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미국의 무기산업

미국은 개척자의 나라이다. 유럽 대륙에서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를 찾아서 세운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 선조들의 피를 이어받은 탓인지, 미국인들은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무엇이든지 새로운 것을 찾아 모험의 길을 떠나는 것이 바로 미국의 정신이다. 이러한 개척 정신이 미국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고 오늘날 초강대국 미국이 있게 한 힘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

물론 시기에 따라 다소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역사는 안팎의 적들과의 끊임없는 다툼으로 이어진다.

식민지 정착 초기에는 원주민들과 생존을 건 다툼을 벌였고, 식민지가 정착되자 영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다툼이 있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성취하고서는 서부 개척으로 인한 인디언과의 다툼이 계속됐다.

산업혁명의 물결이 들이닥치자, 이번에는 신흥 산업 세력과 전통 농업 세력이 대립하여 마침내는 남북전쟁이 일어났다.

이렇게 국내 체제를 정비한 미국은 20세기 들어 그 동안 축적하였던 힘과 광대한 자원을 바탕으로 세계 열강의 경쟁 대열에 뛰어들었다.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형성된 냉전질서 하에서 소위 자유진영의 기수로서 구 소련을 상대로 군사, 경제, 외교, 우주개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무한 경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지면서 미국은 더 이상 경쟁의 대상이 사라졌다. 대상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당분간은 미국에 대적할 만한 상대가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그 동안 끊임없는 분쟁과 전쟁으로 먹고 살아온 미국의 국방산업들이 갈 곳을 못 찾고 방황하고 있다. 국방산업이라고 하면 우선 전투기나 탱크, 미사일, 잠수함이나 항공모함 등을 만드는 회사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단 이런 무기 산업뿐만 아니라, 핵 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전산망과 통신망, 정보 보안을 위한 암호 산업, 비상시 물자의 신속한 배치를 위한 물류산업 등의 소프트 산업들도 많이 있다.

미국의 방위산업체에게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바로 미국의 적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미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구권이 붕괴하고, 지난 10년간 국방 수요가 크게 줄어들자 많은 방위산업체들은 자신의 첨단 기술을 일상 생활에 활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인터넷이 대표적인 예이다. 잘 알다시피 인터넷은 미국 국방부에서 핵전쟁에 대비하여 적의 가상 핵 공격이 있을 때에도 이를 견뎌낼 수 있는 통신망으로 건설한 DARPANET을 모체로 하여 발달된 것이다.

거기다가 국방 산업 분야에서 닦은 숙련된 기술과 지식으로 무장한 기술자들이 대거 민간 산업 분야로 들어가면서, 또 상업적 이익이 결부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외에도 통신위성이나 휴대 전화의 개발 등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민간 분야로 사업을 전환하지 못한 기업들은 합병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도 차세대 전투기 사업으로 잘 알려진 맥도널 더글러스사는 보잉사와 합병하였는가 하면, 그루만사도 노드롭 항공사와 합병하여 노드롭그루만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뉴포트 비치 조선소는 현재 제너럴 다이나믹스와 합병 협상을 진행 중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회사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엄청난 광고와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를 뒤적거리다 보면 적어도 한 두 군데에서는 보잉이나 제너럴 다이나믹스와 같은 회사들의 기업광고가 눈에 뜨이지 않을 때가 없다.

이제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국방정책을 마련한다고 한다. 부시 선거 공약중의 하나가 국방예산의 증가였으니 만큼 새로운 전략의 도입과 함께 그에 맞는 무기체계의 구입도 이루어질 것이다.

러시아는 물론이려니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동맹국의 지지도 얻지 못한 상황에서 미사일 방어(MD)체제를 구축하려는 배경에는 생존의 길을 모색하려는 국방 산업의 입김과 영향력도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군사비 지출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어디서든 분쟁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중동지역과 함께 여전히 분쟁 가능성이 높은 곳이 한반도다. 어리석은 정쟁과 감정 싸움으로 미국 국방 산업의 희생양이 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1/06/1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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