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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비밀] 비밀인가 알권리인가

북한 상선 교신문 국방위 유출 공방

북한 상선 청진2호와 해군의 교신문이 누출돼 ‘남북 밀약설(이면 합의설)’로 비화하면서 여야 정쟁이 첨예화하고 있다.

해군이 6월2일 제주해협을 침입한 청진2호를 통신 검색하는 과정에서 주고받은 이 교신문은 ‘군사3급비밀’로 분류돼 있었다. 이 비밀문건은 영해침범 사건 조사를 위해 국회 국방위 소속의 한나라당 박세환 의원이 자료로 요청하면서 합참이 제출했다.

당초 비밀문건을 갖고 온 합참의 주모 중령은 박 의원과 1대 1로 면담하면서 자료를 제출하려 했다.

하지만 주 중령이 박 의원 사무실로 왔을 당시 박 의원은 자리에 없었다. 이때 박 의원의 보좌관인 오모씨가 나서서 “비밀취급 인가증을 갖고 있다”며 문건을 건네 받아 복사하려 했다.

주 중령이 이를 제지하자 오 보좌관은 “내가 책임지겠다. 복사한 것이 아니라 메모했다고 하라”며 총 25쪽에 달하는 비밀문건의 상당부분을 복사했다. 오 보좌관이 비밀취급 인가증을 갖고 있는지, 갖고 있다면 몇급까지 취급할 수 있는 인가증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오 보좌관이 복사한 문건은 곧 언론에 유출돼 한나라당의 정부 공격용 빌미가 됐다. 유출된 교신문 중 문제 부분은 “작년 6ㆍ15 북남 협상 교환시에도 제주도 북단으로 항해하는 것은 자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으로 결정된 것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는 것이다.

청진2호의 이 주장은 사실일 경우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에서 제주해협 무해통항권(無害通航權)이 합의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국군기무사령부는 비밀 유출과 관련해 합참의 주 중령과 오 보좌관을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기무사는 6월20일 오 보좌관에게 출두요구서를 공식 발송해 26일께까지 기무사로 출두해 줄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오 보좌관은 “출두 여부는 당 지도부에 일임한 만큼 당의 의사에 따르겠다”며 일단 거 부의사를 밝혔다.

기무사의 방침에 대해 여야간 논전은 남북 밀약설과 별개의 ‘군사비밀 적합성’ 논쟁으로 빗나가고 있다. 교신문 자체가 비밀이 아니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크게 2가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선 군당국이 이미 교신문을 부분적으로 언론에 공개했고, 둘째 모든 내용을 북한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교신문이 비밀로 분류됐건 말건 내용적으로 비밀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이에 반해 기무사측은 특정 사안을 비밀로 분류하고 관리하는 게이트 키핑(Gate-keeping) 기능은 군사기밀보호법에 따라 군당국의 몫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교신문이 형식적으로 군당국에 의해 군사3급비밀로 분류돼 있는 만큼 정치권은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내용성에 대해서도 기무사측은 “시각에 따라 비밀성을 가질 수 있다”며 한나라당과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통신검색하는 방법과 저지에 나선 해군함정의 위치 등은 제3자에게 해군의 대응조치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기무사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민간인인 오 보좌관을 조사하는 것은 법적인 하자가 없다. 민간인도 군사문제와 관련돼 있으면 군검찰이 출석요구서를 발부할 수 있다.

기무사측은 오 보좌관을 강압적으로 연행할 생각은 아직 하지 않고 있다. “인내심을 갖고 절차에 따라 출두를 요구할 것이며, 오 보좌관도 이에 응해주리라 기대한다”는 것이 기무사측의 발언이다.


군사비밀 양산, 웬만한건 다 비밀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군사비밀뿐 아니라 군사기밀에 대한 정치권의 태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우선 군사비밀이 지나치게 양산돼 있다는 지적이다. 현실상 비밀로 볼 수 없는 것도 비밀로 분류돼 있어 비밀과 공지의 사실을 혼동시킨다는 것이다. 웬만하면 보안규정을 안 따지고 비밀로 분류해 버리는 행정편의주의가 큰 원인이다.

이번 사태에서도 일부 교신 내용을 공개했던 군이 공개하지 않았던 것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커지자 수사에 나섰다. 엄밀히 말하면 교신 내용을 부분적으로 공개했던 국방부 관계자도 수사 대상인 셈이다.

이와 더불어 기존의 비밀을 상황에 따라 재분류하는 작업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것도 문제다. 군 발주계약의 경우 군이 비밀로 분류한 계약서를 민간업자는 사업상 공개리에 사용한다거나, 심한 경우 신문 스크랩까지 비밀로 분류되는 촌극이 벌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군사비밀에 대한 정치권의 태도에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지적된다. 교신문 유출 사건의 경우 형식적으로 비밀요건을 갖추고 있는 문건이 여야 정쟁의 와중에 희생(공개)됐다는 것이다.

군사비밀을 접할 자격이 주어지는 국방위 소속 의원은 권리와 동시에 비밀을 보호할 의무도 진다. 비록 보좌관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군사비밀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공개됐다는 사실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비판이다.

이와 별도로 공직사회의 보안 불감증도 거론된다. 정부의 국책사업 자료를 비롯해 대북경협과 관련된 국가안보회의(NSC) 회의자료가 빈번하게 유출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정보 관계자들은 이 같은 기밀 유출 원인으로 크게 3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정권 후반기 공무원들이 정치권에 줄을 대기 위해 고의로 유출하는 사례다.

둘째, 공무원의 보안의식이 없거나 약하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방위력 증강사업 등에서 해당 부서의 공무원이 돈을 받고 유출하는 것이다.

비밀과 국민의 알권리는 상극관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국익을 중심으로 적정한 타협선을 찾아 조화돼야 할 관계에 있다. 북한 상선의 교신문 유출사건은 이런 점에서 비밀과 알권리의 관계를 재정립할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입력시간 2001/06/26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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