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의리와 세도

5월 말의 우리 정국은 목마른 대지에 비 없는 형국이었다. 그래선지 엉뚱하게도 300여년전 조선후기가 시작된 영ㆍ정조(1724~1800) 시대가 생각났다.

그 시대는 왕이 붕당의 어느 한편에 서지 않고 각 정파에서 고루 인재를 등용해 왕권을 유지, 강화하면서 백성들에겐 성인의 정치를 펴겠다는 '탕평(蕩平)정치' 시대로 불린다.

다른 말로 하면 '의리(義理)와 세도(世道)'의 정치시대였다.(카톨릭대 박광용 역사학 교수 '영ㆍ정조대 탕평정국과 왕정체제강화' 논문에서)

그러나 5월 서울의 목마른 정국에서 '의리'나 '세도'는 사리(私理)나 배리(背理), 또다른 세도(勢道, 정치상 권력의 장악)를 탓하는 말로 300여년 사이 크게 변해버렸다.

김대중 대통령은 6월1일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의 당ㆍ정 인사쇄신 요구에 "내탓이오"라며 유감을 표명하면서 "시간을 달라"고 했다. 소장파 의원들의 주장은 문민정치 2기에 들어선 현 김대중 정부가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인 '世道'를 떠나 장관인사 등에서 비선(泌線)라인을 활용하고 당의 언로를 차단하는 '勢道'세력에 의해 타락했다는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5월16일 MBC TV와의 회견(5월28일 방영)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대선후보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런 투로 대답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 총재가 6월1일 알렉산더 다우너 호주 외무장관을 만나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의 방한은 약속을 한만큼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자 발끈해 "민족반역자 김정일의 방한을 구걸하는 김대중씨와 이에 동조하고 나선 이회창씨는 국민을 속이지 말고 차라리 합당하라고 해라"고 막말을 하기도 했다.

김 전대통령의 '의리'와는 또 다른 '의리'가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역시 이 총재를 겨냥했다. 박 부총재는 5ㆍ16 40주년을 맞아 "아버지(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당의 입장이 정리돼 있지 않아 깊은 갈등과 고민을 해왔다.

아버지의 묘소를 한번도 찾지 않았던 이 총재 입장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5월30일에는 "이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많은 국민은 지난 시절에 대한 한나라당의 평가를 지켜볼 것이다"고 윽박질렀다.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는 5월30일 청주대 특강에서 "YSㆍDJ정권의 실패에 대한 반작용으로 차기 정권이 수구화 경향을 띨 조짐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에서 드러나고 있다.

한나라당이 민주화 운동과 개혁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스스로의 진로를 설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이 총재에게 주문했다.

김 전대통령이나 박 부총재나 이 부총재나 이회창 총재가 차기 대선에 다시 후보가 되기 전에 이 나라 정치에 대한 '의리'의 정체를 밝히라는 것이다. '의리'는 '일본자전'에 의하면 "바른 도리, 이치에 알맞은 도리, 사람이 걸어야 할 길. 사물의 도리, 교제상 싫어도 행하여야 할 일"로 풀이되어 있다.

그러나 17여년간 영ㆍ정조시대 탕평정치를 연구한 카톨릭대 박광용 교수가 해석한 '의리'와 '세도'의 뜻은 다르다. '의리'는 "사대부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도리이기도 한 '세도'의 정치를 타락시키지 않도록 하는 사람들(현재의 정치인, 정당)의 정치원칙"이라는 해석이다.

박 교수에 의하면 인재를 골고루 쓰는 탕평에서 더 나아가 탕평파라는 새 파벌을 만들어 정국을 이끈 사람이 영조였다. 정조는 이 탕평책을 엄격히 해 골고루 쓰는 것도 좋지만 옳고 그름을 확실히 하는 '의리' 있는 인사를 파당없이 고루 활용하는 것을 탕평이라고 보았다.

정조는 '의리'에 따라 인사를 등용했으며 당과 색깔을 고려하지 않았다. 정조는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민은 나의 동포'라는 입장에서 단일하게 파악하려 했으며 그 업적은 1801년 공노비 제도의 폐지에 이르렀다.

정조가 가장 싫어한 것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게 한 외척과 측신들에 의한 척신 및 勢道 정치였다. 그는 집권의 한축이었던 홍국영이 척신정치를 시도하자 그를 전격 은퇴시켰다. 모든 인사는 가능한 한 '의리' 있는 재상의 손에 의해 이뤄지도록 했다.

300년전 영ㆍ정조는 그들의 왕권을 위해 탕평의 정치를 폈다. 그리고 탕평의 진면목은 '의리'고 '세도'였다. '의리'는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이며 '세도'는 자유민주주의 정치가 아닐까. 김대중 대통령이나 이회창 총재는 영ㆍ정조 시대를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06/0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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