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 新열강전] "남북관계에 찬물 끼얹을라" 경계심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추진 문제와 북ㆍ미 미사일 협상은 병행 추진이 가능하다."

정부가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 일행의 방한 하루 전(5월8일)에 긴급히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결정한 4가지의 대미(對美) 권고안중 하나다.

임동원 통일원 장관은 'MD 전령사'인 아미티지 부장관이 돌아간 뒤 14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에 참석, 아미티지 부장관의 방한 결과를 보고하면서 아미티지 부장관과 면담할 때 'MD와 북ㆍ미 협상의 병행론'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MD와 북ㆍ미 협상을 병행하되, 만일 북ㆍ미 협상이 실패하면 MD 추진의 논리적 근거를 삼을 수 있고, 협상이 성공한다면 미국이 동북아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권고 내용의 요지다.

이에 대해 아미티지 부장관은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임 장관은 전했다.


북ㆍ중ㆍ러 '반 MD전선' 구축 우려

10일 오전 아미티지 부장관 일행과 외교부 고위 관계자들이 함께 한 원탁회의(round table)에서도 같은 입장이 전달됐다.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의 비확산 정책에 북ㆍ미 미사일 협상 등 양자적 차원의 접근도 포함되는지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미국의 MD 계획과 북ㆍ미 관계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미국이 MD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두 사안을 분리해 대응해줄 것을 간접적으로 촉구한 셈이다.

이에 대해 아미티지 부장관은 "미국이 북한만을 대상으로 MD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며 "이 점을 분명히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북한과 (미사일) 협상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의 이 같은 대미 권고에는 미국의 MD 추진이 북ㆍ미 관계 및 남북 관계에 미칠 수 있는 우려가 함축돼 있다.

미국의 MD 추진 명분이 북한ㆍ이라크 등 이른바 '깡패국가'로부터의 계획적 또는 우발적 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에 있는 만큼 MD 추진은 북한의 반발을 사게 되고 북ㆍ미 갈등은 남북 관계의 굴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러시아가 북한과 연대, '반MD 전선'을 구축할 경우 미ㆍ일 축과의 대립이 불가피해 한반도의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MD 추진에 따른 전략적 이해가 가장 첨예하게 부딪치는 곳이 동북아"라며 "이러한 갈등이 동북아에 신 냉전구도를 가져와 우리의 장기적 안보 기조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MD계획이 깡패국가로부터의 공격에 본토를 방어하는 '제한적 NMD' 개념에 국한됐던 클린턴 행정부 때만해도 정부의 고민은 이렇게 깊지 않았다. 미국의 NMD 참여 요청이 있더라도 거부할 명분이 있었다.

정부는 해외주둔 미군 방위를 명분으로 하는 전역미사일방어(TMD) 계획에 대해서도 우리의 안보 위협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보다는 휴전선 지역에 전진 배치된 방사포 등 재래식 무기에 있다는 점을 들어 "현재로선 참여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이 제한적 NMD 개념을 폐기하고 미사일 방어 대상을 동맹국과 우방국까지 확대한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우리의 선택은 더욱 어렵게 됐다. 미국의 '동맹국 보호'주장은 '무언(無言)의'참여 요청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같은 요청이 현실화하지 않고 있을 뿐인 것이다.

정부는 일단 미국의 MD 추진에 대해 찬반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모호성의 전략'을 유지한다는 생각이다.


"관련국과 충분히 협의해야" 모호성 전략

정부 관계자는 부시 대통령의 MD 구상 발표후 "우리 입장은 2월 이정빈 당시 외교부 장관과 3월 김대중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언급한 내용에서 한발짝도 진전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세계 안보 환경의 변화에 따라 MD를 추진하려는 미국의 입장을 이해하며 MD 추진 과정에서 동맹국 및 관련국과의 충분한 협의를 거치기를 바란다는 게 현 단계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의 마지노선이라는 것이다.

특히 MD의 구체적인 청사진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입장 표명은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그릴 그림이 정물화가 될 지, 인물화가 될 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미국도 MD에 대한 세부 실천 계획을 내놓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참여를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미국의 MD 추진을 위한 기술력 확보, 미국내의 여론 동향, 세계역학 관계 등을 지켜보면서 MD 추진이 남북 관계 및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김승일 정치부 차장

입력시간 2001/05/22 21:00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