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서울 중구 만리동(萬里洞)

만리동은 서울역 뒤, 만리동 2가에서 마포구 공덕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름, 만리재(萬里峴)에서 비롯된 땅이름이다.

서울의 우백호(右白虎)격인 인왕산(仁王山), 안산(鞍山)을 잇는 산줄기 하나가 남쪽(원효로 종점)으로 뻗어 한강가에 멎고, 또 한줄기는 서쪽으로 뻗어 와우산(臥牛山)을 만들고 있다.

남쪽 방향 산줄기의 작은 고개가 '작다'는 뜻의 순 우리말 애오개(阿峴)이다. 애오개 남쪽에 '높다'는 뜻의 만리재가, 그리고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에 '큰 고개'라는 뜻의 대현(大峴)이 있다.

만리재는 조선조 세종 때 중신 최만리(崔萬里)가 살았다하여 '만리재'라는 설이 있으나 실은 '높다'는 뜻의 '마리재'가 꽤 설득력이 있다. '마리'는 동물의 몸부위에서 제일 높은 곳 '머리'의 본딧 말이다.

강화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 마리산임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마리산(麻利山)을 '세종실록'에서 두악산(頭岳山)으로도 쓰고 있다. 짐승을 헤아릴 때 한 마리, 두 마리를 일두(一頭), 이두(二頭) 또는 일수(一首), 이수(二首)라 하듯이 '마리=머리'다.

그러므로 남대문(崇禮門) 밖에서 서쪽으로 갈려면, 만초내(漫草川:旭川)를 건넌뒤 넘는 높은 고개를 일러, 마리재라 한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말리재로 됐다가 다시 이두식 표현인 만리재(萬里峴)로 변한 것 같다.

이 만리재는 옛날 해마다 정월 보름에 삼문밖(三門外) 사람들과 애오개 사람들이 편을 갈라 돌싸움(石戰)을 벌렸다고 한다. 싸움에서 삼문밖이 이기면 경기도에 풍년이 들고, 애오개가 이기면 다른 도가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었다. 이때 용산과 마포 사람들은 애오개편을 들었다고 한다.

만리재를 오르는 어귀인 만초내 위에는 '물떨어진 다리'가 있었다. 다리는 높아도 사람이나 짐승이 떨어져도 다치는 일이 없었다 한다.

또 '물 떨어진 다리' 남쪽에는 '험한 다리'가 있었는데 낮은데도 사람이나 짐승이 떨어지기만 하면 크게 다쳤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도시화로 만초내도 그런 다리도 가늠할 길이 없다.

조선조 때 재상 약봉(藥峯) 서성이 살았던 집터는 1918년 양정고보가 개교하면서 학교 운동장이 되더니, 1988년 학교가 목동으로 이사간뒤 '손기정 공원'으로 꾸며졌다.

'손기정 공원'이 된 데는 손기정(孫基禎)이 양정학교 출신으로 재학때(5학년)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대회에서 마라톤 금메달과 함께 세계신기록을 수립,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기 때문에 이를 기리고자 함이다. 한국 마라톤의 역사는 손기정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인으로서 마라톤에 첫기록을 낸 선수는 마봉옥이다. 마봉옥은 1927년 조선신궁체육대회에서 3시간29분37초로 우승을 차지, 한국 마라톤 첫 공식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이어, 인력거를 끌던 이성근이 1930년 대회에서 2시간36분30초로 최고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어찌되었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의 황영조와 2001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의 이봉주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는 김은배, 권태하, 서윤복, 함기윤, 송길윤, 남승용, 최윤칠, 이창훈, 김완기 등 많은 마라토너를 배출한 마라톤 왕국임에 틀림없다.

특히 주목할 것은 만리재에 자리한 '손기정공원:양정고등학교' 터에서만 손기정의 세계마라톤 제패를 비롯하여,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김은배 6위, 남승룡(베를린 마라톤 동메달)등 3명의 마라토너가 나왔다는 점이다. 마라톤과 마리재와 어떤 걸림이라도 있는 것일까!

입력시간 2001/06/1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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