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상선 NLL·영해침범] 잃은 것 없는 북한… 정부·군은 난천

북한 상선 영해침범이 남긴 것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 침범과 북방한계선(NLL)통과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갈팡질팡하고 있다.

정부는 당초 북한이 영해를 침범한 다음날인 6월3일 국가안보회의(NSC)를 열어 북한의 도발을 추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북한이 사전통보나 통항허가 요청 등 필요할 조치를 취할 경우에는 제주해협 통과를 긍정적으로 검토키로 했다.

하지만 정부는 7일 대응태세에 대한 비난여론과 야당의 반발이 들끓자 무력사용을 포함한 강경대응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김동신 국방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차후 북한 비무장 선박이 영해를 침범하는 사례가 재발할 경우 교전규칙과 작전예규에 따라 무력사용 등 강경 대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NLL에 대해서도 “현행 교전규칙을 적용해 절대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직책을 걸고강경대응을 강조했지만 ‘차 떠난 뒤 손 흔드는’ 인상을 주었다.


정부 “또 들어오면 강경대응”

정부의 이 같은 혼란에 대해 한국해양전략연구소의 김현기 박사는 “국가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를드러냈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혜롭게 대처하라”며 포괄 위임을 하고 NSC는 햇볕정책을 우선하는 상황에서, 해군은 상부지시를 기다리느라 꼼짝못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제주해협 영해침입은 NLL 통과와는 비교가 안되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영해침범이 안방침입이라면 NLL 통과는 담장을 넘는데 비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명백한 영해(제주해협)침범을 단순한 통과로 규정하는 자체가 정부의 인식한계를 노출했다는 견해도 있다.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 침범과 NLL 통과는 유야무야 넘길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남북간에 결말을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남북한 상호주의에 근거한 해운협력합의서 체결방안이 그 중 하나다. 남북한 양측 민간상선이 상호 영해에서 무해통항권을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북한은 국제법상 근거가 없는 50해리 군사수역 선포를 철회해야 한다.

정부도 이 같은 과정을 상정하고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정부가 5일 NLL 무단통과 강력 항의, 대북지원물자 수송선박의 제주해협 이용 허용, 남북 해운합의서 체결 등 3단계 대책을 마련한 것은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정부의 후속조치는 북한의 다양한 의도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을 토대로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복수의 목적을 갖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북한 상선이 밝힌 ‘새로운 항로개척’ 목적이다. 제주해협을 통과하는 것이 제주도 남단을 우회하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면에서 매우 경제적인 만큼 실질적 이득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ㆍ외교적 목적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확인하고 응수타진하는 수단이라는 추측이다. 나아가 미국에 대한 모종의 제스처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군사적으로는 남북관계가 비교적 우호적일 때 무해통항권을 확보함으로써 남해에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의도가 거론된다.

이와 함께 NLL 문제를 남북한 정치ㆍ군사적 의제로 만드는 효과도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의도를 가졌든 북한은 상당부분성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무해통항권과 NLL 문제를 한국내에서 논란거리로 만드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제주해협의 무해통항권을 획득한다면 동ㆍ서해 영해에서도 추가적인 주장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동해의 경우 북한 상선은 독도 바깥으로 우회하는 기존항로 대신, 동해안과 울릉도 사이로 항해해 NLL을 통과할 경우 2~3일을 절약할 수 있다.


무해통항 허용시 전력 재배치해야

제주해협 무해통항권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해군측은 곤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군사적 부담감과 통항선박에 대한 감시능력 한계 때문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군은 일차적으로 무해통항인정은 안되고, 인정하더라도 북측 군함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아울러 상선에 대한 무해통항도 아군측 세력배치가 완료된 뒤 인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군측 세력배치란 제주해협을 커버할 해군함정 확보를 말한다. 기존의 해군력 편성과 전술 초점은 동ㆍ서해에서 기동하는 북한 함정을 저지하는데 맞춰져 있다.

동ㆍ서해 중심 전략은 앞으로 제주해협을 북한 상선에 개방한다 하더라도 바꾸기 어렵다. 하지만 현재 남해를 맡고 있는 3함대 전력은 북한 상선을 통신ㆍ시각ㆍ정밀검색을 통해 파악하고 호송감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제주해협을 통과하는 각국 상선은 하루 평균 400척 이상이다. 해군 관계자에 따르면 이 같은 상황에서 북한 상선을 파악ㆍ감시하려면 제주해협을 격자형으로 상시 커버할 9개 전단이 필요하다.

3,500톤급 KDX-1 이상의 구축함을 주축으로 한 각 전단에는 초계함, 호위함, 고속정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9개 전단만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다. 각 전단이 통상적인 보급, 수리, 휴식 등을 위해 3교대한다고 계산했을 때 총 27개 전단이 필요하게 된다.

해상 뿐 아니라 육지에서도 세력배치를 해야 한다. 해안 고지대의 전방탐지 레이더 증설, P-3C 대잠초계기 증편, 긴급 출동대기할 해병대 및 특수부대, 공군 배치도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해군은 제주해협 개방이 동ㆍ서해 영해 개방으로 확대될 가능성에도 우려하고 있다. 이 지역에도 상당한 세력배치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6/12 20:51


배연해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