 상황 변화에 따라 적극적이고 자유로운 해석으로 달렸다. 자위대의 실력 행사 범위, 즉 자위력의 범위에 대한 해석이 대표적인 예이다. 애초에 소극적 해석은 영토와 영공, 영해로 한정했다.

그러나 곧 침략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면 공해상의 전투도 가능하다든가 명백히 일본을 공격하려는 경우라면 타국 영내의 침략군 발진 기지를 공격할 수 있다는 데까지 확대됐다. 북한이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려 할 경우 미사일 기지를 선제 공격할 수 있다는 방위청의 최근 주장도 여기에 근거한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위대의 위헌론은 사실상 사라졌다. 사민당은 물론 공산당까지도 자위대의 현실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더욱이 1995년 고베(神戶) 대지진 당시의 자위대의 구호 활동이나 옴진리교에 의해 자행된 도쿄(東京)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사건 당시 자위대 화학부대의 출동 등은 자위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을 높이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무력 행사의 범위를 최소한으로 못박는 것을 조건으로 헌법에 '자위군' 등으로 자위대의 존재를 못박자는 주장이 이미 금기가 아니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입력시간 2001/05/1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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