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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서울대 떠나는 ‘축구공 위의 수학자’ 강석진 교수(上)

"학자의 본연의 길을 가는 것"

서울대 수리 과학부 강석진(40)교수를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앞으로 약 2주후인 7월부터는 서울대 교수가 아니다. 남보기엔 아쉬울 것 하나없는 국내 최고명문대학의 자랑스러운 교수직을 그만두고 고등과학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 유서깊은 간판지상주의 사회에서 내린 그의 결정은 일반인들에게 먼저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는 1999년 과학기술부로부터 ‘젊은 과학자상‘까지 받았던 국내수학계의 주목받는 대표주자중 한 사람이었다.

또한 모교의 자연대 축구부 감독직을 본업 못지않게 사랑하던, 대단한 축구광이었다. 누구보다 팀웍과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던 그가 평생 봉사의 다짐을 포기하고 8년만에 모교를 떠나게 된 것은 분명 심상치않은 변화였다.

왜 그는이삿짐을 꾸렸을까. 6월 14일, “이런 일로 언론에 노출되고 싶지는 않다”던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처럼 밖으로는‘명랑쾌활’을 가장하는 그였지만, 그의 씩씩한 웃음이 오히려 쓸쓸한 여운을 남겼다.

학자도, 서울대 동문도 아닌 이쪽에게 말이다. 우선 그와의 이야기를 옮겨적는다.

강교수의 대답이 다소 길더라도 양해해주기 바란다. 그의 이야기는 정말 그 자체로 길었다. 가슴답답한 무엇인가를 안고있는 사람들에게서 영낙없이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행여 다른 교수들에게 누를 끼치지나 않을까 몹시 조심스러워 하더라는 것도 덧붙여야겠다.


-언제부터 생각했던 일인가?

“고민은 처음부터 많았다. 94년 이곳에 처음 부임했을 때부터 앞이 캄캄했다. 미국 노틀담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던 중 왔는데, 닥친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전임자보다 적은양이라고 하는데도 그랬다.

그 갖가지 행정업무에 파묻혀 정작 학자로서 연구에 투자할 시간이 없다는데 대한 갈등이 오래도록 누적돼 왔다.

그러다가 99년부터 1년간 미국에 교환교수로 갔다가 돌아온뒤 결정적으로 내진로를 재고하게 됐다. 함께 공부했던 외국의 동료학자들은 내가 여기서 잡무에 묻혀있는 사이 이미 내가 뒤따라잡기도 벅찰만큼 계속적인 연구로 큰 발전을 보이고 있었다.

미국에서 보낸 1년동안 그래서 필사적으로 그것을 만회하려고 애썼다. 이 기회가 아니면 한국에선 기본적인 리서치도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1년을 그야말로 피터지게 보냈다.

골프 한번한 일 없고, 집사람은 도대체 미국까지 와서도 왜 이래야 되냐고 속상해 할 만큼 치열하게 보냈다. 나중엔 찾아온 동생까지도 연구시간을 뺏는다는 생각에 밉기까지 했다.

더 답답한 일은 그렇게 미국에 있는 동안 이미 머릿속에 다 해결해 둔 과제들도 다시 학교에 돌아오자 단지 그걸 논문으로 옮길 시간을 낼수가 없어 6개월간 손한번 못 대보고 지나가야 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 환경에선 내가 원하는 수준의 연구를 영원히할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돌연사도 남의 얘기같지 않았다. 95년부터 위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해 96년부터 위염, 불면증을 앓아왔고 작년엔 지방간까지 생겼다.

두달만에 13kg이 빠지기도 했다. 지금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나중엔 내가 왜 공부를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자꾸 나를 변명하는데만 익숙해질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떠나는 것이다.”


-연구시간을 빼앗기는 일들이란 주로 어떤 것인가?

“다 열거하기 어려울만큼 시시콜콜한 일들이 많다. 전공강의 자체도 상당한 준비와 시간을 요하는일이지만, 그외에도 갖가지 학회에다 연구비를 신청하거나 프로포절을 쓰는 일, 어떤제도가 바뀔 때마다그 제도가 바뀌는데 대한 사전 자료조사와 분석, 그리고 수시로 찾아오는 학생들과 상담하는 일등 매일 무슨회의나 문서작업들이 끊임없이 밀어닥친다.

내가 소속된 위원회만도 여러가지다. 방학땐 방학대로 또 맡겨지는 일이 있다. 처음엔 과기대나 포항공대로 옮길것을 생각했다가도 그곳 역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상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방법은 강의를 포기하는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교수들도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

“그렇다.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든 교수들도 많을 것이다. 그들은 정말 초인적으로 버티는 것이다. 서울대가 오늘날 이만큼이라도 발전한 건 교수들의 헌신적인 공헌과 희생 덕분이었음을 알아줘야 한다.

다만 나는 더 이상 초인노릇을 감당할 수 없기에 떠나는 것이다. 남들은 왜 서울대가 세계수준에 미치지 못하냐고 비난하지만 서울대 교수들이 가장 괴로워하는 것이 뭔지 아는가?

그들도 세계수준이 뭔지 안다. 어떻게 하면 그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그 방법도 훤하게 안다. 그들중 상당수가 그 스스로 얼마전 그 세계무대의 스타이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서 뻔히 방법이 보이는데도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예 모르면 그런 갈등도 없겠지만, 할수 있는 능력이 있고 자신도 있으며 의욕도 있는데 당장할 수가 없으니 더 초조하고 고통스럽다. 가끔 술자리에선 절친한 교수들이 내게‘배신자’ ‘도망자’라는 농담도 하지만, 아무도 정색으로 만류하는 사람은 없었다.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지 서로가 잘 알기에 차마 붙들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전 BK21 일로 찾아온 외국의 교수들은 우리더러 어떻게 그토록 전쟁처럼 사는지 놀랍다며 ‘무엇보다 교수들이 먼저 전사할까봐 가장 걱정스럽다’고도 했다.”


-국립대 교수들의 낮은 연봉문제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자리를 옮기는데 현실적인 대우문제가 작용하진 않았는가?

“전혀 무관하다고만은 할 수없다. 하지만 돈 때문에 옮기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나는 연구비나마 서울대내에서도 잘 받는 축이었다. 그래서 ‘남보다 더 좋은 처지이면서 왜 나가려고 하느냐’며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나는 학자다. 연구로서 인정을 받고 싶다. 사실상 지금까지도 국내에선 남에게 뒤지지 않을만큼 공헌했다고 자부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가 자기자신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다.

연구만 마음껏 할 수있다면 돈이야 먹고 살 만큼만 받아도 참을 수 있다. ‘그렇게 돈이 중요하면 돈많이 주는 곳으로 옮기면 되지 않느냐’고 우리끼리 흔히 말하기도 했다.

대우가 열악한데도 왜 서울대에 교수들이 남아있는지 그 이유를 한번쯤 생각해봐줬으면 좋겠다. 나 역시 피치못해 옮기기는 하지만 당장 얼마만큼의 성과가 나타날지는 장담할 수없는 일이다. 어쨌든 이렇게라도 하지않으면 평생 후회하게 되리란 것만큼은 확실하다.


-현재 상황에선 전혀 대안이 없다는 얘기인가?

“업무가 대폭 줄거나 교수들이 많이 충원되지 않는 한 현재의 환경에선 별 방법이 없어 보인다. 개인적인 노력과 체력엔 한계가 있다. 그간 어떻게든 연구시간을 확보하려고 나름대로 많이 애썼다. 연구실에 들어서면 무조건 핸드폰을 끄고 전화선도 뽑는게 내 습관이었다.

방해를 받지않기위해서다. 주말엔 완전히 연락두절한 채 전혀 엉뚱한 곳으로 잠적하기도 했다. 어떨땐 연구실 불도 끄고 문도 잠근채 어둠속에서 숨죽이고 공부를 한적도 있지만, 그 와중에도 불꺼진 연구실 문을 두들겨대며 가지않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등과학원은 어떤 곳인가?

“아인슈타인박사를 비롯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도 여럿 배출한 프린스턴의 전문연구기관을 모델로 우리나라 과기부에서 세운 카이스트 부설연구기관이다.

설립 5년째를 맞는데, 국내에선 최고의 연구환경이다. 그곳에 가면 정규강의가 없기 때문에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할수 있다. 사실 학생들과 헤어진다는게 나로선 가장 아쉬움이 크다.

그 때문에 고민도 많았다. 내겐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잘 맞았고, 강단에 서지 않는 내 인생은 이제껏 한번도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내가 강의없이 얼마나 잘 버틸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는건 사실이다.


-얼마전 강 교수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면 서울대를 등진다기보다는 오히려 떠나는 시점에서야 밝히는 애정고백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서울대를 바라보는 외부사람들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은것 같은데...

“내가 떠나는 것은 다분히 개인적인 사유에서 내린 결정이다. 누가 뭐래도 서울대 자체는 그 구성원들의 희생적인 노력에 의해 그간 많은 발전을 해왔고, 지금도 열심히 잘 하고 있으며 희망도 있다.

다만 여건때문에 그 속도가 외부의 기대치만큼 이르지 못하는 점은 안타깝다. 그런데 언론이나 외부 사람들은 서울대에 대해 웬지 모를 적대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관련된 모든 보도나 여론이 마치 우리가 얼마나 무능하고 하찮은 수준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그어떤 통계자료든 그결론은 언제나 서울대가 멍청하거나 나태하다는 식이다. 교수들부터가 마치 타대학보다 대단한 특혜를 누리면서도 연구비만 축내며 판판이 노는 후안무치의 인간들처럼 나오는가하면 최근엔 서울대 학생들까지 머리 나쁜 저능아에다 놀기만 좋아하는 아이들처럼 보도되는 걸 보았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그건 서울대생만의 얘기도 아니고, 그자체도 교육정책의 실패가 낳은 결과다. 본질은 놔두고 죄없는 학생들에게 또한번 고통을 주었다. 서울대의 국제학술논문인용색인(SCI)만 해도 최근 전세계 55위 수준이라며 한심해하지만 내가 처음 왔을땐 800등쯤이었다.

불과 몇년만에 이만큼 올랐으면 누가봐도 놀라운 발전이다. 더구나 이처럼 열악한 조건에서 그정도까지 올랐다면 나름대로 사력을 다 한것이다. 그런데도 이런점을 그대로 인정해주기는 커녕 여전히 ‘무능한 학교와 학생, 교수‘로 이야기가 끝난다.

우리는 변하고 있는데 왜 언론이나 여론의 결론은 8년전이나 지금이나 늘 똑같은지 상식적으로도 이상하지 않은가. (지면상 각 사항에 대한 그의 항변을 다 실을 수 없어 아쉽다. 통계자료에 빗댄 여론의 비난이 왜 부당한 몰매로 비치는가에 대한 그의 설명은 사실상 설득력이 있었다.)

이건 생산적인 채찍질이 아니다. 차라리 외국에서 공부하거나 일하면 훨씬 좋은 조건이 보장됨을 알면서도 굳이 이곳을 지키며 나름대로 국가대표급 학교로서의 위상을 높이려고 눈물겹도록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줬으면 한다.”


-축구 얘기를 하자. 재학때부터 서울대 자연대 축구부에서 뛰기 시작해 현재도 감독으로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데, 앞으로 서울대를 떠나도 축구에 대한 애정은 여전할 것인가?

“나는 자연대 축구부를 떠나는게 아니다. 비록 감독은 못 맡겠지만 앞으로도 일주일에 한번은 여전히 축구부에 올 것이다. 달라질게 없다.

오히려 옛날보다 더 자주 축구를 즐길수 있을 것 같다. 이곳에서 축구를 하기 위해서라도 낙성대 집에서 이사할 생각이 없다. 미국에서 돌아올 때 평생 서울대에 몸바치겠다고 일부러 그 부근에 집을 얻느라 별별 고생을 다 해서 찾은 집이었다. <계속>

정영주 자유기고가 mar10@chollian.net

김명원 사진부 기자 kmx@hk.co.kr

입력시간 2001/06/2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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