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뒤덮은 보수화 '강풍'

베를루스코니의 우파연합 총선서 압승

좌파와 우파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이탈리아 총선에서 중도우파연합을 이끌었던 언론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압승, 유럽에 보수화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5월 13일 실시된 이번 총선은 막판 접전을 벌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베를루스코니의 '자유의집 동맹'이 상ㆍ하원에서 무난히 과반수를 차지하면서 베를루스코니가 7년만에 다시 총리직에 오르게 됐다. '자유의집 동맹'은 상원에서 총 315석중 177석, 하원에서 총 630석중 368석을 차지했다.

베를루스코니의 이번 승리는 1990년 중반 영국 프랑스 독일로 이어지는 중도좌파의 아성으로 여겨졌던 이탈리아에서 극우파를 포함한 우파연합의 압승이면서 재벌의 집권이라는 점에서 국내외에서 큰 관심과 우려를 낳고 있다.


'강한 이탈리아 건설' 선거잔략 주효

사실 이탈리아 국내상황으로 보아 이러한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돼 왔다. 중도좌파가 집권한 5년 동안 크게 실망한 국민은 새로운 변혁을 가져올 인물로 진작부터 베를루스코니 외에는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연평균 성장률이 유로권 평균을 훨씬 밑도는 1.7%에 불과한 데다 유럽의 만년 이류국에 머물고 있는 국가 위상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집권세력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난 상황에서 '강한 이탈리아 건설'을 내세운 베를루스코니의 선거전략이 주효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총선 승리직후 밝힌 국정운영 지표는 한마디로 '이탈리아 주식회사'를 설립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주식회사를 강조함으로써 보수우파의 이념을 실현하겠다는 의미이다. 경제정책에서 상속세를 폐지하고 법인세와 소득세를 현재의 43%에서 33%로 낮추는가 하면 불법이민을 단속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외교적으로는 '리틀 부시'라고 할 만큼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의 정책들을 지지, 추종하고 있다.

유럽연합(EU)국가들이 앞다퉈 비난했던 미국의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교토의정서 탈퇴를 옹호하는가 하면 총선직전 외교부가 반대했던 미국 미사일방어(MD)체제마저 적극 찬성하고 나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EU 통합에 대해서도 "통합원칙에는 찬성하지만 슈뢰더 독일 총리가 제안한 유럽정부 구성에는 반대한다"고 말해 중도좌파정권 주도로 비교적 원만했던 EU의 정책결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때문에 베를루스코니의 극우정강은 국내는 물론 주변국의 반발까지 초래하고 있다. 조각과정에서 장관으로 낙점됐던 루카 디 몬테제몰로 페라리 회장이 고사했고 연정에 참여했다 참패한 극우파 민족동맹(AN)의 지안프란코 피니 총재가 부총리를 요구하는등 내각 구성도 난항을 겪고 있다.

또 중도우파 소속인 신사회당은 베를루스코니의 극우 '대처리즘'에 대해 지지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고, 카를로 아젤리오 참피 대통령마저 극우파들의 주장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주변국 극우정권에 우려의 시선

유럽 각국에서도 베를루스코니의 집권과 극우파 정치인들의 연정 참여에 대해 중도우파가 집권하는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을 제외하면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견제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물론 EU 각국은 1999년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우파연합이 승리했을 때 보여주었던 거센 반발이나 '왕따 정책'과는 달리 노골적인 논평을 삼가고 있다, 하지만 새 정부가 실제로 인종주의적, 파시스트적 정책을 펼 때는 구체적인 대응책과 제재를 가할 태세이다.

총선결과 발표 직후 나온 영국 언론의 반응은 주변국들의 마음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사설을 통해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를 이끌기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라며 "우리는 이탈리아 국민이 실수를 했으며 그로 인해 예상보다 빨리 대가를 치르게 될 것으로 믿는다"며 불쾌감과 함께 불안감을 숨기지 않았다.

보수적 색채와 함께 그의 단점으로 지적받고 있는 재벌출신이란 신분이 편향적인 정책을 펴게 하지 않을까 우려한 것이다. 3개 민영 TV방송을 소유하고 120억 달러의 재산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그가 언론을 독점하고 이를 기반으로 더욱 더 '가진 자'위주의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부총재 발탁이 유력시되는 피니 총재의 발언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그는 최근 "국영 TV네트워크 '라이(Rai)'의 선거보도가 편파적이고 선정적이었다"면서 "상하원 지도부 구성이 완료되는 내달 중순께 경영진을 대폭 교체할 것"이라고 공언, 언론 장악의 의도를 드러냈다.

또 과거의 부패혐의로 그가 재판중이라는 사실과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 등은 집권과정에서 그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특히 1994년 베를루스코니의 총리재임 시절 개인적 사업 이익을 추구했다는 비난과 회계 부정 및 수뢰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그로서는 야당의 표적이 될 수 있다.

그가 사업확장을 위한 야심으로 터무니없는 이익싸움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도 관건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그가 손을 대고 있는 금융과 이동통신, 부동산, 출판 등 주요 분야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질 경우 시련이 예상된다.

전후 59번째 내각이 될 만큼 수시로 정부가 바뀌는 정치불안, 연정내에 동거하는 다양한 세력들의 움직임 등 돌발변수들을 안고 있는 베를루스코니의 새 내각이 얼마나 국민의 변화 열망을 충족시켜주면서 대개혁을 완수해낼 지에 대해 걱정과 기대가 쏠리고 있다

최진환 국제부기자

입력시간 2001/05/24 16:59


최진환 국제부 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