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강제규 감독의 장점과 매력

강제규 감독도 올해 칸영화제에 갔다 왔다. 그에게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1차 목표는 강제규필름의 영화들을 파는 것. 이미 국내개봉한 '단적비연수'와 제작중인 '베사메무쵸' 등을 가지고 그는 자신의 부스를 차렸다. '쉬리'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이 없는 그로서는 답답했을 것이다.

또 한가지 목표는 외화 수입. "아니, 강제규가 외화를 수입해 돈을 벌려고 한다니?"하고 놀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쉬리' 성공 후 강제규에게는 투자자들의 돈이 몰렸고, 그것으로 그는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컨텐츠 기업을 창설하고, 인터넷방송국에 투자하고, '주공공이' 라는 자기극장을 확보했으며, 강제규필름의 제작 인력풀 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마침내 연예인 매니지먼트회사인 '싸이클론 엔터테인먼트' 까지 한솔아이벤처스, 벤처플러스와 공동으로 설립했다. 싸이클론은 가수나 연기자 등 신인을 발굴해 양성하고, 기성 연예인들을 영입하겠다고 밝혔다.

강제규 감독의 꿈은 이미 여러 차례 밝혔듯이 영상산업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먼저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어야 하고, 그것을 잘 유통시켜야 하며, 단순히 영화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영상산업으로서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작인력이 풍부해야 하고, 지금처럼 다른 영화사들이 독점하다시피 하는 배우들에 대한 관리와 발굴도 해야 한다. 극장도 필요하고, 다양한 컨테츠를 만들 기업도 필요하다.

그가 외화수입을 해야겠다고 판단한 것도 결국은 배급망 구축 때문이었다. 그는 아무리 한국영화를 많이 만들어도 그것으로 배급망을 유지하기 힘들고, 또 한국영화만으로는 되지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시네마서비스 강우석 대표도 과거 "나는 한국영화 감독이다. 외화수입은 생각도 안 한다"고 공언하고서도 슬며시 태원엔터테인먼트를 내세워 100만 달러가 넘는 비싼 외화수입에 열을 올리다 최근에는 아예 대놓고 시네마서비스 이름으로 수입하고 있다.

칸에서 만난 강제규는 외화수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는 너무나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한국영화배급구조를 지적하면서 외화수입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했다. 그런 그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가능하면 '외화수입은 안 한다'는 약속을 지켜라.

강우석이 오래 전에 그렇게 한 말은 요즘 기자들이 모르니까 비난하지 않지만 당신은 다르다. 배급상 불가피하다면 비싸지 않은, 가능하면 작은 영화, 그러면서 흥행성 보다는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만 수입해라.

그렇다고 백두대간이 하고 있는 아주 작은 예술영화까지 자본을 앞세워 가로채지는 마라. 강제규 필름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를 국내 팬들에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인식을 심어라. 물론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돈만 생각하면 잃는 것이 더 많다. 그보다는 한국영화제작을 좀 더 철저히 해 강제규표 영화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것이 시급하다."

그는 공감했다. 그리고는 다른 영화사와 한국영화 현실을 진단하면서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나름대로 이야기했다. 자신의 문제를 솔찍히 인정했고, 충고를 받아들이려 했다. 그 때문인지 그는 이번 칸영화제에서 사려고 욕심을 냈던 각본상 수상작인 보스니아 영화 '노 맨스 랜드'를 백두대간에 양보했다.

마음만 먹으면 더 높은 가격을 주고 얼마든지 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날 나눈 대화 때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강제규는 현명했다.

가차없이 비판하는 사람에게 화를 낼 법도 한데 그는 빈말이라도 "그 솔직함 때문에 나는 선배가 좋아" 라고 말한다. 칭찬보다 충고나 단점을 지적해주는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그것이 강제규의 미덕이자 장점이다. 그래서 강제규가 좋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입력시간 2001/06/0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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