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분리… 현대건설의 2차 핵분열

투신·반도체도 결별, 재계 10위권 중견기업으로 위상변화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신화'를 몰고 다녔던 현대그룹의 위상이 계속 위축되고 있다.

1998년 무려 83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의 왕' 자리를 누렸던 현대그룹은 지난해 정몽구(MK) 현대자동차 회장과 몽헌(MH) 현대아산이사회 회장간에 벌어진 '왕자의 난'을 계기로 몽구 회장의 자동차 10개사가 그룹에서 떨어져 나갔다. 정상적인(?) 1차 분리였다.

그러나 현대그룹의 모기업이나 다름없는 현대건설이 5월18일 주주총회를 통해 채권단의 출자전환을 확정하면서 현대그룹은 바야흐로 2차 핵분열 단계에 들어갔다.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 현대투신 등 3대 부실기업 중 현대건설이 완전히 채권단의 손으로 넘어가 현대그룹과 인연을 끊었고, 뒤이어 현대투신과 하이닉스반도체 등도 곧 처리 방향이 결정될 전망이다.

두 기업은 그 결정에 따라 현대그룹에서 떨어져나가게 된다. 현대그룹의 2차 핵분열이 시작되는 셈이다.


그룹 대표할 핵심기업 사라져

당초 현대그룹은 5개의 소그룹으로 분리하는 시한을 2003년 말로 잡았다. 그러나 의외로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심화하면서 그 시기가 2년이나 앞당겨졌다. 자동차 그룹이 떨어져 나간 현재 현대그룹은 8개 상장사 (현대건설 제외)와 18개 비상장사를 합쳐 총 26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현대투신과 하이닉스반도체 등 부실 계열사들이 상반기 중 외자유치 등을 통해 분리되고, 우량계열사인 현대중공업마저 연말에 분가하면 정몽헌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현대상사, 현대엘리베이터 등 3개의 상장사 (고려산업개발은 부도상태)와 현대택배 등 10여개의 비상장사를 거느린 재계 10위권 바깥의 '단출한' 기업군으로 바뀐다.

그나마 주력인 현대상선은 해운업체 특성상 높은 부채비율과 환차손, 대북사업 손실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새 지주회사로 등장한 현대엘리베이터는 자본금 200억원 규모의 소형 기업에 불과하다. 양으로 보나 질적 수준으로 보나 현대그룹을 대표할 만한 핵심 기업이 사라진 것이다.

반도체 가격의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하이닉스반도체는 5월 22일부터 투자유치설명회(해외로드 쇼)에 나섰다. 아시아와 구미 지역에서 로드쇼를 통해 해외주식예탁증서(GDR) 10억달러, 고위험고수익채권(하이일드본드) 3억7,000만 달러를 발행할 계획이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외자유치와 동시에 계열분리가 예정돼 있다.

'뜨거운 감자'인 현대투신은 현재 미국계 투자회사인 AIG컨소시엄과 정부가 추가 잠재부실규모를 확정하는 대로 출자규모, 분담비율, 경영진 문제 등을 논의해 상반기중 매각이 이루어진다. AIG측에서는 현대증권의 경영권도 함께 넘겨주기를 원하고 있으나 현대건설을 포기한 정몽헌 회장이 증권까지 내줄 수는 없다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건설, 험난 할 정상화의 길

한국 경제의 '태풍의 눈'이었던 현대건설은 18일 출자전환이 결정되면서 1조4,000억원의 출자전환과 1조5,000억원의 증자를 6월말까지 끝내고 '클린 컴퍼니'로 거듭나게 된다. 정몽헌 회장의 지분이 완전 감자되면서 '현대호'에서 '국민기업'으로 전환된다.

현대건설은 종로구 계동 사옥 지하2층 강당에서 열린 주총에서 소액주주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주주 완전감자와 소액주주 5.99대 1 부분 감자안을 상정, 원안대로 의결했다.

주총에서는 또 4월말 사퇴한 김윤규 전사장 등 기존 이사진을 모두 퇴진시키고 심현영(沈鉉榮) 전 현대엔지니어링플라스틱 사장 등 7명의 사내외 이사를 새로 선임했다.

새 이사진은 심 사장을 포함, 조충홍(趙忠弘ㆍ건축사업본부장) 부사장과 강구현(姜九炫) 상무 등 사내이사 3명과 김정호(金政鎬) 국토연구원 부원장, 이영우(李英雨) 수출보험공사 사장, 어충조(漁忠祚) 삼일인포마인 상임고문, 김대영(金大泳) 현대건설 경영혁신위원회 위원장 등 4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됐다.

임시주총에서는 이와함께 수권자본금을 늘리고 전환사채의 액면미달 발행에 대한 주총 특별결의 근거 조항을 삽입하기 위한 정관변경안도 통과, 채권단의 기존 대출금 출자전환 및 신규 출자의 정지작업을 매듭지었다.

임시 주총은 예상대로 소액주주들의 5.99대1 감자안에 대한 거센 반발로 한때 정회 소동을 빚기도 했으나 첫번째 안건인 정관변경안에 대한 표결결과 출석주식수의 95% 이상 찬성으로 통과되면서 나머지 안건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가장 논란이 된 감자안은 표결에 부쳐지지 않고 주주들의 동의와 제청으로 통과됐다.

그러나 출자전환과 유상증자에 의한 현대건설의 정상화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채권단은 이미 출자비율을 놓고 제1금융권과 투산사 등 제2금융권이 갈등을 빚는 등 쉽게 자금을 내놓을 것 같지 않다. 채권단은 투신권이 출자전환과 유상증자에 참여해야 한다는 원칙을 거듭 밝히고 있으나 투신권은 출자전환 대상 회사채 7,500억원이 상품계정에 속해 있다며 이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소액주주들의 반발도 여전하다. 주총 소집공고이후 채권단의 감자추진을 무산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반발했던 소액주주투쟁위원회는 회사가 직원들을 동원, 총회장을 검거해 회의 분위기를 회사측에 유리하게 이끌었다며 투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소액주주투쟁위원회 강창규 위원장은 "표결시 총회꾼들이 투쟁위 관계자들의 투표함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 투표를 하지 못했다"며 "이날 임시주총 결의내용에 대한 무효가처분신청을 내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일부 소액주주들은 5.99대1 감자안 확정에 반발, 곧 정부와 외환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기로 했다.


심현영 사장 '청사진'에 큰 기대

그나마 다행한 것은 주총에서 대표이사로 선출된 심 사장에 대한 현대건설 안팎의 반응은 긍정적이라는 점이다.

심 사장이 현대그룹에서 성장해온 경영자일 뿐만 아니라 건설업계에도 오래 몸담아왔던 터라 전문성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대신경제연구원 한태욱 연구위원은 "심 사장이 현대문화를 잘 아는 현대건설 출신이고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없이 채권단이 대규모 지원을 한다는 점에서 동아건설에 비해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심 사장은 중앙대 상대를 졸업하고 1963년 현대건설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현대중공업 부사장, 한라건설 대표이사, 현대산업개발 사장,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장을 지냈으며 1996년 6월부터 3개월간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건설통이다.

김혁 경제부기자

입력시간 2001/05/22 21:33


김혁 경제부 hyuk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