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학들 '하나의 대학' 실험

대구·경북 5개대학 비롯 지방 국립대 짝짓기 활발

대학간 짝짓기가 활발해지고 있다.

자발적 통ㆍ폐합도 있지만 대부분 교육인적자원부의 '권유'에 따른 것으로 구조조정의 성격도 있어 학ㆍ내외 구성원들의 반발 등 진통도 크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 짝짓기가 본격화하면서 찬반 논쟁이 뜨겁게 달아 오르는 양상이다.

경북대 등 대구ㆍ경북 5개 국립대학은 10년안에 '대구ㆍ경북 국립대학교'를 구축키로 하고 우선 공동발전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학점 연구 등 교류를 확대키로 했다.

경남권에서는 경상대와 창원대가 지난해초 통합논의를 벌이다 학내 일각의 반발로 잠수 상태지만 여전히 불씨가 남아 있다.

부산권은 통합논의의 주축이 돼야 할 부산대가 캠퍼스 이전문제로 이렇다할 진전이 없다.

하지만 정부의 통합ㆍ교류확대 의지를 무시할 수만은 없고 부산대 독자적으로 여러 대학과 통폐합하는 안과 연합대학구축 등을 내용으로 하는 보고서를 낸 상태라 조만간 논의가 본격 재개될 전망이다.

특히 1996년 부산수산대와 산업대인 부산공업대학이 자발적으로 통합한 뒤 우수한 신입생 유치에 성공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있어 통ㆍ폐합 내지 교류확대는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광주ㆍ전남과 전북 지역은 학교간 자존심 등으로 교류확대에 의견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으나 언제까지 정부의 통합ㆍ교류확대 권유를 거스릴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학점ㆍ연구 교류 등 발전계획 마련, 교수회선 반대

전국에서 가장 먼저 공동발전계획안을 마련한 곳은 대구ㆍ경북권 5개 국립대학.

경북대 금오공대 대구교대 상주대(산업대) 안동대 등 대구ㆍ경북권 5개 국립대학은 5월 29일 안동대에서 공동발전계획 및 교류분야별 시행세칙 조인식을 가졌다.

이들 대학이 공동으로 마련한 발전계획에 따르면 내년까지 1단계로 교류협력기반을 조성하는 '협력ㆍ교류체제'를, 2003∼2005년 2단계로 대학간 협력조정을 강화하는 '협력ㆍ조정 체제'를 마련한다. 이어 2010년까지는 명실상부한 '대구ㆍ경북 국립대학교'를 구축하는 '협력ㆍ연합체제'를 이룬다는 계획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하나의 대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단계에서는 대학원생과 학부생의 학점교류가 이뤄지며 2단계에 접어들면 학과교환이 가능한지에 대한 기초연구가 실시된다. 3단계에서는 연합대학의 총정원제가 실시되며 연구중심, 연구ㆍ교육중심, 교육ㆍ연구중심, 교육중심으로 특성화가 정착된다.

5개 대학은 경북대가 정보기술ㆍ생명과학분야, 금오공대는 실용정보기술ㆍ나노 및 정밀기술분야, 대구교대는 교원양성, 상주대는 자연기술분야ㆍ위탁ㆍ평생교육ㆍ전자상거래, 안동대는 환경기술 및 국학ㆍ문화관광분야로 특성화분야를 정해 집중 육성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발표가 나오자 대구교대를 제외한 4개대학 교수회는 즉각 반대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발하고 나섰다.

교수회는 성명서에서 이 계획은 부족한 교육재정 문제는 덮어둔 채 교육과 연구를 수치화 시켜 중앙통제를 강화하고 경쟁 만능주의로 이끌어 교수를 길들이려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또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고 구성원들의 충분한 합의도 얻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몇푼의 지원금을 타내기위해 교육부에 충성을 서약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학생들도 이 같은 소식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6월 2일께부터 5개대학이 공동 운영하는 인터넷홈페이지 자유게시판(www.tknu.ac.kr)에 하루 50∼60건이 넘는 글을 올리고 있으나 반대가 주류를 이룬다.

교수 학생들의 반발은 당장 물리적인 통ㆍ폐합은 없다고 하지만 결국 유사중복학과는 '시장논리'에 의해 통ㆍ폐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특히 산업계의 수요가 적은 학과는 우선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태다. 일자리를 잃을 수 있고 모교가 없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부산대도 다른 대학과 구체적인 합의는 이끌어 내지 못했지만 5월말 보고한 국립대발전계획안에 부경대와 해양대의 수산ㆍ해양분야를 통합하고 나머지는 부산대와 통합하거나, 해양대와 통합하는 안과 부산 창원 경상 부경 해양대 등을 중심으로 연합대를 구축하는 안을 포함시켰다.

이처럼 전국 44개 국립대학이 짝짓기에 나선 것은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립대발전계획안에 짝짓기를 하는 대학에 우선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기 때문.

교육부는 5월말까지 국립대발전계획안을 각 대학으로부터 받아 7월에 평가모델을 제시하고 8∼10월에 평가를 실시, 250억원의 지원금을 차등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교육부 대학행정지원과 최인엽(38) 사무관은 "총점 300점 가운데 100점이 발전계획안이고 이중 대학간 교류ㆍ협력과 공동발전계획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최 사무관은 "그동안 국립대 설립이 전체적인 교육목표나 수요 등 청사진없이 정치적 목적에 이뤄진 경우가 많아 난립상태"라며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수요자중심의 교육을 강화하기 조치"라고 설명했다.

즉 같은 권역내에 중복적인 학과개설로 인한 과잉인력양성을 해소하고 문학 사학 고고학 철학 수학 물리 화학 생물등 기초학문을 보호하는 한편 대규모 예산소요로 사학에서 하기 힘든 이ㆍ공계열, 인터넷 바이오테크 등 국가가 정책적으로 육성하는 분야에 주력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부의 의도대로 대학의 연합 내지 통ㆍ폐합이 시너지효과를 발휘, 윈- 윈게임이 될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의 일부를 통합의 성공사례로 평가받는 부경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학 통·페합, 윈-윈게임 될 수 있을까

부산수산대와 부산공업대학이 합친 부경대학은 통ㆍ폐합후 부산의 새로운 명문으로 부상하고 있다.

부경대 유동운 기획연구실장은 "통합전 신입생 수준이 부산공업대는 산업대라서 최하위권이었고 수산대도 겨우 중간정도였지만 지금은 부산대에 이어 2위"라고 강조했다.

유 실장은 "1994년부터 두 학교의 소수가 통ㆍ폐합을 추진했고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지속적인 설득으로 2년여만에 성공했다"며 "두 학교의 문화적 차이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고비를 넘기고 안정적 성장단계에 접어 들었다"고 말했다.

부경대의 성공에는 두 대학이 정치권이나 정부의 간섭없이 자발적으로 통ㆍ폐합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수산대는 수산ㆍ해양분야의 특성화대학이라는 이미지로 종합대학으로의 위상정립에 어려움이 많았고, 부산공업대 역시 산업대로 대학원과정이 개설되지 않아 교수들이 연구보조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등 연구환경이 열악했다.

유 실장은 "서로의 필요성에 의해 합쳤고 또 유사중복학과가 적어서 학내 구성원들을 설득하기에도 용이했다"며 "통합으로 우수자원이 몰리고 규모의 경제로 경상비를 절감해 이를 교육분야에 집중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대학간 연합이나 통ㆍ폐합은 무분별한 대학설립을 방치했다가 뒤늦게 당근과 채찍으로 통ㆍ폐합을 유도하기 보다는 스스로 연합하고 합치지 않으면 실패할 수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말해 정부는 분위기 조성 등 간접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구=정광진 사회부기자

입력시간 2001/06/06 15:23


대구=정광진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