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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여행] 투코리언스

벽오동 한 곡에 가요계가 '와뜨뜨뜨…'

건장한 남성 듀오 투코리언스가 뿜어대던 열정적 하모니와 현란했던 애드립. 당시에는 ‘씨끄러운 노래’라고 일부 배척도 당했다.

그러나 포크, 락, 재즈 등 장르를 가리지않고 넘나든 이들의 노래가락은 오히려 30년이 지난 요즘 마니아들을 더욱더 열광시키고 있다.

대표곡 ‘벽오동’은 발표때부터 지금까지도 불리어지는 국민 가요급 노래. 특히 익숙한 대중가요와 민요들을 자신들만의 독특하고 맛깔난 애드립으로 재해석한 수많은 곡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원곡을 능가하는 음악적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다.

리더 김도향. 학창시절은 평범치 않았다. 명문 경기고 출신이면서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선택한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

“고3때 처음으로 기타를 잡았지만 음악점수는 늘 낙제였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자신이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가수‘임을 고백한다. 노래는 군시절 3군단 사령부 미군사고문단이 있던 클럽에 놀러가 무대의 펑크난 시간을 때우기위해 급조한 4인조그룹을 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악기를 다루지 못해 4시간동안 노래만을 불렀는데도 미화 30불을 받게될 정도로 인기를 끌어 1년동안이나 활동을 했다. 이때는 탐 존스의 노래들이 주레퍼토리였고 ‘노래를 하면서 3-4번이나 목에서 피가 나왔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한다. 제대할 무렵엔 1,000여곡의 레퍼토리를 갖출 만큼 프로가 되어버렸다.

제대후 김도향은 영화 조감독생활을 해보지만 돈을 벌 수없어 꿈을 접었다. 독자인 그는 모셔야 될 어머니가 있어 가장역할을 해야만 했다. 69년 당시 1,000여곡의 팝송 레퍼토리를 소화해내는 가수는 전무했다.

김도향은 5, 6곳의 밤무대에서 눈코뜰새없이 노래를 불러 돈을 벌었다. 정식가수로 데뷔를 시켜준 장본인은 신촌카바레에서 함께 공연하던 최고 인기가수 이미자.

김도향의 노래에 반했던 이미자의 소개로 70년1월 활발한 방송활동과 함께 ‘난이야’ ‘불나비’등 김강섭작곡 노래들과 여대영작곡 ‘천하일품’ 등이 수록된 독집음반을 2장이나 발표했다.

그후 포크열풍에 휩싸여 명동 청개구리에서 사회를 보며 공연하고 있을 때 군예술대 파견근무시절 만났던 손창철이 찾아와 듀엣결성을 제의했다. 이백천의 소개로 일주일간 연습해 출연한 실내수영장 개관TV프로.

이때 부른 ‘벽오동’ 때문에 장안은 온통 난리가 났다. 익숙한 민요풍의 리듬에 시원하게 뽑아대는 ‘와뜨뜨뜨...’대목은 유행어로 번졌을 정도.

한번의 TV출연으로 뜨거운 반응을 접한 투코리언스는 70년 9월 정식으로 데뷔를 했다. 어려운 미8군 오디션을 통과해 패티김, 김상희 스페셜 8군쇼무대에서 활약하면서 발표했던 데뷔음반 <벽오동-신진레코드,SJ-2-7130,71년4월>.

이미 뜨거운 반응속에 발매된 이 음반은 공전의 히트몰이로 재판을 수차례 발매했을 정도. 당시 언론들은 ‘재래적 민요가락을 변조시킨 기획이 이색적이며 섬세한 화음보다는 노랫말의 의미를 앞세운 해석력에 호감이 간다’고 호평을 하였다.

1집은 매끄럽게 노래하기보다는 ‘악을 쓴다’는 혹평을 들을 만큼 투박한 감각이 오히려 돋보였던 음반.

줄지어 출시된 번안곡위주의 2집 <잊어버려/그대-대도레코드, EU717, 71년1월11일>, 3집 <마미블루/언덕위에 올라- 대도, EU718, 72년3월1일>.

팝송‘GREEN GREEN'을 번안한 ‘언덕위에 올라’와 ‘마미블루’는 지금껏 마니아들의 뇌리에 강하게 기억되는 히트곡. 같은 레퍼토리를 선호하는 손창철과 다양한 레퍼토리로 변신하고픈 김도향 사이의 음악적 이질감은 시련의 씨앗. 거듭된 음악적 충돌은 72년10월 팀해체라는 쓰디쓴 파경으로 이어졌다.

해체후 김도향은 탤런트 생활과 ‘줄줄이 사탕’등 CM송(3,000여곡 작곡)에 몰입해 상당한 돈을 손에 쥐기도 했다.

반면 손창철은 차도균과 듀엣을 결성해 2기 투코리언스로 미8군에서 재기를 시도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고 실의의 나날을 보냈다. 김도향은 어려운 생활을 하는 손창철의 소식을 접하고 의리 때문에 73년 투코리언스를 재결성했다.

4집 <젊었다-오아시스, OL1492, 74년2월7일>, 5집 <투코리언스-대도, DSO0030, 74년8월10일>은 재결성후 발표한 이들 음악의 결정판. 온갖 장르를 섭렵하며 현란한 애드립으로 리메이크의 진수를 보여준 음반들이다.

활동 재개는 오래가지 못했다. 75년 김도향이 대마초사건으로 구속된 것이 결정적 이유. 김도향이 구속되자 손창철은 결혼을 핑계로 미국으로 도피해 버려 듀엣은 자동 해체가 되었다.

구속과 함께 자격정지 조치를 받았던 김도향은 ‘난 바보처럼 살았군요’ ‘꿈의 대화’ 등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부활’했다.

그후 도(道)사상에 심취해 10년동안 혼신의 정열을 쏟아부은 태교, 선(禪)등과 관련된 독특한 음악세계.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을 정도로 음악적 완성을 이뤘다.

요즘은 20여년만에 발표할 독집준비로 분주하다. 수록될 12곡은 트로트로부터 포크, 락, 재즈 심지어 시조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른 장르의 곡들. 그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음악이 어떤 빛깔일지 궁금한 것은 늘 시대를 앞서간 그의 음악성 때문이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2001/06/2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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