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내무덤'과 '알몸'

5.16 쿠데타 40주년에 있었던 두 가지 행사의 메시지는 착잡했다. 이날을 전후해 읽은 쿠데타 주도자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두 가지 책도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지 못했다.

"누가 뭐래도 '5.16혁명'은 나라를 나라답게, 국민을 사람답게 살게 하고자 일어선 국민정신의 일대 봉기였고 민족중흥을 위한 우렁찬 서곡이었다."

쿠데타의 참모장이었던 자민련 김종필(JP)총재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5.16 민족상 시상식 격려사에 서 이렇게 말했다. 현역으로 '주체'는 김 총재 한 사람 뿐이었다.

JP는 "참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감회가 되살아난다. 우리는 결코 비관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식장이 40주년 기념식답지 않게 100여명만 모여 너무 쓸쓸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날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 기념관 건립 예정지'부근에 모인 '기념관 반대 국민연대'회원 60여명은 허수아비 머리와 몸통(일장기가 걸린 나무막대)을 불태웠다.

국민연대는 "박정희는 기념할 대상이 아닌 청산과 극복의 대상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상암동에 일본군 장교 출신이 기념관을 세울 것이 아니라 일본군에게 학살당한 독립군 위령탑과 의병 기념관을 지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인 홍수근 목사는 "오늘은 역사적으로 매우 수치스러운 날이다. 더군다나 여기에 박정희 기념관까지 세워진다면 우리 모두는 이땅에서 살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조적인 5.16 쿠데타 40주년 행사를 보면서 4월 19일에 발간된 최상천 전 효성카톨릭대 교수의 '알몸 박정희'를 읽었다. 지난해 8월까지 대구에 있는 효성카톨릭대에서 한국 역사를 가르쳤던 그는 '혁명적인 글쓰기'를 위해 교직을 떠났고, 첫 작품이 '알몸 박정희'이다.

최 전교수는 '알몸 박정희'에서 박정희 소장과 5.16의 관계에 대해 "5.16은 박정희에게 '다카키 천국'(유신체제를 박정희의 일본 이름인 다카키를 따천황국가(天皇國家)라는 의미로 썼다)으로 향해가 는 2단계 정복 전략일뿐, 근대화 혁명이나 여느 국가 혁명과는 관계가 없다"고 했다.

그가 박 전 대통령을 '알몸'으로 보기 위해 주로 사용한 책은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의 "내무덤에 침을 뱉어라"였다.

'근대화 혁명가 박정희의 비장한 생애'를 부제로 1999년 8월까지 5권이 세상에 나와 있는 책이다.

최 전교수의 '알몸~'은 결국 조 편집장이 아직도 '월간조선'에서 추적중인 '내 무덤'에서 나온 또 다른 '박정희'의 모습이다. 한 무덤에서 2명의 '박정희'가 나온 셈이다.

먼저 근대화라는 '무덤'에 박정희를 낳은 조 편집장의 조사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며, 낙관적이다. 이에 비해 최 전교수의 '두목 박정희'에 대한 조사는 고발장이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다.

1963년 박정희 최고의장이 민정 대통령으로 나올 때 쓴 책 '국가와 혁명과 나'에 대한 두 사람의 평가와 인식의 차이를 보자.

조 편집장은 이 책의 마지막 쪽에 나온 대목을 박전 대통령의 모두를 집약한 진실된 모습이라고 보고 있다.

"소박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자주독립된 한국의 창건, 그것이 본인의 소망의 전부다.본인은 한마디로 말해서 서민속에서 나고 자라고 일하고 그리하여 그 서민의 인정속에서 생이 끝나기를 염원한다"는 대목이다.

최 전 교수도 '국가와 혁명과 나'가 그의 '알몸'을 드러낼 제1증거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해석은 다르다. 박정희는 '다카키 천국' 창건을 위해 레닌의 '국가와 혁명'에 '나'를 추가해 한국의 천황이 되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정희는 모든 혁명은 1963년에 구상했으며 18년간 무한폭력 속에 이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이 혁명은 정신적으로 주체의식의 확립혁명이며, 사회적으로 근대화 혁명이며, 경젲거으로 산업혁명인 동시에 민족중흥창업혁명이며, 국가의 재건 혁명이자, 인간개조-국민개혁 혁명인 것이다"고 '나홀로 혁명'을 부르짓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첫 대선에 나설 때 이미 영구혁명=영구집권을 꿈꿨다고 한다.

"이 혁명의 전정(前程;앞길)에는 시한이 없다. 제3공화국의 수립만으로 혁명이 끝나는 것도 아니요, 어디에서 어디까지라고 기한이 정해진 것도 없다. 이 혁명은 민족의 영구혁명이다"는 대목을 증거로 들었다.

JP와 홍근수 목사, 조갑제 편집장과 최상천 전 교수가 내년이나 후 내년 5.16 기념일에 만나 박정희의 무덤 앞에서 '국가와 혁명, 그리고 박정희'를 넣고 담론했으면 좋겠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05/2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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