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놀라게한 대주교의 결혼

카톨릭 대주교 밀링고, 신부는 3일전에 만난 한국여성

5월 27일 정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힐튼호텔 트리아논 홀은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신랑 신부 의상을 입은 60쌍의 커플과 이를 취재하려는 뉴욕타임스, AP, CNN, UPI, abc, Fox5, upn, 이탈리아 국영TV 등 세계 유수 신문 방송사 기자들로 홀 내부는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행사는 가톨릭 대주교를 비롯해 기독교 불교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의 신부, 목사, 승려 등 각기 다른 종교의 성직자 60명의 합동 결혼식.

로마 가톨릭 대주교로 20여년간 활동한 엠마누엘 밀링고(71)를 비롯해 각 종교의 성직자들은 이날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창시자가 주제한 축복 결혼식에서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다짐했다. 서로 이질적인 종교를 갖고 있는 이들이 결혼 복장을 하고 정렬해 있는 모습은 매우 생소해 보였다.

이들 신랑신부는 초혼인 커플에서, 이미 결혼한 상태에서 다시 성혼의식을 가지는 커플, 이혼했다가 재결합하는 커플 등 다양했다.

신랑은 흑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백인과 황인종이 섞여 있었으며, 신부는 일본 등 아시아계가 많았고 백인과 흑인이 일부 섞여 있었다.


존경받는 종교지도자, 교황청 '경악'

이날 결혼식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밀링고 대주교였다. 잠비아 출신인 그는 지난 20여년간 로마 교황청에서 봉직해왔다. 1958년부터 40여년간을 독실한 성직자로 지내온 그는 가톨릭내에서 존경받는 흑인 종교 지도자중의 한 사람이다.

1969년부터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 대주교직을 맡아오다 1983년 바티칸으로 옮겨 주교 업무를 보았으나 미사에서 악령을 쫓는 주술 행위를 한다는 이유로 지난해 9월 교황청으로부터 직무 정지처분을 받았다.

로마 교황청에서 고위 직책을 수행했던 대주교가 가톨릭에서 금기시 하는 결혼을, 그것도 공개적인 석상에서 타 종파의 주제하에 하는 것은 그야말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세계 유수 언론이 운집한 것도 밀링고 대주교의 이 같은 파격적인 행동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밀링고 대주교의 결혼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장 난감해 한 곳은 당연히 로마 교황청.

로마 교황청의 요아킨 나발로 발스 대변인은 결혼식이 거행되기 직전까지 "아직 밀링고 대주교로부터 정확한 진상을 듣지 않아 뭐라고 논평할 수 없다. 소문이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라며 "만약 그가 결혼을 하게 되면 교리에 따라 파문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결혼식을 취재하러 온 이탈리아 국영 TV 방송의 플라비오 푸시 기자는 "밀링고 대주교의 결혼은 로마 교황청에는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라며 "그간 밀링고 대주교가 흑인을 비롯한 유색 인종과 중산층 신도들에게 상당한 명망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크다"고 말했다.


"가콜릭 독신주의는 빈 껍데기" 독설

밀링고 대주교는 결혼식에 앞서 기자들에게 배포한 성명서에서 "교회와 사제로서의 서약에 일생을 바쳐왔지만 이제 인생을 영원히 바꿀 조치를 취하라는 하느님의 명을 받아 결혼식을 올린다"며 "그 조치(결혼)는 하느님의 은혜와 축복을 아프리카와 세계에 전달하는 수단이 될 것이며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어 "성서 창세기(1:28)에 쓰여 있듯 결혼은 그 자체가 하느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하는 것"이라며 "독신주의를 맹세했던 마음을 바꾸고 축복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계시와 참가정 이념을 실천해온 문 목사의 충고와 지지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통일교로의 개종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밀링고 대주교는 결혼식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로마 교황청에 대한 불만도 털어 놓았다.

그는 "1973년 하느님으로부터 내 스스로도 예상치 못했던 영적인 권능을 받아 아픈 자들을 치유하고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하느님의 권능을 물려 받았다"며 "그런 영적 능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들을 구제했는데도 교황청은 '성직자로서의 본분을 어겼다 '며 나를 비난했으며 심지어는 고소와 심문 조사를 하는 등의 박해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그간 교회의 유럽 중심적인 가치가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제한하였을 뿐아니라 아프리카인들이 자신의 가치와 영적 정체성을 발견하는데 많은 방해를 했다"고 교황청의 인종 차별에 대한 비난도 퍼부었다.

밀링고 대주교는 가톨릭 독신주의의 대해서도 독설을 쏟아냈다. 그는 "교황청의 독신주의는 이제 속 빈 껍질이요, 지켜질 수 없는 기준이 되어 버렸다"며 "교황청은 억압된 욕망으로 인한 사생아, 동성애 증가 등 비밀스럽고 소름 끼치는 각종 타락이 만연화 한 것을 솔직히 인정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밀링고 대주교의 부인이 된 마리아 성(Maria Sungㆍ43ㆍ본명 성순례)씨는 이탈리아에서 침술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이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소속인 성씨는 결혼식이 있기 3일전 문목사로부터 밀링고 주교와의 결혼을 요청을 받고 혼인을 결심했다.

이탈리아에서 생활하면서 밀링고 대주교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다. 결혼 소감을 묻는 기자 질문에 성씨는 "훌륭한 분을 만나게 돼 매우 기쁘다"며 "아직 사랑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겠다"고 차분히 대답했다.

밀링고 대주교는 기자회견장에서 "아기를 가질 수 있나"는 질문에 "그렇다(Yes)"고 답했다.

그는 "나는 지금 하느님이 가르친 것을 몸소 행하고 있을 뿐"이라며 "앞으로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 동포들을 위한 일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각 언론사 기자들이 궁금했던 것은 '과연 무엇인 이처럼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을 문선명 목사가 주재하는 축복 결혼식에 참여토록 했는가'하는 점이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관계자는 그 이유를 문목사가 추진하고 있는 실천 교리와 이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1990년대부터 '교회시대의 종말'을 선언하고 '이상적인 가정이 중심이 된 천국 실현'을 내세우며 1997년 통일교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명칭을 바꿨다.

그리고 1999년 2월 서울에서 120개 국가 대표들이 모인 가운데 인종 종교 국가 이념간의 갈등을 뛰어넘는 인류 공동체를 구현하는 것을 모토로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IIFWP)을 결성했다.

IIFWP 결성의 목적은 파벌과 국가주의로 가고 있는 유엔에 영향력을 행사, 유엔이 세계 평화와 참가정 실현에 기여토록 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취지를 알리기 위해 IIFWP는 지난해 8월 유엔회의장에서 이영철 북한 대사, 오스카 아이라스 노벨평화상 수상자, 밥돌 전 미국부통령, 에스워드 히스 전영국 총리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반도 군사 분계선을 비롯한 국경철폐를 제안했다.

이번에도 축복결혼식에 앞서 스타니슬라브 슈스케비치 벨라루스 전대통령, 스타인그리머 헤르만손 아이슬랜드 전수상, 제임스 M. 만캠 세실 초대 대통령 등 정치 지도자와 NGO 대표 등 120개국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화와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참가정 실천을 논의했다.


초종교 초국가연합 주관 행사

이번 행사를 주관한 곽정환 IIFWP 회장은 "IIFWP는 종교와 국가 인종이념 간의 벽을 뛰어 넘어 인류 평화를 실현하자는 숭고한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국제 민간기구"라며 "갈수록 세계 각국 지도자들의 지지와 성원이 늘어나고 있어 조만간 유엔의 상원 역할을 할 수 있는 막강한 기구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목사는 이처럼 교리와 교단을 중시하는 교회 중심주의에서 탈피, '가정', '인류 평화'같은 '초종교ㆍ초국가'등을 전면에 내세워 소외된 유색 인종들과 저개발국들을 하나의 종교 공동체로 묶는 전략을 펴고 있다.

그 곳에는 종교나 인종간의 갈등이 없고 오로지 하나의 하나님 앞에 평등한 인간만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백인들과 강대국에 소외됐던 흑인 등 유색 인종과 저개발국가들이 문 목사와 IIFWP에 동조하는 이유이라는 주장이다.

뉴욕=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6/06 16:03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