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비목의 고장 '화천'

요즘 여행과 레저의 두드러진 경향이 있다면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리 먼길, 오지, 물 속, 하늘 등 거칠 것이 없다. 전방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전방지역을 여행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였다.

군에 있는 가족의 면회를 간다거나, 자신이 몸담았던 부대를 위문차 들르는 정도. 검문소마다 신분증을 내밀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큰 이유였지만 가끔 들리는 대포와 총소리에 간이 덜컥 내려 앉는 공포심도 한 몫을 했다. 군인 이외에 민간인을 위한 여행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이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배를 타고 금강산을 오가는 세상의 변화가 큰 역할을 한 것일까. 오히려 대포 소리를 즐기며 가족과 함께 전방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장 크게 떠오르는 여행지는 다름 아닌 강원 화천이다.

화천은 이름 그대로 물의 고장이다. 맑은 북한강이 질주했던 곳이다. 이제는 댐으로 물을 가두어두고 있지만 그 화려한 물 빛깔에는 변함이 없다. 군사지역이라는 특별한 상황이 개발의 여지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춘천과 마찬가지로 호반의 고장이다.

그 물빛만 모두 돌아보아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여행이 될 수 있다.

화천에서 가장 대표적인 명소는 역시 화천댐. 해방 직전인 1944년에 완공됐다. 댐이 가두어 놓은 물은 원래 화천호였으나 나중에 이름이 바뀌었다. 6ㆍ25때 국군 6사단이 엄청난 승리를 거둔 곳이다. 중공군 3만여 명이 이 물 속에 잠겼다. 이승만 대통령은 '오랑캐를 대파했다'는 의미의 '파로호(破虜湖)'란 이름을 내렸다.

이름은 전투적이지만 파로호는 아름답다. 험한 산세를 따라 푸른 물이 멈춰있다. 저수량은 10억 톤. 그 엄청난 양의 물은 깨끗하다. 그냥 떠먹어도 좋을 만큼의 1급수이다. 잉어 쏘가리 등 어자원도 풍부해 예로부터 낚시꾼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화천읍을 끼고 도는 호수는 춘천호. 하류 춘천댐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인데 화천 주민은 화천호라 부른다. 화천읍에서 내려다 보이는 춘천호는 평화롭고 포근하다. 오색의 배들이 한가롭게 떠다니고 군데군데 높은 미루나무가 하늘을 받치고 있다.

또 붕어섬이라는 명물이 있다. 참붕어가 많이 서식하고 붕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붕어섬이다. 물난리 때마다 일부가 유실되기도 하는데 그 때마다 화천군에서 정성들여 보수공사를 한다. 화천 주민들의 안락한 소풍터인 이 곳에는 물고기가 많다.

섬 남쪽의 수초지대에서는 한가롭게 노니는 송어떼까지 볼 수 있다.

매년 6월 초면 이 붕어섬을 주 무대로 비목문화제가 열린다. 올해 행사는 6월 4일부터 6일까지. 행사의 부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은 반쪽을 찾아서'이다. 위령제, 병영체험 등 일반인도 참가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비목문화제에 참가했다면 분단의 아픔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평화의 댐을 찾지 않을 수 없다.

화천읍에서 승용차로 약 1시간 가량을 더 달려야 하는 먼 길이다. 그러나 워낙 풍광이 아름답기 때문에 지루하지는 않다. 한 때 육로에서 가장 긴 터널이었던 해산터널(1,986㎙)을 지나는 기분도 남다르다.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것 만큼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달리다보면 멀리 댐의 모습이 나타난다. 커다란 덩치만 드리워져 있을 뿐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하는 평화의 댐을 바라보면 누구나 상념에 잠긴다.

권오현 생활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1/05/30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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