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사회] 사회발전 못 따라가는 정치가 문제

원칙없는 정치, 도덕적 헤이 부르는 주요원인

한국산업정책연구원(IPS)이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모니터 컴퍼니 등과 공동조사한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전세계 조사대상 64개국 중 22위였다. 23개 선진국 중에서는 20위였고, 한국을 포함한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 '아시아 네 마리 용' 중에서는 꼴찌였다.

새삼스런 결과가 아니다. 흥미있는 것은 인적요소 부문의 경쟁력이다. 기업가가 15위로 상대적으로 가장 경쟁력이 있었고, 이어 전문가가 21위였다. 반면 정치지도자 및 행정관료는 27위, 근로자는 38위에 머물러 평균경쟁력보다 한참 낮았다.


각 분야 자율성 보장돼야

문제는 여기에 있다. 상대적 저수준의 정치ㆍ관료부문이 기업가를 상대하는 것은 자칫 열등생이 우등생을 지도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경제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난무하는 집단이기와 도덕적 해이의 원인은 결국 '정치 책임론'으로 귀결된다.

권력은 비정상적으로 비대함에도 불구하고, 그 권력을 행사하는 제도적 틀은 부실한 것이 한국정치의 문제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좌충우돌 풍조를 초래한 최대 원인으로 현 정권의 '원칙부재'를 들었다. 최대한 존중돼야 할 법과 공약, 규범화한 과거의 관행 등이 수시로 깨지면서 사회 행위자들의 불신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한 외국언론 특파원은 "한국이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의 비용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경우 정권이 바뀌면 새 정권은 기존의 정책을 계승하면서 다른 바람을 불어 넣는데 반해, 한국은 개혁 일변도로 흘러 문제를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국회의 무기력은 정치적 좌충우돌의 원인이자 표현이다. 여당의 경우 국회는 자율적 의견조정의 장이 아니라 청와대의 의사를 피동적으로 실현하는 곳으로 전락해버렸다. 원칙 무시는 정치권의 관행이 돼버린 인상이다. '방탄국회'를 통한 사법기관 무력화, 검찰출두 거부 등은 위로부터의 공권력 무시 풍토를 조성했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모성보호법은 실시 2년 유예란 기묘한 타협으로 끝났지만 이해 당사자 모두의 비난을 받고 있다. 추진력을 상실한 정치권의 무기력성에 대한 불신은 집단행동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집단행동은 결과적으로 문제해결을 못하는 정치권에 대한 자구책의 한 표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관료사회 보신주의 만연시키는 정치논리

감사원의 국민건강보험재정 특감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반발 파문은 정치권과 관료사회가 뒤엉킨 좌충우돌 사례다. 감사원 특감은 4조원 이상의 적자를 간과하고 무리하게 의약분업을 추진, 이에 따라 국민불편을 야기한 책임 소재를 파악하는 형태를 띠었다.

결과 재정 적자폭을 축소보고하고, 의약분업의 긍정적인 면만 홍보했다며 복지부 차관을 비롯한 관계 공무원 7명의 징계를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주무장관이었던 차흥봉 전 복지부 장관은 검찰고발을 않기로 했다.

복지부 내부에서는 이에 대해 "정치적 책임은 제쳐놓고 힘없는 실무진만 손을 본다"며 반발했다. 복지부의 불만이 감사원이 아니라 정치권을 향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당초 의약분업은 의보재정의 문제점 지적에도 불구하고 DJ의 공약사항으로서 강행됐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정치권에서 강력하게 추진하지 않았으면 실시 자체가 불가능한 사안이란 이야기다.

이 같은 점을 무시한 실무자 문책은 관료조직이 희생양으로서 정치권의 바람막이가 됐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이번 조치는 관료사회의 보신주의를 강화함으로써 '복지부동'을 합리화하는 악영향을 낳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6/05 21:34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