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 新열강전] "위험한 발상" 제동, 대응카드 없어 속앓이

러시아- 美 안보독주에 불안감, 러·중·인도 3각 협력 체제 구축 시도

부시 미 행정부의 미사일방어(MD)체제 밀어붙이기로 러시아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느낌이다.

미국의 안보독주 체제가 MD로 굳어지면 21세기 내내 끌려 다녀야 한다는 불안감이 러시아를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협정(ABM) 체제 고수, 대중 관계 개선, EU와의 안보협력 등 다양한 길을 모색하도록 만들고 있다.

한반도 정책에서도 한국 편향 일변도에서 벗어나 양손에 북한과 한국을 올려 놓고 국익을 기준으로 견줘보거나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전환중이다.

러시아는 냉전종식후 세계질서가 달라졌으므로 안보체제도 달라져야 한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 상대의 심장을 향해 핵미사일을 겨냥하는, 핵 억지력이 작용하던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는 것.

그러나 미국의 일방적인 새로운 체제 구축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태도다.


경제에 발목, 논란 부추기며 시간벌기

그렇다고 냉전시절 처럼 미국에 맞서 독자적인 안보체제 구축이나 군비 확장에 나설 수도 없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경제회복에 총력을 기울여 쇠잔해가는 강대국의 몸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 더욱 급하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강대국 러시아' 부활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권력체제를 재편하면서 대중 인기 정치에 나서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국가회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느 정도 경제회생에 성공하면 미국과의 군비경쟁이든, 국력경쟁이든, 우주경쟁이든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의 MD에 ABM 유지를 내세우고, 이라크와 북한 같은 불량국가가 미국과 국제사회를 향해 미사일을 쏘아댈 것이란 미국의 전제를 과민 반응이라고 몰아세우고,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는데 필요한 기술수준이 아직 축적되지 못해 자칫 엉뚱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MD체제 정당성에 대한 논란을 계속 부추겨 시간을 끌자는 것이다.

러시아는 최근 MD 체제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러 모스크바에 온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일행에게 기존의 반대입장을 전달했다.

알렉산드르 야코벤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러시아는 울포위츠 부장관에게 전략적인 안정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하고 MD에 대한 '대응 이념' 문제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MD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러시아안을 내놓았다는 뜻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밝혀지겠지만 MD의 전제인 이라크와 북한 불량국가들에 대한 독자적인 대응 조치나 핵무기감축에 대한 구체안일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이를 바탕으로 이고르 이바노프 외무장관이 미국에서 파월 미 국무장관과 만났고, 6월과 7월에는 미국과 정상회담을 갖고 논의를 계속할 방침이다.

러시아는 전술적인 차원에서 미국과 협상을 계속하되, 미사일 개발이란 실전에서는 미국과 기술협력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세계전략과 미사일 개발을 다른 차원에서 다룰 수밖에 없는 러시아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른 한편으론 미국을 봉쇄하는 대응체제를 마련해가는 중이다. 러시아는 조만간 중국과 과거 냉전시절의 동맹관계를 연상시키는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한다.

이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시절 유행처럼 나돌았던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국가간 협력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긴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거대국가로서 사소한 일에 서로 감정을 상하지 말고 보다 큰 목적을 갖고 협력하자는 뜻이다. 바로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유럽국가와 안보협력 강화

여기에다 남아시아의 대국인 인도를 끌어들여 아시아 방위에 러ㆍ중ㆍ인도 라인을 그으려고 시도한다.

러시아는 또 MD체제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유럽대륙과도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와 유럽연합(EU)는 5월 17일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 경제는 물론 정치 안보 분야 까지 '밀월'수준의 의견 접근을 보였다.

푸틴 대통령과 EU 의장국인 스웨덴의 페르손 총리 등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중요성과 함께 안보 협력 강화를 강조한 공동 선언문을 채택했다. 러시아와 EU간 교역에 달러화 대신 유로화로 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결국 러시아는 동쪽으로는 중국을, 남쪽으로는 인도를, 서쪽으로는 EU를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미국을 대응하는 것인데, 이는 미국이 우주방위구상(SDI)를 처음 내놓았던 80년대 중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대통령이 제창했던 '유럽공동의 집' 구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불렀던 레이건 대통령식 SDI에 러시아에서 '유럽공동의 집' 구상이 나왔듯이, 부시 대통령의 MD에는 러ㆍ중ㆍ인도의 3각협력 구상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 '강한 미국'이 불러온 '부메랑 효과'라 할 수 있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5/22 20:5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