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가족풍속도- 한부모 가족] 아름다운 1인2역의 삶

사회적 편견,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문제

정수미(가명ㆍ39ㆍ여ㆍ교사)씨는 일곱살 난 아들 동수(가명)와 단둘이 산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이들을 두고 결손가족이라고 한다.

결손(缺損), 즉 무언가 모자란 가족이라는 뜻이다. 질병과 사고로 인한 사별 및 이혼의 증가로 이런 결손가정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보건사회연구소가 조사한 바로는 1998년 현재 우리나라 이혼 가정의 미성년자녀수는 11만5,000명에 달한다.

5년 전에 비해 무려 40%로 증가한 수치다. 여기에 사별로 혼자된 경우와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를 더하면 아버지나 어머니 한 사람과 사는 아이들의 수는 더 많아진다.

하지만 정씨는 자신의 가족을 한부모 가족이라고 부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맡는 부모의 역할을 한 사람이, 온전하게 맡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여성단체에서 2년전부터 쓰기 시작한 이 말은 점차 부정적인 의미의 결손가정을 대체해 가고 있다.


아이에 상처줄까 이혼사실 비밀로

정씨가 한부모가 된 것은 4년 전. 성격차이로 남편과 이혼했다. 쌍둥이인 아들은 하나씩 맡기로 했다.

정씨가 동수를 맡고 다른 한명인 민수(가명)는 지방에서 아버지와 친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고 있다. 동수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아버지를 만난다.

하지만 정씨는 민수를 자주 보지 않는다. 마음이 아파서, "차라리 한 아이는 잃어버린 셈 치고 살 작정으로"마음을 모질게 먹었다고 한다. 대신 자신에게 남겨진 동수는 아이가 아빠와 살겠다고 하기 전에는, 혼자 힘으로 누구보다 잘 키울 생각이다.

하지만 모진 마음과 날마다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정씨는 늘 마음이 편치 못하다. 동수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쩐지 자신감도 없고 기가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다 내 탓 같아서"라고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대가족 틈바구니에서 함께 사는 민수가 당당하고 씩씩해 보이는 것 같아 더욱 마음이 쓰인다. 두 아이의 성격 차이라고 자신을 달래 보기도 하지만, 죄책감은 어쩔 수 없다. 전 남편의 재결합 요구를 심각하게 고려했던 것도 오직, 아이들 때문이었다.

"나 하나 희생하면 우리 아이들을 다시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유혹이었지만, 다시 만난 남편을 보고 어렵게 생각을 접었다.

정씨는 직장 동료는 물론 이웃에게도 이혼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다. 혹시, 누군가 아이에게 더 큰 상처를 주지 않을까 해서다. 그 자신이 이전에 '결손가족'학생을 보고 가졌던 편견을 생각하면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는 자신이 이혼하고 한부모로 동수를 키우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고 한다. 한부모의 어려움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그들이 가진 열악한 환경을 배제한 선입견입니다. 아무리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려고 해도 먹고 살기 바빠 그냥 손을 놓아 버릴 수 밖에 없는 한부모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지난해 통계청이 전국 1만4,0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어머니 혼자 아이를 기르는 편모 가정의 월평균 소득은 78만3,000원.

그나마 경제력이 보다 나은 편부 가정의 경우도 한 달에 93만9,000원 밖에 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가정의 월평균 소득 159만6,000원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다. 저축은 고사하고 생활비 대기에도 빠듯하다.


아이와의 대하로 엄마 이해시켜

6년 전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이 휘두르는 가정폭력을 피해 세 살 난 아들을 안고 피신을 나오면서 한부모가 된 김연경(가명ㆍ34ㆍ텔레마케터)씨도 처음에는 그랬다.

아무 준비 없이 아이와 달랑 세상에 던져진 그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는 막막함 속에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고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사회복지사를 만나 주거 및 의료 문제에 대한 상담도 했다.

하지만 하나도 쉬운 일이 없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처음부터 이혼을 당당하게 밝힌 그는 대번에 사회적인 편견과 부딪혔다. 면접 때면 어김없이 "왜 혼자 사느냐?" "아이는 어떻게 기르느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마치 이혼한 사람, 한부모는 업무에도 지장이 많을 것이라는 염려가 담긴 그런 질문들에 그는 모욕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사회복지사와의 상담 역시 마치 자신이 구걸이라도 하는 듯한 굴욕감을 들게 했다. 그나마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해 아이를 맡기려 했으나 나라에서 운영하는 탁아 시설은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그가 이용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사설 어린이 집에 한 달에 35만원을 주고 아이를 맡기고 보니 손에 남는 돈이 별로 없었다. 김씨는 "어떻게 사는 지도 모르고 헐떡거리며 지난 세월이었다"고 그때를 회상한다.

여기에 언제 찾아올 지도 모르는 남편과 시집 식구들이 무서워 그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전입신고도 하지 않고 죽어지내 듯 세상을 살았다. 2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고 한다.

아들 정섭(가명)이의 친가와는 언젠가 자신이 먼저 나서 한번은 만날 생각이지만, 가정폭력을 알고도 묵인한 시부모에 대한 분노와 '자기집 씨'를 주장할지도 몰라 아직은 만나지 않고 있다.

김씨도 아이에게 무엇보다 많은 신경을 쓴다. 그 역시 미안한 마음이 많다. 정섭이가 어린 나이에도 아빠가 엄마와 자신에게 휘두른 가정폭력을 기억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김씨는 마냥 아이에게 잘해 주거나 모든 것을 다해주려 애쓰지 않는다. 아이가 엄마인 자신에게 의지하는 만큼, 그 역시 아이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는 정섭이를 대하는 데 몇가지 원칙을 만들었다. 첫째, 아무리 잘못을 해도 아이에게 체벌을 하지 않는다. 아이에게도 친구를 때리는 것은 절대 안된다고 늘 일러 준다.

둘째, 아이와 많은 얘기를 한다. 때로 엄마의 말을 못 알아듣기도 하지만 "엄마는 앞으로는 아빠와 살지 않겠다"고 했을 때부터 무엇이든 항상 터놓고 이야기 한다.

셋째, 아이가 가진 상처를 덮어 놓지 않는다. 이따금 정섭이가 드라마에서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장면이나 아빠와 아이가 나오는 장면을 보면 "아빠도 엄마에게 저랬지?" "아빠는 날 예뻐했어?" 등을 묻는다. 마음은 아프지만, 담담하게 이야기해 준다.

"아빠는 술 때문에 엄마를 때렸다" "아빠가 술 먹지 않았을 때는 정섭이를 많이 예뻐 했다"고. 엄마와의 대화로 인해 정섭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

많은 경우 학교에 들어간 한부모 가족의 아이들이 친구에게 놀림거리가 되거나 '왕따'를 당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데 반해 정섭이는 아직까지 친구들 일로 엄마를 걱정시킨 적은 없다.


탁아시설 등 실질적 정책 필요

정씨와 김씨는 몇 년간의 어려움 끝에 이제는 한부모로 사는 삶에 당당하다. 여기에는 비슷한 처지의 한부모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두 사람 모두 한국여성민우회 한부모 모임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을 알게 되었다. 정씨는 아예 몇몇 한부모들과 같은 동네에 살며 서로 아이를 맡아주기도 하고 주말이면 함께 놀러 다닌다.

이혼으로 친구, 친척 등 주변 사람과의 왕래가 뜸해진 이들에게 다른 사람과는 하기 힘든 얘기까지 속 시원하게 터놓을 수 있는 새 친구들은 두 사람 모두에게 세상을 겁내지 않고 살아가는데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

정씨가 내년에 동수가 학교에 들어가면 더 이상 이혼을 숨기지 않겠다고 생각을 바꾼 데에도 한부모 친구들과의 만남이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아이가 남들처럼, 평범하고 구김살 없이 자라는 것이 무엇보다 큰 바람"이라는 두 사람의 아이들에게도 아빠 없이 사는 또래와의 만남은 한부모 가족이 무언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삶의 형태로 자연스레 받아들이는데 도움을 준다. 친구가 생겨 신이 난 동수는 "아빠 보고 싶다"는 말이 쑥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정씨와 김씨 모두 사회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다. 정씨는 "한부모 가족에 대한 정책이 있는 것은 알지만 너무 미미하거나 생색만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는 한부모 가족을 위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탁아 시설 마련이 시급하다" 고 지적한다.

김씨 또한 "한부모 가족으로 당당하게 살라는 말은 많지만 실질적으로 어떻게 잘살게 해주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제도적으로 한부모가 자신과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경제적 자립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부모는 물론 아이를 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얘기들이다. <끝>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5/24 19:35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