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풍은 '허풍'이었나?

"당정쇄신요구"…"소장파 권력투쟁" 엇갈려

'민주당은 재선들이 움직인다.''당이 잘 돼도 재선들 덕이고, 당이 못 돼도 재선들 탓이다.'

최근 민주당내 당정쇄신 요구 파문의 와중에서 흘러나온 얘기들이다. 사실 민주당 당정쇄신 요구파문의 전개 과정을 뜯어 보면 당내 개혁적 재선그룹이 당을 좌지우지하는 형태로 진행된 측면이 있다. 막전 막후 연출도 재선들이 했고 주연과 조연까지도 재선들이다.

파문을 최고조로 증폭시킨 2차 성명 강행과 정동영 최고위원의 가세, 김민석 의원의 성명 의원 비판과 그에 따른 반전 등이 모두 재선그룹 내에서 이뤄졌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개혁적 재선 그룹이 대부분 망라돼 있는 '바른정치 실천 모임'내부에서 터져 나온 일이다.

때문에 이를 소장 의원들 내부의 주도권 싸움으로 보는 시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부 초선 의원들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 같은 주도권 경쟁에 가담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치적 이해 따라 내부분열

그렇다면 재선그룹이 내부의 분열양상까지 노출해 가면서 얻고자 하는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목소리에 한창 물이 올라 있는 재선그룹내 갈등 양상과 관련해서는 벌써부터 당권, 차기 및 차차기 대권, 다음 총선에서의 공천권 문제 등도 함께 거론된다.

한마디로 당내 권력투쟁의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1차 성명에 참여했으나 재선인 천정배, 신기남 의원의 2차 성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온 김성호(초선) 의원은 "재선그룹은 기본적으로 당권에 접근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비판한다.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 있는 정동영 최고위원이 당정쇄신 요구 과정에서 최고위원 총사퇴론을 주장한 것도 당권 또는 대권 등 보다 큰 정치적 도약을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주장과 맥이 닿아 있다.

그래서 정 최고위원의 경우는 당정쇄신 요구를 이끌고 가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상황을 연출, 무리하게 정치적 의도를 노출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천 의원은 지난해 국회법 운영위원회 날치기 파동의 주역으로 몰린 이후 부쩍 당정쇄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천 의원의 경우, 지난해 말 김중권 대표 체제가 등장했을 때 당의 정체성 문제를 거론하며 강력 반발했다고 한다.

이번 당정쇄신 요구 파문도 결과적으로는 김 대표에게 전화위복의 기회를 줬지만 기본적으로는 지난해 말부터 제기돼 온 쇄신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성명에 적극적이었던 재선 의원들도 그 최종적인 전략ㆍ전술적 목표가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번 파문의 내부적 진행과정에 정통한 당의 한 관계자는 "정동영 최고위원과 천 의원이 2차 성명 강행에 가장 적극적이었고 신 의원은 오히려 재선그룹 내부의 조정자 역할을 하려다 강경 세력에 딸려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성명을 지지한 의원들중 동교동계인 정동채 의원은 정 최고위원과는 전략적 제휴관계로 알려지고 있으나 천 의원과는 노선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사실은 동교동계인 정동채 의원과 정동영 최고위원, 지금은 의원직을 떠난 김한길 문화관광부장관 등 3인은 '도원결의'에 준할 정도로 정치적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얘기는 민주당 내에서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들은 다양한 출처에서 나오는 정보를 서로 공유하며 각자의 정치적 입지 확대와 주요직 진출 과정에서 힘을 모아주는 사이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것은 동교동계에 대한 국민적 인기가 떨어지면서 동교동계와 일정한 선을 긋고 있는 것으로 비치는 정동채 의원이 과연 동교동계와의 결별까지 갈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동교동계로서 동교동계의 이탈을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나선다면 그것은 상당한 파괴력을 지닐 수도 있다.


정동영ㆍ김민석 '진실게임'

성명 행위를 비판한 김민석 의원 등은 이런 흐름과는 다른 편에 서 있다. 즉 당의 판도를 한꺼번에 바꾸자는 주장에 반기를 든 것이다. 재선인 김영환 과학기술부장관, 정세균 당 기조위원장 등이 이러한 입장에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의원의 이 같은 반대도 그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는 여권에 비판적인 국민적 여론에 밀려 성명 의원 비판이 개혁적 이미지 퇴색으로 비치는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당 안팎에서 '승리'할 것으로 믿고 행동으로 옮긴 것이라는 지적이다.

재선그룹의 주도권 싸움이 압축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은 '대통령 면담 약속'과'2차 성명 강행'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정동영 최고위원과 김민석 의원간의 '진실게임'이다.

김 의원은 "당 주요 간부인 정 최고위원과 정균환 특보단장이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당 윤리위 등에서의 진상확인이 필요하다"며 진실검증을 주장하고 나섰다.

김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2차 성명 강행 직전에 재선그룹이 모여 상황을 논의했을 때는 성명 유보를 결정했으나 그 후 정 최고위원이 천정배, 신기남 의원 등에게 사발통문을 돌려 성명 강행을 유도, 약속을 깼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최고위원은 "(김 의원의 주장에는) 무슨 배경이 있을 것"이라며 역으로 김 의원의 정치적 의도를 치고 나왔다. 김 의원이 정 최고위원의 정치적 의도를 공격하는 데 대해 맞불을 놓겠다는 계산이다.


내부 격론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

이런 상황에서 김중권 대표가 윤리위 소집 문제에 대해 "당에서 검토해 볼 것"이라고 말해 경우에 따라서는 이 문제가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김 대표는 김 의원의 성명 의원 비판에 대해 "성명 행위에 나름대로 일침을 가한 것"이라며 다소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성명을 지지해온 이재정(초선) 연수원장은 그러나 "대통령 면담을 약속받고도 성명을 낸 것이 약속을 깬 것인지 여부는 내부의 문제고, 국민을 향해 행한 정치적 행위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며 정 최고위원 편을 들었다. 이 같은 상황은 이 문제를 놓고 자칫 당 내부가 다시 격론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음을 의미한다.

고태성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1/06/05 21:44


고태성 정치부 tsg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