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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들여다보기] 음주와 나이

몇 해 전의 일이다. 그날은 우리 집 ‘신부’ (우리 집 아이 엄마를 필자가 부르는 호칭은 ‘신부’이다)의 생일날이었다.

미국에 와서 살면서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하면서 외식 한번 제대로 못해본 ‘신부’를 위해 생일을 핑계로 모처럼 동네 근처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에 가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흔히 남들이 하는대로 음식을 시키기 전에 와인 한잔을 마시려고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한잔씩을 주문했다. 우리는 와인을 기다리면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 궁리하면서 잘 모르는 이탈리아어로 쓰여진 메뉴를 뒤적거리면서 이것 저것 골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웨이터는 레드 와인 한잔만을 가지고 와 내 앞에 내려놓으면서 상당히 멋쩍은 표정으로 ‘신부’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였다.

깜짝 놀라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더니 매니저가 나이를 확인하기 전에는 ‘신부’에게 술을 줄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흐뭇해 하는‘신부’에게 (여자들에게 젊어보인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아부인데, 이제는 젊어보인다는 정도가 아니라 어려보인다고 하였으니 어느 여인인들 흐뭇해 하지 않으랴) 빨리 운전면허증을 꺼내 보여주라고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따라 ‘신부’는 운전 면허증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전후 사정을 설명하며 생일 기념 저녁 식사이니만큼 와인 딱 한잔만 마실 수 있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 하였지만 정중하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결국 그 날 저녁은 와인 한잔의 건배도 없이 끝났지만, 우리 집 ‘신부’는 가장 기억에 남는 훌륭한 생일 선물을 받은 날로 기억하고 있다.

미국의 음주 연령은 주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주는 만 21세 이상이 되어야만 적법하게 술을 마실 수 있다.

그리고 만 21세 미만인 사람에게 술을 팔았을 경우에는 심한 제재조치를 받는다. 그래서 때때로 슈퍼마켓에서 맥주를 사거나 거리의 술집에 들어가다가 종업원들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면서 제지하는 흐뭇한 경험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불혹의 나이가 된 사람에게까지도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것을 보면, 적어도 이들이 얼마나 음주 연령을 준수하려고 하는지 능히 짐작이 간다.

얼마 전 미국 언론들은 부시 대통령의 쌍둥이 딸들이 미성년음주로 경찰에 적발된 것에 대해 크게 보도했다. 어떤 신문은 주요사건으로 다뤘고, 또 어떤 신문은 미국의 가정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문제라며 대통령의 가정이라고 해서 특별히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식으로 쓰기도 했다.

사건의 내용은 대학교 1학년을 마친 부시 대통령의 쌍둥이 딸 바바라와 제나가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텍사스 오스틴의 한 나이트 클럽에 들어간 것으로 시작된다.

텍사스 주립대학을 다니는 제나가 예일대학에서 1학년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바바라를 위해 술을 시키면서 같이 왔던 나이 많은 친구의 신분증을 마치 자신의 것인양 속여 주문했던 것이다.

이를 알게 된 나이트 클럽에서는 술을 갖다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남의 신분증을 허위로 제시한 혐의로 제나 부시에게 티켓(스티커)을 발부했다.

제나가 특히 여론의 비난을 받은 것은 그녀가 이미 몇 주전에 동일한 죄목으로 티켓을 받은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성의 기미 없이 또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법정 음주 연령이 지금은 만 18세로 내려왔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 20세 였었다.

미국식 기준에 따른다면 대한민국의 수많은 대학 신입생들은 그동안 불법음주를 한 것이며, 대학로나 신촌 등 대학교 앞의 학사주점들은 벌써 문을 닫았어야만 했다.

워낙 지켜지지 않는 법이 많은 우리 나라이다 보니 새삼스러운 발견은 아니지만, 술만큼은 법과 현실의 괴리가 오히려 아련한 추억의 산실을 마련해 주는 것 같아 별로 고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데, 술집 문앞에서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할 때 느끼는 당혹감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박해찬 미HOWREY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parkh@howrey.com

입력시간 2001/06/2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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