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이 사형연기, 무엇이 문제인가?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테러범, 서류미비로 한달 생명 연장

전쟁 범죄자들은 통상 자신의 행동을 적과 비교해 도덕적 정당성을 주장한다. (1995년 168명의 희생자를 낸 미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 테러범인) 티모시 맥베이도 "더 큰 공익을 위한 행동"이라면서 "연방 정부의 오만함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는 연방 청사를 날려 버릴 수 밖에 없었다"고 강변했다.

또 죄없는 사람이 죽었다면 그것은 전쟁 상황에서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이고 19명의 어린이 희생자에 대해서는 '부수적인 피해'라고 둘러댔다. 자신은 처형되더라도 결국은 168대 1로 승리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연방 정부는 무고한 인명을 앗아간 그의 죄를 물어 사형을 집행할 준비를 사실상 끝냈다. 연방 정부에 대한 범죄로 형이 확정된 피고에 대한 사형 집행은 1963년 이래 맥베이가 처음이다.

특히 그의 사형은 65년 만에 공개 집행하기로 결정하는 바람에 사형 집행장인 인디애나주 테러호트 연방교도소 주변 호텔의 객실은 일찌감치 동이 났고 보도진만 1,600여명이 몰렸다.


작동 멈춘 '죽음의 시계'

이런 상황에서 연방수사국(FBI)측이 맥베이측 변호인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3,135건의 증거 서류들을 뒤늦게 발견, 존 애슈크로프트 법무장관은 즉각 '죽음의 시계' 작동을 멈췄다. 문제는 맥베이의 유죄에 대한 의문이 아니다.

맥베이도 자신의 소행임을 인정했다.그런데 애슈크로프트 장관은 풀죽은 얼굴로 "16일로 예정된 맥베이에 대한 사형집행을 한달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FBI국장에게는 맥베이 사건외에도 우리에게 아주 큰 피해를 안겨주는,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다고 FBI측을 변호한 뒤 "맥베이 사건에 어떤 의문이 남는다면 그것은 정의에 대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사회 통합에도 회의감을 안겨줄 것"이라고 연기 이유를 밝혔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도 미국은 모든 사람에게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이를 완벽하게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나라라고 강조한 뒤 그같은 차원에서 "맥베이는 미국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연방 건물 전체를 날려버리지 않음으로써 희생자수를 줄였다고 강변하는 등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맥베이의 사형집행 연기에 대해 유가족들은 실망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

27세의 딸 카렌을 잃은 폴 하월은 "맥베이가 그 자리에 나타나 '이봐, 내가 말했잖아. 연방 정부는 아직도 실수를 하고 있다'고 말할 것 같다"면서 "이 결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FBI측의 명예도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맥베이가 이 결정으로 연방 정부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순교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연방 정부가 저지른 실수는 또 다른 맥베이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보다는 스스로에게 더 큰 교훈을 남겼다. 프랭크 키팅 오클라호마 주지사는 "분명히 FBI가 뿌리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을 최근 연방정부가 저지른 실수중 가장 큰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2주일전에는 보스턴 FBI지부에서 온 요원들이 '정부 개혁에 관한 하원 위원회'에서 무죄로 밝혀진 조셉 살바티를 살인혐의로 30년간이나 감옥에 가둬둔 데 대해 설명하느라 허둥댔다.

그 즈음 알라배마주에서는 1968년 버밍햄 흑인교회에 폭탄을 던진 크란스맨의 유죄를 입증했는데, FBI측이 그의 유죄를 입증하는 비밀 테이프를 진작에 넘겨주었다면 수년 전에 끝날 사건이었다.

그들은 또 25년간 러시아를 위해 스파이짓을 한 이중스파이 로버트 핸슨을 잡을 때까지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스파이에게 속절없이 당했다.

지난달에는 불공정한 진급에 불만을 품은 흑인 요원들을 무마하느라 급급했고, 지난해에는 중국인 과학자 리원호가 스파이 혐의로 FBI에게 체포됐다가 풀려났다. "그의 체포는 미국과 모든 시민에게 황당함을 안겨주었다"는 연방 판사의 판결과 함께.


FBI 지도력에 구멍

맥베이 사건은 한때 FBI 전 요원의 절반이 투입된 대형사건이다. 비용도 8,200만달러나 들였다.

이런 대형 사건의 서류 미비에 대해 모든 책임을 담당 요원들에게 돌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안의 심각성은 그 이상이다.

FBI의 첫 번째 임무는 역시 은행강도 납치범 러시아 스파이 등을 잡는 것이다. 또 마약전쟁, 로켓밀매, 이슬람 테러도 있다. FBI가 중국과 러시아 스파이 사건에 매달리다 보면 다른 사건이 터지고, 한 건을 해결했다고 숨을 돌릴 즈음이면 또 다른 사건이 발목을 잡는다.

국경이 개방되고 시장과 온라인 네트워크가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그들의 일은 자꾸만 힘들어진다.

그래도 우리는 '질서와 자유'의 경계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무장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기를 원하지도 않지만, FBI가 탱크를 동원해 (사이비 종교집단인) 와코 캠프를 공격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중국이 미국의 핵 비밀을 훔치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인종을 차별하는 '마녀사냥'도 원치 않는다. 우리는 범죄조직이 컴퓨터 파일을 지우는 것도 원치 않지만 FBI가 사이버 범죄 수사를 위해 개인의 e메일을 도청하면 안된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필연적으로 FBI의 지도력으로 이어지는데, 지금까지 FBI 국장은 대통령의 취향과 언론의 검증에 의해 임명됐다. 그래서 2만8,000명의 거대한 수사조직을 움직이는 FBI 수장에 FBI 조직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앉곤 했다.

최근 세 사람의 국장은 전부 연방판사 출신이다. 법 집행과 시민의 권리 사이에 균형을 잡는데는 강점이 있지만 오랫동안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의 비서들에게 기대 일을 해왔을 뿐 거대한 권력을 가진 조직을 스스로 운영한 경험을 갖고 있지 않다.

서류 분실문제가 불거졌을 때 부시 대통령은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보좌관에게 물었다.

그리고 "왜 이제야 발견했느냐"고 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지난해 12월 FBI 본부는 오클라호마 폭파사건 관련 서류를 모두 영구보존 자료로 보관하도록 명령했다. 그것은 이미 다섯번째 명령이었다.

그때서야 현장에서 흘러다니던 자료들이 나타났고, 그 자료들은 주요 서류철에 들어있지 않았다는 점을 관리들이 발견했다. 맥베이 변호사들이 검토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

요원들은 이틀에 걸쳐 그 서류들을 분석한 뒤 프리 FBI 국장에게 보고했다. 프리 국장의 방을 떠날 때 그들의 표정은 완전히 일그러졌고, 서둘러 대통령과 애슈크로프트 장관에게 보고했다.

부시 대통령은 "애슈크로프트 장관이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확신한다"고 전제, "우리는 맥베이 사건을 헌법이 보장한 모든 규정에 따라 완벽하게 처리해야 할 엄정한 책무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많은 비용 요구

이 문제와 관련, 요원들은 낡아빠진 FBI 컴퓨터 데이터 베이스 시스템을 탓한다. "우리는 이 시스템을 통해 우리가 뭘 알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한 전직 요원은 투덜댄다.

비슷한 일이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선거자금 스캔들 조사에서도 일어났다고 한다. 이 문제는 오랫동안 FBI가 안고 온 것이다. 요원들은 정보원을 두고 필요한 정보를 잘 캐고 다니지만 정보를 정리하고 분류하는데 약하다고 한탄한다.

56개 지부가운데 46개 지부에서 현장조사에 나선 요원들은 어떤 경우에는 보고 의무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않았다.

뒤늦게 나타난 서류가 맥베이 사건의 결과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 그러나 그 혼란은 사회적으로 많은 비용을 요구한다. 한 법무부 관리는 "충격적이다. 우리는 이 사건에 최고의 인재를 배치해 공정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해 왔다.한 점의 실수도 없는 환경조성이 가장 중요했다"고 안타까워한다.

이 문제는 맥베이의 사형집행 논쟁을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갈 가능성도 있다. 맥베이 사형과 관련, 미 국민의 75%가 사형집행에 찬성했다. 또 대다수가 맥베이는 교황의 요청에 따라 자비를 베풀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갑자기 꼬였다. 사형 반대론자들은 당국이 일부러 서류를 빼돌렸다고 주장한다.

맥베이측 변호사는 "지난 3일을 보면 정부가 멕베이 사건에서 사형제를 공정하게 추진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게 분명해졌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5/2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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