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사람들](1) '뇌박사' 서유헌 서울대 의대교수(上)

사람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생명에 대한 신비가 진작에 밝혀졌다면 그는 할 일이 없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의 지능, 사고, 행동을 조종하는 뇌의 비밀을 창문을 열고 들어다 보듯 알 수 있었다면 그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철학적 차원을 넘어 인체속에서, 특히 인간을 지배하는 뇌의 기능과 역할속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는 '뇌박사' 서유헌(53) 서울대 의대 교수. 그는 뇌 연구를 통해 마지막 남은 생명의 신비를 벗기는데 일생을 걸었다.

그리고 과학기술부 치매정복 창의 연구단 단장, 한국 뇌신경 과학회 이사장, 서울대 신경과학연구소 소장, 국립보건원 뇌의약학 연구센터 소장 등 뇌연구에 관한 한 어떤 직책도, 어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뇌지식을 우리의 교육정책에 응용하거나 대중에게 알리는데도 적극적이다.


뇌에 담긴 생명의 비밀 찾기 30년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사람의 몸을 해부하면서 어릴 때부터 품어온 '과연 사람이란 무엇이냐'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했습니다. 그 해답은 바로 뇌에 있지요. 뇌를 알면 생명의 비밀이 보입니다.

그래서 '아임 어 브레인'(I am a brain)이라는 말까지 있지요. 만약 브레인 파이어니어(brain pioneer)로 뛰어들지 않았다면 아마 우주의 생성원리나 그 신비를 파헤치는 학자가 되었을 겁니다."

서 교수는 역사에 관심이 많다. 어린 시절 시골마당에서 본 수많은 별들은 '과연 어디서 생겼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모든 생명체, 또는 우주의 기원과 생성과정을 연구하는 그런 과학역사다. 지금도 외국에 나가면 바쁜 시간을 쪼개 생명체의 진화 역사를 보여주는 화석 박물관을 쫓아다닌다고 한다.

"과정이야 어쨌든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은 엄밀히 따지면 뇌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뇌의 크기나 발달 정도, 기능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왜 달라졌느나는 바로 역사인데, 그 답을 얻는 게 뇌 연구의 핵심입니다."

그는 이 답을 얻는데 이미 30여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이제는 세계가 인정하는 뇌박사이지만 여전히 미진하다고 느낀다. 그나마 치매에 대한 숱한 연구성과에서 위안을 찾는다.

"치매는 뇌세포가 망가져서 나타나는 질병인데, 암이나 심장병 같은 다른 불치병과는 달리 자신의 아이덴터티(자아)가 점점 사라지고, 가정을 황폐화하게 만들지요. 몇 십년 뒤에는 치매가 지금보다 4-5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 레이건(전 미 대통령)에서 보듯이 치매에는 대통령부터 보통사람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고통받고 있는 치매 환자는 약 30만명. 65세 이상이면 10%, 75세 이상 20%, 85세 이상은 50%가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과학과 의술의 발달로 인간 수명이 크게 늘어난다 해도 85세 이상 부부중 한 사람이 치매에 걸린다면 장수하는 게 일찍 죽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서 교수다.


치매정복에 모든 역량 집중

그래서 그는 '세기의 질병'(disease of century)이라 불리는 치매를 정복하기 위해 지난해 12월16일 서울대 의대내에 국내 최초의 치매전문연구소(치매 정복 창의 연구단)를 세웠다. 현재 20여명의 연구원이 치매의 가장 큰 원인인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원인과 치료제 개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 연구의 이론적 바탕은 서 교수가 세운 아밀로이드 C단 단백질의 알츠하이머병 발병론. 이 이론은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쪼개져서 생긴 C단 단백질이란 독성 물질이 치매의 주범이라는 가설로, C단 단백질보다 독성이 수백 배나 약한 베타 아밀로이드가 치매의 주범이라는 기존 학설을 뒤집었다.

서 교수는 이에 관한 논문을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5월까지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인 SCI(Science Citation Index)에 등록된 권위있는 학술지 '파세브'(FASEB, 실험생물분야)지와 '저널 오브 뉴로사이언스'(신경과학분야)에 9편이나 올려 권위를 인정받았다.

SCI학술지에 논문이 단 한번이라도 실리면 그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9편이란 숫자는 엄청난 성과다.

"현재 6∼7종의 독성단백질이 뇌에 작용해 치매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C단 단백질이 치매의 근본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C단 단백질은 뇌 신경세포를 이루는 수많은 단백질 가운데 신경세포끼리의 커뮤니케이션 역할을 맡는 '시냅스'의 형성과 유지에 관여하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쪼개져 생기는데, 베타 아밀로이드보다 독성이 10∼1,000배 강하지요. 이 독성 때문에 신경세포가 죽고 뇌에 염증이 생기는 겁니다."

서 교수는 또 C단 단백질이 기억력을 떨어뜨리고 기억과 인식, 의식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것도 알아냈다. 신경세포내에서 프리세날린 단백질이 과다하게 생기면 치매를 일으키는 '세포자살'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찾아낸 것도 그의 연구 성과다.


대학시절부터 "뇌 해부의 천재"로 불려

서 교수가 인간의 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역시 1967년 서울대 의대에 들어가면서부터.

당시 의대생들에게 가장 어려운 과목으로 알려진 '뇌 해부학' '신경해부학'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대학시절부터 '뇌해부천재'로 불렸다. 동료들이 특별과외를 부탁해올 정도로 그는 뇌분야에서 뛰어났다.

"졸업하면서 직접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의가 될 것인지 학교에 남아 기초의학을 연구할 것인지를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동료들처럼 임상의를 택해 2년간 수련생활을 했지요.

임상 현장에서 기초의학 연구의 필요성을 느껴 방향을 바꿨는데, 큰 의사가 되려면 기초의학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도 뇌분야에서."

주변에서는 돈도 안 되고 어렵기만 한 기초의학으로 방향을 바꾸는 그를 말렸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의사가 일생동안 돌볼 수 있는 환자는 기껏 수만명이지만 기초의학을 연구하면 인류 전체에게 그 혜택이 돌아간다고 생각한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시작한 기초의학 연구는 이제 서 교수를 세계적인 뇌박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연구실에서 치매를 연구하는 일외에 사회활동도 열심히 하는 편이다. 특히 '뇌전도사'라고 불릴 정도로 뇌 건강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다닌다. 또 뇌를 알면 우리 사회의 교육효과도 높아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불기 시작한 조기교육 열풍도 뇌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지극히 비효율적인 것이라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도 뇌과학적으로는 입증이 가능하다고 한다. "조기 교육이 국민학교때 배울 것을 미리 유치원에서 배운다고 되는 건 아닙니다.

뇌는 태어나서부터 20세까지 부위별로 발달하는데, 뇌의 성장 특성에 맞춰 단계별로 적절한 커리큘럼을 짜서 해야 하지요. 무조건 일찍 시작하다 보면 과잉학습장애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는 뇌의 성장특성에 맞춘 교육을 '조기교육'이 아니라 '적기교육'이라고 불렀다. <계속>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5/24 17:27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