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미국의 수능시험

이맘 때면 미국 각 신문의 지역 난을 보면 그 지역 고등학교의 우수 졸업생들이 어느 대학에 들어갔느냐 하는 것이 발표된다. 예를 들어 워싱턴 D.C. 지역에서는 각 카운티별로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에서 우등생으로 졸업한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 학생들이 어느 대학으로 진학하였는지가 나온다.

우리 상식으로 언뜻 생각하기에는 이러한 우수 학생들은 대부분 우리 나라에서 명문 대학으로 잘 알려진 하버드대나 예일대 같은 아이비리그나 스탠퍼드, U.C. 버클리, 시카고대 등의 명문 대학으로 진학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l00여명 가까이 되는 우수 졸업생 중에서 이런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10% 전후에 그치고 만다.

물론 돈이 많이 드는 사립대학보다는 학비가 싼 주립대에 진학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은 무조건 서울의 명문대로 진학하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현상이다.

미국에서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SAT라는 시험을 본다. 소위 대학에 들어가 학문을 연마할 수 있는 소질이 있는지 여부를 검증해 보자는 시험이다. 시험은 전국적으로 실시되며, 각 대학에서는 입학생을 뽑을 때 시험 성적을 참조한다.

그러나 각 대학마다 입학 전형 방식이 독특하여 일률적으로 학업 성적이나 SAT성적에 기초해서만 신입생을 뽑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서 매년 치르는 수능시험 처럼 '몇 점이면 무슨 대학 무슨 과'까지 정해지는 것과는 다르다.

많은 대학들은 SAT, 학교 성적뿐만 아니라 과외활동을 비롯해 학교 생활 전반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토대로 신입생의 선발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비근한 예로 고등학교에서 셰익스피어 연극을 직접 제작 연출하여 보았다든지, 학교 미식 축구 팀의 주장이었다거나, 과학 경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하여 로봇을 만들었다든지 하는 것은 상당한 가산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최근에 어떤 교육학자는 SAT가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여 어떻게 학업을 성취하느냐를 적절히 평가하지 못하므로 각 대학에서 신입생을 뽑을 때 SAT 성적을 참조하지 말라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그래도 미국에 있는 많은 우리네 부모들은 자식들의 높은 SAT성적만이 자식 교육 잘 시킨 훌륭한 부모 증명서라도 되는듯 이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또 다른 시험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공화당 정부가 내세우는 교육정책의 핵심 중의 하나인데, 주 단위 또는 전국 단위로 각 학년마다 아이들의 능력을 평가하자는 것이다. 그 평가 결과를 가지고 학교가 또는 선생님이 미국의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고 있는지를 검증해 보겠다는 게 취지이다.

학교가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부모들에게 자신이 선택하는 사립학교를 보낼 수 있는 선택권을 주면서 사립학교에 다니는데 드는 학비를 공립학교의 예산에서 빼내어 보조해 주겠다는 아이디어다.

공화당적인 발상이다. 그러나 사립학교 보조금 부분은 의회와의 협상과정에서 삭제되었고, 실제로는 학력 검증 시험만 의회의 동의를 얻어 시행될 모양이다.

이 추세에 따라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나름대로 학력 평가 시험을 치르고 있는데, 이게 학부모나 교사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사고 있다. 이유인즉, 학생들의 능력을 어찌 시험만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학교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를 평가하는 척도로서 시험 성적은 너무나 단순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험 성적과 학교 평가를 결부시킴으로써 학교를 시험준비 장소로 전락시키며 창의적인 교육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이 다.

두 자녀를 가진 한 학부모의 불만은 이렇다. "큰아이가 셰익스피어를 배울 때는 반에서 배역을 서로 정하고 무대를 만들어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배웠는데, 시험을 보게 된 작은 아이는 그렇지 못했다. 시험준비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내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주별 학력 평가 시험을 반대한다."

"우리 학교 졸업생 중 수능시험 몇 점 이상 몇 명 나왔다"는 것으로 우수 학교임을 자부하는 우리네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미국의 교육 현장이다.

박해찬 미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1/06/0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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